신사참배를 유일하게 거부하고 일제에 항거한 침례교회

  • 등록 2015.08.13 12: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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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해방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32:7)

일본제국은 이 땅을 점령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하여 압박하기 시작했으며 유독 침례교단은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타교단들은 연차총회에서 참배하기로 가결했다. 이로써 침례교단 탄압은 시작되어 성경과 복음찬미를 일제 경찰국에 압수당했다. 이는 성경과 복음찬미 가사에 대한 트집을 잡아 압박이 더 심했다. 복음찬미 제7장에 대왕님 예수씨 보혈이란 가사가 있는데 일본 천황 밖에 왕이 없는데 왜 다른 왕이 있어 섬기는가 하여 신사참배와 동방요배(일본황제를 행해 절하는 행동)를 강요했으나 거절하자 1942610일 원산 총회 본부를 수삭하는 동시에 당시 제5대 총회장 이종근 목사를 원산 헌병대에 구속하고 심문했다.

 

심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예수 재림시에는 그 지위가 어떠한가?

= 만왕의 왕으로 왕국을 건설하고 등극하신다.

2. 천년 왕국을 건설하면 일본도 그 통치하에 들어가는가?

= 그렇다.

3. 일본 천황 폐하도 불신시는 멸망받는가?

= 성경에 그렇게 명기되어 있다.

4. 그 때는 일본도 망하고 천황도 예수 통치하에 굴복하게 되는가?

= 전 세계가 통일되는 동시에 예수님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다.

5. 국체명징(國體明徵)을 위반하면 불경죄에 범하는 것도 모르는가?

= 신앙양심에서 말하는 바이다.

6. 단체 대표인 총회장이 그렇게 답변할 때는 간부는 물론이고 전교단 지도자들이 동일한 신조로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동일한 성경으로 동일한 신앙으로 소유하는 것이 합치되는 이론(理論)이다.

 

이로 인하여 다음날 전치규, 김영관 목사를 구속하고 원산교회(총회 본부)는 집회 금지되고 총회 비치된 일건 서류(총회서류)와 함께 원산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던 분들은 혹독하게 취조를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답변하니 오가다 담당 검사는 좌불안석하고 노발대발해 만주와 한국에 있는 교단 지도자 32명에게 구인장을 발부해 도착하는데로 원산 헌병대 유치장에 구금하고 혹독한 고문을 가하니 그 참상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194351일 교단 지도자들은 원산에서 일건서류와 함께 함흥형무소로 이감됐고 십리 떨어진 함흥재판소에 다니며 재판을 받았다.

푸른색 미결수복을 입고 명태같은 마른 몸에 밧줄로 굴비 엮듯이 했고 머리는 용수를 쓰고 신발은 와라지(일본 짚신)을 끌고 도보로 왕래하면서 온갖 욕설을과 수모를 당했다.

한편 교단 재산은 국방헌금으로 기부할 것으로 강요당했으나 재산 관리인 안대벽 목사가 거부하자 그 대가는 수감 중인 32인에 혹독한 채찍질이 가해지며 고문이 심해졌다. 결국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일제의 강요대로 재산을 허락했다.


1944510일 교단 해체령이 함흥 재판소에서 내려졌다. 51522명은 기소유예처분으로 풀려나고 총회장 이종근 목사를 비롯해 9인은 예심에 회부되니 영어의 생활은 계속됐다.

이로써 각 지방 관원들의 핍박으로 집회가 금지되고 교회 종은 강제로 철거되어 일제에 헌납됐으며 예배당은 매각 처분해 국방헌금으로 뺏어갔고 이에 불응한 교회는 교회 건물을 소각해 버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게 자행됐다.

1945213일 제3대 총회장 전치규 목사는 함흥재판소를 왕래하는 중 간수들의 폭력으로 수차례 쓰러져 결국 형무소에서 순교했다. 그의 유해는 원산 묘지에 안장했고 후손은 22, 2손자를 남겼고 현재 손자와 증손들이 서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고 있다. 1945215일 총회장 이종근 목사만 수감되고 9인은 병보석으로 가출옥했으며 그 참상을 형언할 수 없었다. 총회장 이종근 목사는 최후까지 옥중생활을 하다가 19452월 말 33개월만에 출옥했다. 이종근 목사는 옥중에서도 총책임을 지고 임원들을 속히 출옥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어떤 무거운 짐이라도 지는데 마다하지 않았다. 출옥후 만주 간도로 이사를 했지만 공산당원들에게 무자비한 매를 맞고 난 후 이제는 죽었으니 갔다가 버리라 하고 떠난 후 기적적으로 살아나 종성으로 이사를 했지만 결국 그 곳에서 북한 공산당에게 처형당해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종근 목사의 순교는 성경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총회장이 아닌가!(딤후 4:7)

박남윤 목사 / 전 재단국장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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