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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목사 나쁜 목사

 

요즘 목사님들의 일상 언어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언어, 자주 듣는 단어 중 하나는 바쁘다이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바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목회 이외의 것들로 바쁜 목사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에 의해 시작된 것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바쁨이라는 수렁에 빠져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바쁜 나날을 보내는 피곤의 포로가 된 목회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목회의 위기를 잉태한 것이다. 피곤은 탈진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에는 목회로 소명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부정적 가능성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언제나 미약하다. 목회라는 것이 주부들의 일상처럼 형체도 없이 분주함을 가져다주는 것이고,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끝도 없는 것일 수 있지만 목회자가 바쁨이라는 것에 중독되거나 노예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거룩도 경건도 아니다. ‘목사가 바쁜 것은 죄다라고 말한 정병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이 또한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바쁘다는 말은 헌신의 낌새가 아니라 배신의 낌새다. 헌신이 아니라 변절이다라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으로 파고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 그는 바쁘다는 형용사는 마치 간음이나 횡령이라는 말처럼 우리 귀에 들려야 한다고 우리의 굳어진 양심에 좌우로 날선 검을 휘두른다. 생각 없이, 의식 없이 늘 반복되는 일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무 의미 없는 일에 우리의 소명된 날들을 허비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주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그것이 겉으로는 그럴듯한 거룩의 모양을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나쁜 바이러스에 점령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많아지며 큰 부흥을 이루었던 예루살렘 교회에 원망이라는 부정적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기 보다는 구제하는 일에 몰두하는 바쁨 때문이었다.(6:1~6) 교회와 목회자가 구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 결코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로 목회자가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서는 안 된다. 비록 그것이 중요한 사역일지라도 목회자의 주 사역인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모든 삶으로 헌신 되어져야만 하는 목회의 거룩함이다. 다행히 사도들은 그 분주함, 본의 아니게 원망을 듣게 되었던 바쁜 일들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한다. 다시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이 왕성하여 지고 제사장의 허다한 무리들까지 복음을 받아들이는 큰 부흥이 계속됐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매우 다양해졌다. 과거의 구조나 사고방식으로는 오늘을 숨 쉴 수조차 없다. 하루 밤을 자고 나면 어제의 놀라운 정보가 오늘은 죽은 정보로 전락하는 빠른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속도의 시대, 정보의 홍수 시대, 전통을 경시하고 새것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목회의 환경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양해진 성도들의 삶의 패러다임들, 나이가 들수록 굳어지는 목회자들의 의식구조와 삶의 스타일들은 오늘 이 시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점점 멀러지고 있다.

 

그래서 목회가 멈추어 설 수 없이,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사회를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식은 자연스럽게 목회를 바쁨의 바다로 내몰고 있다. 그리고는 어느 시점에서는 바쁨이라는 것에 중독되고 마비되어 자신이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것마저 의식하지 못한다. 그렇게 바쁨이라는 바다에서 미친 듯이 노를 젓는 사이 목회의 본질인 기도와 말씀사역은 침몰해 가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44%의 목회자만이 하루 30분에서 60분미만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분에서 30분미만은 27.6%, 10분미만도 2.4%로 기도하는 것으로 나왔다. 4명 중 3명의 목회자가 하루 1시간미만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마저도 거의 새벽 기도에 의존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Peter Wagner)1990년 저술한 방패의 기도에서 한국 목사들의 평균 기도시간이 90분이라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무려 30분 이상이 줄어든 것이다. 지금은 앞서 언급한 시간보다 더 줄어들었을 것이고,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목회자의 하루 성경 읽기도 5장미만이 42.5%로 나타났고, 1장도 읽지 않는 목회자도 10%나 됐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다. 기도를 통해 기독교 역사는 유례없는 큰 부흥을 이뤘다. 목회자도 성도들도 기도하기를 힘썼다. 밤을 새워 기도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며 하늘 보좌를 움직였다. 이와 함께 성경읽기 붐도 일어났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기도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성경읽기도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그 원인들이야 다양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중 하나는 바쁨으로 인하여 목회자의 기도시간이 줄어들고, 말씀 묵상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지만 최근에는 석, 박사 과정에 있는 신학생들이 바쁜 목사들을 위해 설교 원고를 써주고 있다고 하니, 설교 원고를 써 주는 그들의 앞날도 선배들을 따라 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결코 기우가 아닐 것이다.

 

또한 인터넷 등에서 설교를 카피해 마치 자기 설교인양 강단에서 큰소리치는 목회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인용과 이용을 분명 다르다. 교회는 이 땅에 있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묶여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교회나 목회는 세상의 운영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 다른 방법이란 사도들이 회복했던 말씀과 기도다. 목회는 말씀과 기도로 해야 하며 성도의 신앙도 말씀과 기도여야 한다.

 

만약 교회와 목회가 본질에서 벗어나 바쁨으로 충만하다면 교회는 그저 종교적 업무를 처리하는 사회적 기관의 하나로 전락할 것이고 목회자는 그 종교적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불과할 것이다. 바쁜 목사를 정죄하고자 함이 아니다. 바쁜 목사를 모두 나쁜 목사로 단정하고자 함도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무엇을 위한 열심으로 나의 전인격과 전 삶을 헌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목회의 모양은 있으나 목회의 능력이 없는 것이 오늘의 목회현실인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쁨이라는 것에 지배당하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제 목회자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신성한 목회적 사명의 자리에서 바쁨 보다는 참된 안식을 누리면서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회복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교회 밖, 목회 밖의 것들로 동분서주하는 사이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밑동부터 썩고 있다. 신학자 김진호의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라는 책의 제목이 어쩌면 나의 목양터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 있다. 그 흔한 K, 김씨 교인이 내 목양의 터인 교회를 떠날 수 있다. 그래서 바쁜 목사는 나쁜 목사가 될 수 있다.

 

계인철 목사 / 광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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