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스 선교사가 머물렀던 제주도는 오랫동안 ‘유배의 섬’으로 불렸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이곳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육지와 떨어진 지리적 특성은 감시와 통제를 용이하게 했다.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도 인조반정 이후 제주로 유배되어 생을 마쳤다. 이렇게 제주는 중앙 권력의 끝자락이자, 권력에서 밀려난 자들의 종착지였다.
최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왕과 같이 사는 남자”는 6대 임금 단종의 비극을 다시 소환했다. 단종은 1452년 12세(10세)에 즉위했으나, 숙부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난(1453년)으로 1455년 왕위를 빼앗겼다. 이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고, 1457년 사약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이 영화의 감독 장항준은 왜 수양대군(훗날 세조)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가 등장하면 악역 한명회의 무게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는 서사의 집중을 위한 영리한 선택이다. 이렇게 단순해야 힘이 있다. 단순하다는 것은 메시지를 한 지점에 모으는 일이다. 설교와 강의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내용을 나열한다고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핵심에 집중할 때 설득력이 생긴다.
한편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대사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는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의 대사다. 한 문장이지만, 권력을 향한 욕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조선에서 권력의 상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곤룡포다. 곤룡포는 조선 고유의 의복이 아니라 수나라에서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군주들의 일상복이다. 군주는 하늘의 대행자로 여겨졌기 때문에 용으로 상징됐다. 그래서 곤룡포의 핵심은 용 문양이다. 발톱이 다섯 개인 용을 둥근 원 안에 배치한 ‘오조원룡보(五爪圓龍補)’를 가슴, 등, 양어깨 네 곳에 붙였다. 시대에 따라 직조하거나, 금가루(泥金)로 그리거나, 수를 놓아 부착했다. 군주는 오조룡, 황후나 왕세자는 사조룡(네 발톱)을 사용했다.
곤룡포를 입을 때는 익선관(왕이 쓰는 모자)을 쓰고, 옥대를 매며, 목화를 신었다. 여름에는 대홍사(얇은 비단), 겨울에는 대홍라(두꺼운 비단)로 만든 곤룡포를 착용했다. ‘곤복, 곤의, 용포, 황포, 길복’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렸다.
조선 왕의 곤룡포는 기본적으로 대홍색(적색)이었다. 왜냐하면 황색은 명나라 황제의 전용색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색상에는 위계가 있었다. 조선 내부 기준으로는 ‘황색, 적색, 청색’ 순이었다. 다만 명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황색과 적색’만 존재했다.<계속>
백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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