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 뿔 화석 -이런 상상 해보셨습니까?- 아프리카 중부 탄자니아에서 출발한 코끼리 가족, 물소 떼, 기린, 코뿔소 무리들이 풀을 뜯으며 홍해 바다 기슭을 따라 올라와 아라바 계곡을 지나고, 숲이 우거진 사해 바다 주변을 통과한 후 악어들이 우글대는 갈릴리 호수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셨는가? 이스라엘 고고학 박물관에 들어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선사시대 유물 전시실에는 우리에게 이런 상상을 하도록 만드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벽에 커다란 뿔 화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 뿔의 너비는 약 2m에 달한다. 그 거대함으로 보아 당시 이 동물이 얼마나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옆에는 코끼리 이빨과 상아, 그리고 일명 ‘갈릴리 사람’의 두개골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요르단 계곡(Jordan Valley)에 위치한 우베이디야(Ubeidiya) 구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동물 뼈와 사람의 유골(cast)이다. 약 150만 년 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구석기 시대 유물은 지난 1959년 5월, 갈릴리 호수 남쪽 ‘키부츠 아피킴(Kibbutz
물 장구질 텀벙거리며 개헤엄 쳐본다 여지껏 간직해온 동심이 송사리 피라미와 어울려논다 여름 개울에선 물놀이 즐기는 아이 뿐 외로운 노인은 없었다 물수제비를 던졌다 따라하는 낯선 아이와 차례대로 던지는 게임 즐겼다 초등학교 1학년 남아와 칠순을 넘긴 노인 마음 열고 말문이 터졌다 “할아버지 집에 놀러가고 싶어요” “언제든오렴, 우린 물수제비 놀이친구야”
피터스 선교사는 제주에서의 짧은 체류를 가졌다. 그가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은 분명 그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다. 얼핏 보면 아쉬운 장면이다. 어렵게 조선말을 배우고, 최초의 한글 구약 번역인 ‘시편촬요’까지 펴낸 그가 왜 태평양을 건넜을까? 혹시 조선에서의 사역이 지쳤던 것은 아닐까, 혹은 낯선 조선 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의 삶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터스가 향한 곳은 미국 시카고의 맥코믹 신학교였다. 권서인으로서 조선 방방곡곡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구약성경의 첫 한글 번역인 ‘시편 촬요’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정규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그에 대한 선교사 사회의 신뢰와 지지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마도 개인 스스로도 신학 교육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피터스는 신학 공부를 결심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당시 미국 성서공회 총무였던 루미스(H. Loomis)가 미국 성서공회 길만(Edward W. Gilman) 박사에게 보낸 서신에서 “피터스가 시카고에 가서 9월부터 신학을 공부할 것이며 그 후 정식 선교사로 한국에 다시 돌아올 계획”이라
교단 전통의 충돌 : 교리의 통제 강화 vs 지역교회의 자치 400여 년 동안 침례교는 전통적으로 총회가 지역교회에 그 어떤 간섭이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금지해 왔다. 침례교인들은 교제, 교육, 선교를 위해 같은 생각을 가진 회원이나 교회들이 자율적으로 연합해 협력했다. 따라서 각 교회는 완전히(wholly) 헌법상 독립적이고 자발적이며 교단은 그러한 교회들의 연합체이다. 이러한 정신은 미국 침례교 역사상 최초로 형성된 지방회인 필라델피아 침례교 지방회(1742)의 설립 목적과 SBC 총회 설립 목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 지방회는 1749년에 지방회의 권한과 한계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연합된 선교로 한정하고 지역교회의 자율이라는 토대를 마련했다. SBC의 설립 목적 역시 마찬가지였다: “복음 전파를 위한 거룩한 목적에서 전체 교단의 에너지를 이끌어 내고, 결합하고, 지도하기 위한 계획이다.” 2000년도에 개정된 신앙고백서 제6장 ‘교회’항목에도 확인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교회는…신자들이 모인 개체로서,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서 민주적 과정을 통해 운영되는 자율적인 단체입니다. 이와 같은 회중의 회원들은 동등한 책임
현장에서 많은 항의가 있었지만, 업무 질서 위원회(Committee on Order of Business)는 이 동의안을 집행위원회에 회부했고 결국 집행위원회는 다음해 2월에 이 안건을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2022년 총회장인 바르트 바버와 교단 실행위원장인 제러드 웰맨은 여성에게 목사 호칭을 수여하는 교회들을 추방하는 규약 수정안을 표결에 붙이는 것에 노력하겠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자 이러한 교단의 결정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침례교 대학 중 하나인 베일러 대학(Baylor University)의 역사학 교수이며 여성인 베스 엘리슨 바는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금하고 있다고 알려진 성경 구절들은 성경 그 자체보다 그 당시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역사에서 기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교단 안의 권력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쟁과 관련해 결정적인 사건이 2023년 6월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교단의 연차 총회에서 일어났다. 6월 14일 연례 총회에서 여성 목사가 있는 두 교회(워렌의 교회와 포탐의 교회)를 제명하자는 실행위원회의 안건을 대의원들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 이날 총회에서 워렌은 그동
결국 2023년 남침례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계에 큰 충격을 줬던 사건이 교단에서 일어났다. 세계 최대의 침례교회를 목회하던 워렌을 총회가 교단에서 제명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워렌이 2021년 5월 6일 3명의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고 그의 아내에게 설교를 시키자 교단 내의 반대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총회나 정치에 전혀 무관심했고 특히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했던 워렌이 ‘여성 목회자를 위한 싸움의 주인공이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안수받은 여성은 리즈 퍼퍼(Liz Puffer), 신디아 페티(Cynthia Petty), 케이티 에드워즈(Katie Edwards)로 워렌의 여러 교회들에서 오랫동안 사역하던 여성들이었다. 이들에게 목사안수를 주는 결정은 남성 장로들로만 구성된 교회의 모임에서 이뤄진 결정으로 이것은 1984년과 2000년 총회의 결의와 교단의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두 번에 걸친 결의안의 핵심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보완주의’(디모데전서 2장 12절)로 알려진 것으로,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하나 그 역할은 다르다”는 것이었는데, 워렌이 바로 이점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었다. 워렌이 여성들에게 목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세 영역에 ‘수백 층짜리 초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작업과도 같다. 웨이퍼(원판)라는 빈 땅 위에 산화막을 입히고, 빛으로 회로를 새기고, 깎아내고, 불순물을 이온화하여 주입하고, 다시 씻어내는 과정이 반복된다. 한 층이 완성될 때마다 같은 작업이 다시 이어진다. 이렇게 만든 최첨단 반도체는 회로를 수십, 수백 층까지 쌓아 올린다. 그래서 기본적인 공정들이 끝없이 반복되며, 전체 제조 과정은 수천 단계에 이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가장 중요한 작업들이 사람들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화려하게 완성된 결과물 뒤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시작’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교회 역사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당시에는 작고 미약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 거대한 역사의 출발점이 됐던 사건들이다. 1899년 피터스(Peters)의 제주 방문 역시 그렇다. 19세기 말 제주도는 지금과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바다로 고립된 섬, 중앙 권력에서도 멀리 떨어진 변방, 그리고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 말씀의 빛이 본격적으로 스며들지 않은 땅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제주는 낯설고
서산에 해 기울고 종착지는 지척이네 살던 집은 낡아지고 대문 밖은 볼 못이니 머물 수도 떠날 수도 내 신세가 처량하네! 눈을 들어 하늘보소 예수님이 부르시네! 천국 문이 닫히기 전 어서 오라 손짓 하네
‘장애인’이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장애인복지법 제2조가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의 법적 정의이기도 하다. 우리 교단은 이러한 장애인들을 기억하고 함께하기 위한 주일로 작년에 처음 ‘침례교 장애인 주일’을 지켰다. 이는 장애인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더 분명히 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편리와 효율 중심으로 목회 사역을 이어가기 쉬운 평범한 일선 목회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었지만 동시에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지난 2025년 우리 교회의 첫 번째 장애인 주일은 매우 단순한 형태로 진행됐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장애인 주일을 알리는 피켓을 준비했고, 예배당에 들어오는 성도들의 손등에 하트 스티커를 붙여 드리며 이날의 의미를 함께 나눴다. 주일 설교는 아가서 1장 1~17절을 본문으로 “그 아픔까지 사랑하시다”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우리의 사랑이 제한된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를 닮아가야 함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설교의 마무리에는 유튜브에서 찾은 수어 찬
이후에도 여성 목사 안수와 사역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은 계속됐다. 1996년부터 게이트웨이 침례신학대학원(Gatewa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교수였던 리차드 R. 맬릭 주니어는 1998년 5월 뱁티스트 지(Baptist Press)에 “여성 목회자, 성경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기고해 여성 목사 안수를 비판했다. 그 당시 신약 성서학 교수였던 맬릭은 남침례회 역사에서 수 세기 동안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았고 최근 몇몇 교회들이 여성들을 목사 안수하는 것은 성서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맬릭은 여성 목사 허용 문제는 동등한 가치(여성은 열등하고 남성은 우월한)나 효과적인 사역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의 말씀에 대한 헌신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여성 목사 허용을 반대하고 있는 신약성서의 구절들(디모데전서 2장 12절,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은 구원론적인 문제(칭의에 있어서는 남성과 여성은 동일하다)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으나 교회의 질서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앞의 두 구절은 특히 교회의 질서 문제를 다룬 것으로 성경은 가정과 교회의 위계질서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고 맬릭은 해
피터스 선교사의 눈에 비친 1899년의 당시 제주(켈파트섬)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가 기록한 “제주도 탐방기(A VISIT TO QUELPART)”의 일부를 살펴보자. 먼저 이 기행문은 원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교 도서관(UTS)에 소장됐으나. 현재는 아이비리그 대학교 중 하나인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Columbia University Libraries) 시스템의 일부(Burke Library Archive)로 통합되어 관리되고 있다. 버크 도서관(Burke Library)은 북미에서 가장 큰 신학 도서관 중 하나로, 특히 “해외 선교 기구 기록물(Missionary Research Library Archives)”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본국 선교 본부에 보낸 “보고서, 편지, 일기, 사진 등”이 이곳으로 모이게 됐다. 피터스 선교사의 제주 기행문 원본 역시 당시 선교 보고의 하나로 제출되어 이곳 아카이브(기록 보관소)에 보존된 것이다. 기행문의 원본은 일기 형식이고, 손 글씨로 기록됐다. 원문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독자가 읽기 쉽게 편집했다. 비바람 속에서 시작된 제주 여정 우리는 2
밟고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면서도 마냥 영원성의 종속에다 꼬리를 달고 기지개를 켜보면서 걸음마를 시작한다 무너질 시각을 모르면서 생각하고 있다 존재의 가치를 망각한 체 연기 속에 생각을 드리우고 장고의 시각이 종지부를 내리치는 줄도 모르면서 시각이 연결 되면 시간이 되고 시간이 흘러가면 세월이 된다면서도 세월 속에 사라져가는 자신을 잊고 산다 내가 밟고 선 땅이 낯설지는 않아도. 바람 속에 찾아 오는 외로운 고독은 언젠가 혼자 가야 하는 신호탄이란 것을 잊고 산다고 하지만 잊고 살게 따로 있지 바보처럼 살면서 제일인척하고 산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석양이 다가서면 눈물질 것이라 의미도 없이 사는 것은 낭비한 인생이고 낭비한 것 같아도 길을 알고 살았다면 마지막 가는 길이 짐이 되지 않으리 땅 위에서 잘 살았다고 큰소리치지 마는 큰소리 칠 게 하나도 없지 남은 것이 없으니 후회하지 않게 위를 보고 걸어라 존재의 가치를 망각하고 살았었지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누가 알아주나 열심히 먹고 살았던 시간을 자화상이 흐려지고 생각이 끊어지고 존재의 시각이 새롭게 다가서거늘 고집 부리지 말고 항복할지어다 따스한 온기가 감사히 여겨지거든 진실된 눈물이 흘려
오늘도 사랑하는 내 주님을 기다리네! 가실 때 다시 오신다던 그 약속을 믿고 오늘도 내 마음의 창가에 기대서서 먼 하늘 바라보네!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 내 주님의 발자국 소리 들리는 것 같아 어느새 한줄기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네! 철없는 내 마음은 이름 없는 한 마리의 작은 나비가 되어 먼 창공 높은 하늘로 사랑하는 내 주님 마중 간다네!
20세기 중반부터 타 교단에서부터 여성 목사 안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여성 목회자들의 활동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교단 내의 일부의 교회들도 여성을 목사나 사역자로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당시의 가정을 포함한 사회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성평등과 여권 신장의 영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문화⋅사회 변화에 교단 내의 지도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정확히는 1979년 근본주의자들이 총회를 장악)부터 2000년 전까지 교단 내에서 벌어졌던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의 싸움에서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하여 교권을 장악함으로써 여성의 사역과 역할에 큰 영향을 끼치며 변화를 가져왔다.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은 성서 무오성과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고수해 여성 목사 안수 및 사역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은 대표적인 침례교 전통 가운데 하나인 지역교회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여성 목사 안수 허용과 사역의 문제를 지역교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나름 균형 잡혀 보였던 교단의 양 세력의 균형이 1984년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여성목사 안수 금지를 결정함으로써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결의안은 각
처음부터 조선의 왕이 적색 곤룡포를 입은 것은 아니다. 이성계의 어진을 보면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이는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완전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권지고려국사(임시로 고려를 다스리는 사람)’라는 직책만 내렸던 굴욕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후 태종 1년(1401) 정식 책봉이 이뤄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세종실록”에서 세종 26년(1444)에 ‘대홍직금곤룡포’가 등장한다. ‘홍직(紅織)’은 적색으로 짰다는 뜻이다. 이 무렵부터 적색 곤룡포가 제도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왜 고종(조선 26대)은 황색 곤룡포를 입게 됐을까? 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승리하게 됐다.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키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했을 때, 황색 곤룡포의 착용을 허용했던 것이다. 이는 외교 질서의 변화와 함께 상징 체계도 재편되었음을 보여준다. 권력은 색으로도 드러난다. 그러나 색이 바뀌었다고 권력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곤룡포는 권위의 상징이었지만, 단종의 비극이 보여주듯 권력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조선의 왕이 입던 곤룡포는 단순한 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