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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거부로 수난당한 침례교 대표 32인(9)

일제강점기 한국침례교의 항일운동사-19


백남조 목사(1875-1950)
백남조는 1875년 6월 9일 경상북도 영일군 송라면 광천리에서 백운락의 4남 1년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선비요 한학자였던 그는 일찍이 신학문의 필요성을 깨닫고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수학했으나 반일사상가라는 명분으로 축출당해 귀국했다.


고향에서 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던 중에 지역 사회의 인정을 받아 영일 군청에서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35세 때(1910) 대한기독교회의 한 순회 전도인으로부터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고, 주님을 영접한 이후 복음 전도에만 전념했다. 1912년 개최된 제7차 대화회(총회)에서 전도 직분을 받아 강원도 울진, 울도(울릉도), 경상북도 예천, 포항지역에 전도사역을 했으며, 특히 허담이 울진구역 총찰로 임명되자 그가 맡고 있던 원우학교를 백남조 전도가 위임받아 관리했다.


순회 전도에 전념하던 그는 1919년 간도 종성동에서 개최된 제14차 대화회(총회)에서 김재형, 김영진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고, 충청북도 예천과 제천지역으로 파송을 받아 순회 사역을 했다. 1924년 강원도 울진에서 개최된 제19차 대화회(총회)는 백남조 목사를 울진, 울도(울릉도), 포항지역으로 파송했고, 1925년 원산총부에서 서기 직책으로 봉사했다. 그는 특히 후배양성에 공헌이 컸다. 무엇보다 신학문을 후진들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교규 시행에 엄격하여 정평이 나 있었다.


백남조 목사는 학문이 높은 만큼 붓글씨도 잘 썼는데, 그의 붓글씨 솜씨는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글은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고, 그에게 글을 받아가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는데,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지역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품이 높은 선비가 있었다. 그는 백남조 목사의 명성이 하도 높아서 소문대로 명필인가 아니면 엉터리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나무꾼으로 변장하고 백 목사를 찾아왔다. 선비는 준비한 대로 넓은 송판을 내밀면서 글을 한 구절 써 달라고 간청했다. 백 목사는 송판을 받아들고 한참 실핀 후 먹을 갈아 한 구절 정성껏 써 줬다. 그것을 받아 든 선비는 그 필치와 글귀에 흠뻑 빠져 그만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말았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는 두터운 교분이 생겼다고 한다.


백남조 목사는 경상북도 영일군에서 덕망 있는 선비요 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송라 면장을 3년 간 역임하기도 했고, 영일 군청의 고위관리로도 일했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세상의 명예와 지위, 권세는 한낱 헛된 것으로 여겨 모두 내려놓았다. 나라에서는 영일 군수로 여러 차례 추대하려 했으나 단호히 거절했고, 오로지 주님의 일꾼으로 소명 받은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복음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신앙적 긍지와 선지자적 삶을 살았다고 하겠다. 그는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했다. 특히 후진들을 만날 때면 의례 “목사가 되려면 먼저 똑똑한 신자가 되라”고 강조했다. “성경을 읽고 나면 곧 실천에 옮기라”고 권면하고 가르쳤는데, “주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받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임을 후진들에게 가르쳤다.


백남조 목사는 남다른 잠버릇이 있었다. 잠을 자면서 호랑이를 보라고 외마디 비명을 질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에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놀라서 그에게 질문했다. 이에 백 목사는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났던 일화를 말하곤 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데, 그가 남북한 전역을 돌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깊은 산중에 있는 오솔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두 명의 동료와 함께 가고 있었지만 어둡고 깊은 산속이었기에 이들에게 두려움이 있었다.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서로 이야기하면서 깊은 산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산 중턱에 이르러 굽어진 산길을 막 돌고 있을 때, 황소보다 더 큰 호랑이가 길을 가로막고 으르렁거렸다. 너무 놀란 일행은 온몸을 움츠리고 있었고, 백남조 목사는 자기도 모르게 벽력같이 고함쳤다.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산이 울렸고, 더욱이 일그러진 백 목사의 얼굴을 본 호랑이가 오히려 놀라 산속으로 피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그는 이때부터 호랑이 꿈을 자주 꾸었고, 꿈을 꿀 때마다 그때처럼 고함을 질러 같이 자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계속>

오지원 목사
한국침례교회사연구소 소장
(사)침례교 역사신학회 이사
ohjw79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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