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요무대” 프로를 없애자고 하자 70대 대한민국 노령자들이 벌떼같이 반기를 들었다. 나도 그런 노령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왜 그런 반기를 들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안다. “가요무대”에 나오는 노래는 해방 전후 그리고 6:25전쟁전후 극한 가난과 국난 중에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던 그런 청량제 소리였었다. 나도 10대 소년시절 전쟁 중에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한 시간 수업이 끝나고 쉬는 가간엔 뒷동산에 올라가서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합창하다가 종이 울리면 교실로 들어왔었다. 다음 쉬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또 때가 되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군행진곡도 불러재켰다. 말하자면 1950년대를 전후한 노래가 그 시절에 향수를 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령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주일 내내 고대하던 “가요무대”를 빼버린다고? 안될 말이지. 그런데 내가 “가요무대”를 즐기는 일반적인 이유 외에 특별한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가요무대”는 옛날 가수들의 노래를 지금의 젊의 가수가 불러보는 계획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 옛날 가수들의 현황을 방송국 직원이 가서 촬영해 왔고 그것을 방영했다. 그들은 늙었다. 병들었다. 시들었다. 황혼을 맞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예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이시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주님께서는 그의 살아계신 이름과 권세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사용하도록 인장을 우리 성도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 마가의 다락방 강화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2-14, 15-16, 16:24-26))고 여러 번 약속하셨다. 그 약속으로 우리는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의 인장을 찍어 응답을 받는다. 예수님의 이름도 있는가?교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한번은 교황 이노센트 2세(Innocent Ⅱ)를 방문하였다. 교황은 한 웅큼의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결혼 전 날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나 지금 이 결혼을 해도 되는 걸까?’ ‘정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것은 이제는 비밀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질문은 결혼 전의 신부들만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황만 다르지 우리는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이런 질문들을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던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임직식을 준비할 때 전날까지 담임목사가 상담하는 내용 중에는 “제가 이 직분을 정말 받아도 될까요?”라든지, “저는 합당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같은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 역시 목사안수를 받을 때 이 질문을 저에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내가 목사가 되도 될까?’ ‘내가 정말 이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이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저서 제목 중에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꼭 저에게 하는 질문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번민의 밤을 지나 정신없이 목사가 된 후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목사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자신을 하나씩 더 확실하게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도사 때는 멋모르게 해대던
(2010)2010년 3월 29일은 전여회가 2009년 5월에 기공감사예배를 드리고 건축을 시작했던 사랑의 집의 준공 감사예배를 드린 뜻깊은 날이었다. 전여회 사랑의 집은 1996년 6월 사랑의 집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도하며 시작한지 14년만에 결실을 맺었다.오랜 시간동안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민하며 기도했는데 2008년 마침내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모든 일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경서지방 남부교회 임대식 목사님이 선친께 물려받은 경북 김천시 부곡동 180번지 2,342평의 전망 좋은 땅을 기증해 주셔서 전여회는 11월 4일 대지 등기 이전을 마치고 2009년 4월 ENG종합건설과 건축계약을 맺고 건축을 시작하였다. 수원중앙교회를 섬기시는 우경애 증경회장님이 추진위원장으로서 이 일에 남은 생애를 걸겠다고 헌신하였고 조혜도 증경총무님은 제일 먼저 가지신 것의 모든 것이라며 힘에 겨운 헌금을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건축을 위해 마치 우리들의 등을 떠미시는 것만 같았다.추진위원회는 기도하며 모금 계획을 세웠는데 사랑의 집 방이나 식당, 휴게실, 사무실등에 3000만원의 헌금을 하는 교회나 개인의 명단을 부착해 드리기로 했다. 전여회는 독
어느 그리스도인 모임에 갔더니 그 중 어떤 그리스도인이 차라리 불교방송을 듣는 게 어떠냐고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동의를 얻고자하는 기세를 펴고 있었다. 모두 교회신자들이었고 목사는 나 홀로였다.모두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 사람은 나를 향해 가부간에 나의 의견을 말해 보라는 듯 시선을 나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그런 질문에 당황하기는커녕 오죽하면 오늘 날 교회신도들이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 하면서 내심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나는 그런 질문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더니 그의 긴 설명이 뒤따랐다 : 몇 몇 기독교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데 온통 마음이 가지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를 대게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왜 저 멀리 떨어진 지방의 담임목사가 굳이 온 한국이 다 듣도록 설교를 내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저 목사가 저렇게 설교하자니 교회 헌금을 얼마나 방송국에 쏟아 부었을까? 저 설교목사의 설교는 그럴사한대 실제로 그의 삶도 그럴까?어쩌면 전에는 아비목사가 설교하더니 이제는 자식목사가 대를 이어 설교할까.저 깡촌교회 목회자는 언제 저렇게 전파를 타는 설교를 할까?중들 설법이야 의당히 별것 아니라 치부하
“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2:11)예수님께서 우릴 위해 세상에 오신 구주 성탄절과 새해를 맞아 동역자들과 섬기는 교회에 풍성한 은총과 축복을 기원합니다. 우리가 동방 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여 동방으로부터 험난한 사막길을 지나 베들레헴까지 찾아가 아기 예수께 경배하지 못할지라도, 어린 아이가 자기의 점심을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드림으로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조각을 12광주리에 거둔 것처럼, 우리 침례교 성도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6:9)지방회비의 1/10을 절약하여 돕는 방법도 있겠다고 생각하여 의논해 보기도 했고, 최보기 증경회장의 좋은 제안에 본인도 동의한바 있거니와 믿음의 분량대로 동역자들이 사례비를 봉헌하는 것이나, 옛말에 십시일
(2008-2009)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전여회는 왕은신(Lucy Wagner) 선교사님을 한국에 초청했는데 왕 선교사님은 그 때 한국에서 오랫동안 함께 선교하셨던 베티 제인 헌트 선교사님과 함께 한국에 오셨다. 왕은신 선교사님은 1955년 미국 남 침례회 파송 선교사님으로 한국에 오셔서 2년간 언어를 배우신후 1957년부터 1993년 퇴임시 까지 36년간 전여회 선교사로 결혼도 안하시고 초기 전여회 성장과 발전을 위해 또한 한국인의 영혼 구령을 위해 헌신했다. 전여회는 2000년에 나은수 선교사님과 조혜도 전 총무님의 집필로 「부르심을 따라」란 왕은신 선교사님 전기를 한영판으로 출간했는데 이 책에 보면 왕 선교사님이 초창기 교회마다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지도자들을 훈련하기 위해 초창기 전여회 임원들과 함께 시골구석까지 전국을 방문하며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역하였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여회 역사 속에 왕 선교사님의 헌신은 계속해서 오래도록 후대에 까지 소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책은 전여회 회원 뿐 아니라 미국 여선교 회원들에게도 많은 은혜와 도전을 주는 책이 됐다. 왕 선교사님 전기 서문 앞에 나오는 어느 시인의 글이다. 1960년 9
캘리포니아 크스트 힐 커뮤니티 교회 담임목사 데니 벨레시 목사는 2000년 11월 어느 주일 교인들에게 100불씩을 나눠주고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은데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임을 명심할 것.2. 어디에 써도 좋지만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만 사용할 것.3. 앞으로 90일 후 전 교인 앞에서 보고할 것.이상한 프로그램에 처음에는 교인들이 망설였지만 4부 예배 후 1만 불의 돈은 다 나갔습니다. 교인들의 손에 들려진 이 100불은 이제까지 자신이 만져본 돈 가운데 가장 사용하기 곤란한 돈이었습니다. 90일이 지나고 미국의 유명한 TV NBC Date-line프로그램에서 전국에 방송됐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참여자들이 간증할 때 온 교회는 눈물의 바다를 이뤘고, 100불은 여러 곳에서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불치병 어린이 환자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시작한 한 성도는 창고에 하나 가득 아동도서를 모으게 됐고, - 어떤 이는 노숙자에게 담요를 사줬고,- 예수영화를 노숙자에게 상영하는 일에 사용해 10명의 친구들이 동참하면서 금액은 6,000불로 늘어났고,- 어떤 이는 아기를 유산하거나 어린 아기를
(2008)월간 성광 발행 50주년이 되는 2008년, 제 55차 연차총회및 여름수련회에는 하나님께 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몇가지 특별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먼저 월간 성광에 관한 스킷을 증경회장님들과 총무님이 준비하고 기념 케익을 커팅했다. 개회예배를 고미현 교수와 침례신학대학교 종교음악과 학생들로 구성된 더 웨이를 초청해 축하음악회로 준비했고 그동안 문서선교에 헌신해 주신 회원들과 교회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실행이사회에서는 많은 행운 물품을 준비하고 순금으로 된 행운의 열쇄도 준비하여 행운권 추첨시간도 가졌다. 월간 성광 50주년 기념 역사 화보집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는 총회 시에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줄 예정이었으나 발간이 조금 지연되어 추후에 각 가정으로 발송됐다.50년간 발간된 월간 성광은 1957년 말 아버나티 선교사(미국 남 침례회) 부인이 부인 전도회(현 전여회)에 2만환을 주면서 부인 전도회 월간지를 만들어 보라고 하여 시작됐다. 처음에는 24쪽에서 30쪽 부피의 잡지 150부가 발간되어 각 교회로 무상 배포됐다. 그 후 교단 분열로 여성들의 활동이 잠시 중단됐다가 1959년 10월에 다시 재조직되어 기관 명칭을 “부인전도회”에서 “여
아프가니스탄 무장 단체 텔레반에 5년간 포로로 붙잡혔던 보 버그달 미군 병장은 한때 용감한 미국의 영웅으로 떠받침 받다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엉뚱했었다고 한다. 그는 탈영병이라고 했다. 그가 스스로 탈레반 진영을 찾아갔다는 것이 현지인의 증언으로 밝혀졌다.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몰락한 가짜 영웅을 위해 불행하게도 수색에 나갔다가 전사한 병사들이 생겼다. 그런대도 나라는 그를 어떻게 대해 주었던가? 오바마는 그를 텔레반 지도자 5명과 맞바꾸는 교환조건으로 고국으로 돌아오게 했었다.고향인 아이다호주(州) 해일리 주민들은 버그달 환영 행사를 취소했다. 버그달을 찾는 수색 작전에 나섰다가 사망한 병사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죽음이 정말 가치가 있었느냐”며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버그달 수색 당시 숨진 다린 앤드루스 소위의 아버지 로버트 앤드루스는 “아들은 정말 찾을 필요도 없었던 녀석 때문에 불필요하게 죽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앤드루스 소위와 함께 사망한 매슈 마르티넥 일병의 가족은 “왜 버그달을 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는지 꼭 알아야겠다”며 “그를 찾는 데 목숨을 걸었던 많은 병사가 있는 만큼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버그달 수색 작전 중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