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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즐거움의 교차점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한 마술사가 쥐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쥐는 어쩐 일인지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었다. 마술사는 쥐가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지 살펴보았더니 고양이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언제 나타나서 나를 잡아먹을지 모른다면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술사는 이 쥐를 고양이로 만들면 두려움이 없어지겠지 하고 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고양이로 변했는데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니, 이번에는 개가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마술사는 그 고양이를 개가 되게 했다. 하지만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호랑이가 겁났던 것이다.

 

또 마술사는 개를 다시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다. 호랑이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하거나 두러워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는데 또 두러워하는 것이다.

 

호랑이가 무엇을 두러워했겠는가? 그렇다. 이번에는 사냥꾼의 총을 두러워하는 것이었다. 마술사는 너의 두러움은 사라지지 않는구나! 너는 별수 없는 쥐다하면서 다시 쥐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말았다고한다.

 

이 이야기의 끝에 마술사가 호랑이를 사냥꾼으로 만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젠 정말 불안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을까? 아니다. 사냥꾼 역시 다른 것들로 인해 불안하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이 단순한 동물들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아직 불안할 정도가 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안하고 불안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미리 불안한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폭력조직의 두목이라면 사람이나 돈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도 두려워할 것들이 많다.

 

다른 조직이 두렵고, 조직 내의 반란이 두렵고, 급변하는 외부환경이 두려울 것이다. 잠잘 때도 부하들을 문 밖에 세워두고 맹견을 침대 옆에 두고 권총을 베개 밑에 두고서야 잠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70%는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이처럼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 가운데 사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미리 염려하지도 않고 염려할만한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않는다. 옥에 갇혀진 베드로가 내일이면 사형 당할 것인데도 천사가 옆구리를 쳐야 깰 만큼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던 것은 잠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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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