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진영씨가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며 교계 안팎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일치를 부인하고 거룩한 위격이신 성령의 인격과 실재를 폄훼한 그의 논리는, 4세기 초대교회가 배격했던 아리우스주의 종속론과 해묵은 삼신론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대목은 세속 언론 일각에서 이러한 교리적 일탈을 정치권의 파벌 다툼에 빗대며 ‘단순한 관용의 문제’나 ‘사소한 차이’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신념의 차이는 대화와 타협의 대상일 수 있으나, 기독교 2000년 역사를 관통해 지켜온 삼위일체 신앙고백은 결코 흥정하거나 해체할 수 없는 복음의 본질이자 교회의 생명선이다. 역사적으로 침례교회는 국가 권력이나 인간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실천의 유일무이한 최종 권위로 삼아 왔다. 신앙고백을 통한 ‘신자의 침례’와 각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양심의 자유’, 그리고 성령 안에서 모든 신자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만인제사장직’은 침례교회가 목숨 걸고 지켜온 위대한 신학적 유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자유는 성경 계시의 온전한 틀 안에서 작동하는 거룩한 청지기직이지, 성경을 자기 논리대
구름도 쉬어가는 험준한 산길, 차창 밖으로 거센 우기의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빗길을 헤치고 클라크공항에서 꼬박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필리핀 루손섬 북부의 오지, 바기오와 벵겟. 관동지방회 목회자 11명의 가슴은 이미 기대와 기도로 뜨겁게 가열되어 있었습니다. 유현민 선교사의 세심한 안내 아래 발을 디딘 그곳은, 오랜 시간 기도와 눈물로 복음의 열매를 기다리던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실란교회의 눈물’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기적 CA교단(Christian Assembly)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실란교회. 하지만 늘어나는 성도들을 품기엔 예배당이 턱없이 좁고 협소했습니다. 타미 총회장을 비롯한 현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밤마다 새 예배당 건축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간구는 하늘에 닿아, 바기오와 벵겟을 ‘땅 끝’으로 마음에 품고 기도해 오던 지방회장 김유현 목사(천진)와 관동지방회 목회자들의 마음에 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관동지방회의 기도를 듣고 계셨습니다.” 관동지방회는 그동안 아끼고 모아둔 건축헌금 4100만 원을 실란교회에 전달하는 순간, 현장은 감격의 바다로 변했습니다. 타미 총회장과 성도들은 기적처럼 임한 하나님의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자원이 아니었다. 익숙한 환경도 아니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붙들고 새로운 길을 일구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정신이 필요하다. AI 시대 속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다. 기술을 따라잡는 것만으로 미래의 교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 먼저 물어야 한다. “이 낯선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며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복음은 낯선 세계를 피해 가지 않는다. 낯선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든다. 피터스에게 조선은 낯선 땅이었다. 그러나 그 낯섦은 복음이 멈출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들어가야 할 이유였다. 그는 낯선 조선에서 복음의 길을 일구었다. 이제 우리 앞에도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AGI를 넘어 ASI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교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피터스가 보여준 과거의 정신이다. 낯설다고 물러서지 않는 것. 이해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교단 제116차 정기총회가 지난 9월 14~16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부흥의 새 시대로”란 주제로 열렸다. 이번 정기총회는 우리 교단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자리였다. 1380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단독 후보로 나선 김선배 목사(디딤돌 협동)를 새 총회장으로 세우고,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정상화를 비롯한 굵직한 현안들을 신임 집행부에 넘긴 채 2박 3일의 일정을 마쳤다. 이제 총회의 결실은 회의장이 아니라 신임 집행부의 결정과 전국 교회의 발걸음에 달려 있다. 이번 총회는 시작부터 우리 교단이 풀어야 할 숙제를 다시 드러냈다. 단독 후보에 대한 선거 규정이 규약에 명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의원들은 현장에서 박수 추대 여부를 놓고 팽팽한 표결을 거쳐야 했다. 후보가 단독으로 나선 상황에서조차 절차를 둘러싸고 표가 갈렸다는 사실은, 제도의 미비가 언제든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마다 되풀이돼 온 이런 공백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신임 집행부는 미비한 총회 규약을 연구하고 재정비해 차기 정기총회에서는 이런 혼선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선배 총회장은 총회가 갈등과
최근 침례신문 ‘지역거점교회와 균형부흥’이라는 사설에서 우리 교단의 지역적 성장 불균형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총회 차원의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보며 공감하는 바가 컸다. 특히 농촌의 많은 교회들, 그리고 도심 지역의 소규모 교회의 목회자가 상시적으로 겪는 재정 문제와 주일학교가 아예 없는 교회들의 다음 세대 세우기 등의 어려움은 개교회가 혼자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부분이 있다. 특히 지역적 열악함과 겹쳐있는 겹쳐 있는 영·호남 지역의 교세 약화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아무나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기에 교단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과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고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호남 지역 침례교회의 약세는 오늘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사에서 장로교 선교가 지역 편중 위주로 강하게 뿌린내린 선교 경로와 맞물려 있고, 침례교단의 개교회주의의 지역 선교 전략의 한계 및 지역 특성에 맞는 선교 모델 개발 부족, 대전·충청권의신학교 중심의 교회 발전이 주요인이라 생각되며 그나마 강력한 침례교회의 상징으로서 복음의 역할을 감당하던 그야말로 영남지역의 침례교단의 상징이며 거점기관이었던
‘코’에 대한 생각은 시대, 지역, 문화에 따라서 다르다. 우리에게도 코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면 가나안 땅, 그리고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주인공들에게 코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구약성경을 보면 사람이 화가 난 상태를 ‘코에서 연기가 난다’, ‘코가 불탄다’라고 표현한 경우가 있다.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삼하 22:9)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뚜껑이 열렸다’, ‘머리에서 스팀이 나온다’는 말이다. 즉 몹시 화가 난 상태를 코에서 연기가 나고 불이 붙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에스겔서에는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표현도 있다.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겔 8:17) 하나님의 분노가 코에서 불처럼 나오는데, 그 코앞에 나뭇가지를 갖다 놓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같다. 또는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구약성경이 기록되기 훨씬 이전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코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우리는 앞에서 주전 5,500~3,300년을 금석병용기 시대(Chalc
“투발루”라는 나라를 아는가? 아마도 생소하고 잘 모를 것이다. 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피터스 선교사에게 조선은 당시 서구인들에게 투발루처럼 낯선 나라였을 것이다. 당시 조선은 대단한 나라도 서구에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니었다. 더구나 서구 선교사들의 시선에서 동북아시아는 청나라와 일본을 중심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1880년대 일본을 통해 조선을 방문한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미국인)이 자신의 책에서 조선을 ‘서구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고 소개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보여준다. 언어가 달랐고, 문화가 달랐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종교적 환경도 그가 살아온 세계와는 달랐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었고,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편하고 때로는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터스는 그 낯섦 때문에 조선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에 들어갔다. 언어를 배우고 사람을 만났으며, 성경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쳤다.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를 조선에 가져오려 하기보다 조선이라는 낯선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음의 길을 하나씩 일구어 갔고 더 깊이 배우고 사역하기 위해 미국으
가을의 문턱에서 교단 공동체는 다시 중대한 영적 기로에 섰다. 오는 9월 14~16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리는 116차 정기총회는 단순한 연례 회무의 자리를 넘어, 끝모를 소모적 정쟁과 깊어진 갈등의 생채기를 봉합하고 교단이 하나로 일어서야 할 절체절명의 분수령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규약의 허점, 그리고 법정 공방과 대립으로 교단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뼈아픈 시련을 겪었다. 여기에 모체 신학교인 한국침례신학대학교가 대학기관평가인증 유예와 임시이사 체제라는 이중 위기에 봉착하면서 미래 목회자 양성의 근간마저 흔들리는 처지다. 이러한 복합 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총회는 분열을 딛고 거룩한 연합을 이뤄낼 성숙한 믿음과 제도적 결단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교회 위에 교회 없고 교회 밑에 교회 없다’는 회중주의와 개교회주의는 침례교회가 오랫동안 목숨처럼 지켜온 고귀한 정체성이자 자랑이다. 그러나 이 자율과 평등의 정신이 집단 이기주의나 법적 허점을 파고드는 정쟁의 도구로 변질할 때, 교단 공동체는 힘없이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총회장 선거에 단독 입후보한 김선배 목사(디딤돌 협동)는 지난 8월 25일 총회빌딩에서 열린 공개토론
더블리스침례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하며 기도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우리의 삶으로 이웃에게 전하는 것 또한 교회가 감당해야 할 귀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우리 주변의 가장 연약한 생명들을 교회가 어떻게 품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가정의 어려움으로 보호가 필요한 영유아들을 만나게 됐고, 작은 마음을 모아 영유아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사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유아들은 자신의 상황을 말할 수도 없고 스스로를 지킬 수도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울고, 아프면 울고, 무서워도 울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결국 사랑과 안정적인 돌봄이라는 답에 이르게 됩니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정성껏 먹이고, 깨끗하게 씻겨주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어쩌면 아주 평범한 일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평범한 일상이 세상을 믿고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지난 8월 25일, 총회빌딩 13층에서 116차 총회장 후보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공개토론회는 3500여 교회의 목회 현장이 겪는 고뇌를 보듬고 교단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묻고 답하는 정책의 장이었다. 단독 입후보한 김선배 목사(디딤돌 협동)는 ‘교회 위에 교회 없고 교회 밑에 교회 없다’는 침례교 고유의 회중주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며, 분열과 소모적 대립을 넘어 화합과 제도적 혁신으로 교단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과거 수백 개 교회 시절에 머물러 있는 낡은 규약과 관행의 옷을 벗어던지고, 교단 규모와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선진적 구조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후보자의 진단은 한국교회 전반이 직면한 위기 속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초저출생과 인구 절벽, 교세 감소와 미자립교회의 가중되는 고통 등 한국교회 생태계가 마주한 총체적 난국 속에서 후보자가 내놓은 핵심 해법은 복음의 원론과 사도행전적 ‘성령행전’으로의 회귀다. 세대 간의 단절을 극복하고 젊은 세대와 다음 세대 목회자들에게 회개와 거듭남의 확실한 복음을 심어주는 영적 근본주의야말로 교단을 지탱하는 영구적 반석이 된다. 여기에 회기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단절되고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