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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정답은 없다

취재수첩

언론(言論). 사전적 정의로는 매체를 통해 사실을 알리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말한다. 하지만 이 단어 앞에 ‘교계’라는 두 글자가 붙는 순간, 그 정의는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의 복잡하고도 숭고한 무게를 갖게 된다. 생애 첫 직장으로 침례신문에 입사해 현장을 누빈 시간은 그 무게의 실체를 마주하며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명을 다하며 산다. 평신도로서, 목회자로서, 혹은 사역자로서 저마다의 역할에 책임을 다한다. 교계 언론은 이 모든 이들이 모여 이룬 거대한 ‘신앙의 프레임’ 안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로는 가장 고통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언론의 본질이 정직과 진실을 바탕으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교계 언론은 그 위에 ‘기독교적 가치’라는 거대한 기준을 하나 더 얹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기독교적 가치’는 때로 양날의 검과 같았다.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지점은 ‘은혜’와 ‘헌신’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무조건적인 희생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로 정당한 절차나 상식이 가려질 때, 혹은 ‘은혜’가 갈등을 덮어버리는 무기가 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 초년병 기자의 눈에 비친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목소리는 늘 “성경 안에 정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정답이 명확하다는 성경을 곁에 두고도 교계는 끊임없이 분쟁하고 논쟁하며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한다. '성경에 답이 있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설교도, 말씀의 해석도, 기사를 쓰는 행위도 모두 부족한 ‘인간’의 손을 거치는 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수십 년간 이 길을 묵묵히 걸어온 앞선 언론인들이라고 해서 이 고민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분들은 그런 모순과 안개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길을 내고 있었다.


이곳 침례신문에서 함께 호흡하며 느낀 가장 큰 위로는 바로 ‘사람’이었다. 교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밤낮없이 고민하시는 사장님과 국장님, 취재 현장의 날카로움을 잃지 않으시는 부장님, 특유의 유머로 긴장된 사무실 분위기를 따스하게 풀어주시던 본부장님, 그리고 신문의 살림살이를 세심하게 챙기며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시는 간사님까지. 이분들과 함께하며 느낀 것은, 교계 언론은 결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진심을 다하는 구성원들이 있기에 ‘은혜’라는 단어가 누군가를 누르는 무기가 아닌 진정한 회복의 언어로 쓰일 수 있음을 배운다.


교계 언론사의 역할은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정답이 없기에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는 과정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본질을 다시 짚어주고, 갈등 속에서도 선한 모습을 찾아내 함께 나누는 것. 사람이 하는 일이 감히 하나님의 뜻과 완벽히 일치할 순 없겠지만, 그 간극을 줄이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앞으로도 침례신문이 침례교단과 한국 교계를 잇는 밝은 등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를 포함해 이곳의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의 ‘신문’이 되어 정직한 기록자로 남는다면, 우리 교계는 조금 더 맑고 투명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소중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고민할 수 있었음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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