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아내와 함께 미국 뉴욕 시가지를 거닐다가 갑자기 반갑게 맞이하는 길손을 만났다. 나는 인적상황을 즉각 인지하지 못해서 당황해 하고 있었는데 그가 한국에 있을 때 모 세미나에서 나의 강의를 잘 들었고, 지금까지 그 강의 내용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와 아내를 이끌고 바로 그 옆 레스토랑으로 인도해서 푸짐한 대접을 해주었고 헤어질 때 몇 푼의 달러까지 지어주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뉴욕까지 움직이기를 잘했다고 했다. 움직이면 밥 생긴다. 동즉식(動卽食).명동거리를 다니다가 모 교회 장로님을 만났고 그가 커피숍으로 인도해서 커피 한잔을 들면서 “율법과 복음을 갈라놓기에 명수(名手)목사님, 여생 다할 때까지 꼭 잘 전해주세요”라고 미니 세미나를 한 뒤 봉투가 없다면서 갈색종이 몇 장을 집어 주는 것이 아닌가? 명동거리에 오기를 잘했지, 집에 들어앉아 있었더라면 뭣하나, 움직이면 밥 생긴다. 動卽食(동즉식)이다.나는 직장 연금이 없이 노년을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날보고 역마(驛馬)살이 끼여서 한곳에 오래 못 붙어 있고(?) 옮겨 다닌다나. 과연 그런가! 출판사, 신학교, 목회 등 골고루 돌아다녔다. 나는 십자군 사단의 연대장이다.
송아지 봉헌에 암소까지 죽어1960년 2월 저동교회 임암천 목사님께서는 나에게 “강성찬 전도사님을 부흥강사로 초청하고 싶으니 알아보고 청빙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경북 산골 고령까지 먼 길을 찾아갔다. 농촌교회를 개척한 총각 강전도사는 마침 자체 부흥회를 하고 있었다. 집사님 내외분을 불러서 “멀리서 한 선생이 손님으로 오셨는데 방이 이렇게 차가워서 되갔소, 군불을 잘 넣고 또 반찬도 계란 같은 것이나 생선도 밥상에 오르게 하이소”라고 힘있게 일러주었다. 식사 대접을 잘 받은 후 저녁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따뜻한 방에서 잘 자고 나서 이튿날 나는 강성찬 전도사님을 저동교회 부흥강사로 모시기로 허락받고 모교회 임암천 담임목사님께 통지해 드렸다. 세월이 흘러 강성찬 전도사님은 목사님이 되셨고 부산침례교회에 부임하신 후 그분이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해서 간증을 듣게 되었다. 그는 평안도 정주의 농부의 아들이었고 선친은 복음을 받아 예수님을 잘 믿었다. 마침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농토는 공산당에게 빼앗겼고, 그때는 소 두 마리가 전 재산이었다. 어머니는 그 중 송아지를 기쁜 마음으로 건축헌물로 바쳤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연자 맷돌을 돌리던 건장한 어미
(2009-2012)2009년 1월 인도의 캘커타에서 내가 아시아 침례교 여성 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나는 자동으로 침례교 세계 연맹 여성부 부회장, 세계연맹 상임위원, 아시아 태평양 침례교 연맹 실행위원이 됐다. 나의 본업인 전국 여성선교 연합회 총무는 자동으로 교단 해외선교회 이사 및 시취위원으로도 섬기게 된다. 2013년 말 은퇴시 까지 5년 동안 나는 내게 주어진 수많은 사명들을 감당하기 위해 휴가도 없고 주말과 주일에도 예배후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해야 했다. 그 모든 것을 감당 하도록 하나님은 내게 건강과 지혜와 돕는 자들을 보내 주셔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모든 사명을 완수하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린다. 2009년에는 서울에서 첫 실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인도와 대만 침례교 여성연합회 총회의 주강사로 섬겼다. 인도 대회는 인도안의 또 다른 국가라 할수 있는 나갈랜드에서 개최되어 대회후 그 곳 선교목사님의 안내로 시골 오지 마을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 할 기회를 가졌고 이 방문은 후에 연세 중앙 교회 윤석전 목사님의 나갈랜드 집회로 연결되고 나갈랜드 총회와 한국 총회가 자매 결연을 맺게 되는 다리
행운목(Dracaena)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등 열대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되어온 관엽식물입니다. 꽃말은 ‘행운’이며 영어로는 Lucky Tree라고 부릅니다.행운목(幸運木)은 토막으로 식재를 하기 때문에 뿌리가 충실하질 않아 좀처럼 꽃을 볼수 없고 열대 지역에서도 잎만 무성할 뿐 꽃을 보기가 아주 어려운 관엽식물로 사람의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하는 식물입니다.저녁 해질 무렵에 활짝 만개하여 다음날 새벽녘에 꽃이 지기를 반복하며 백합향을 능가하는 향긋하고 그윽한 향기에 생명력의 소중함과 강인함을 나타냅니다. 2001년 노은교회를 새로 짖고 입당 할 때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이 행운목 한 그루가 저희 집 거실 모퉁이에 오랬동안 있었습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아 생각나면 한 번씩 물을 주는 정도여서 화분갈이나 영양 있는 비료를 준적도 없습니다. 엊그제 아내가 이 행운목이 꽃을 피기 시작했다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10여년 전에 한번 피고 지금 다시 감추었던 얼굴을 수줍은 듯 내 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꽃망울을 머금은 꽃수술대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솟아오르며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꽃들은 매년 꽃을 피우는데 어찌 이 행운목은 10여년 긴긴
한때 “가요무대” 프로를 없애자고 하자 70대 대한민국 노령자들이 벌떼같이 반기를 들었다. 나도 그런 노령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왜 그런 반기를 들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안다. “가요무대”에 나오는 노래는 해방 전후 그리고 6:25전쟁전후 극한 가난과 국난 중에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던 그런 청량제 소리였었다. 나도 10대 소년시절 전쟁 중에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한 시간 수업이 끝나고 쉬는 가간엔 뒷동산에 올라가서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합창하다가 종이 울리면 교실로 들어왔었다. 다음 쉬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또 때가 되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군행진곡도 불러재켰다. 말하자면 1950년대를 전후한 노래가 그 시절에 향수를 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령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주일 내내 고대하던 “가요무대”를 빼버린다고? 안될 말이지. 그런데 내가 “가요무대”를 즐기는 일반적인 이유 외에 특별한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가요무대”는 옛날 가수들의 노래를 지금의 젊의 가수가 불러보는 계획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 옛날 가수들의 현황을 방송국 직원이 가서 촬영해 왔고 그것을 방영했다. 그들은 늙었다. 병들었다. 시들었다. 황혼을 맞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예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이시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주님께서는 그의 살아계신 이름과 권세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사용하도록 인장을 우리 성도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 마가의 다락방 강화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2-14, 15-16, 16:24-26))고 여러 번 약속하셨다. 그 약속으로 우리는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의 인장을 찍어 응답을 받는다. 예수님의 이름도 있는가?교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한번은 교황 이노센트 2세(Innocent Ⅱ)를 방문하였다. 교황은 한 웅큼의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결혼 전 날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나 지금 이 결혼을 해도 되는 걸까?’ ‘정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것은 이제는 비밀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질문은 결혼 전의 신부들만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황만 다르지 우리는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이런 질문들을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던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임직식을 준비할 때 전날까지 담임목사가 상담하는 내용 중에는 “제가 이 직분을 정말 받아도 될까요?”라든지, “저는 합당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같은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 역시 목사안수를 받을 때 이 질문을 저에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내가 목사가 되도 될까?’ ‘내가 정말 이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이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저서 제목 중에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꼭 저에게 하는 질문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번민의 밤을 지나 정신없이 목사가 된 후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목사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자신을 하나씩 더 확실하게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도사 때는 멋모르게 해대던
(2010)2010년 3월 29일은 전여회가 2009년 5월에 기공감사예배를 드리고 건축을 시작했던 사랑의 집의 준공 감사예배를 드린 뜻깊은 날이었다. 전여회 사랑의 집은 1996년 6월 사랑의 집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도하며 시작한지 14년만에 결실을 맺었다.오랜 시간동안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민하며 기도했는데 2008년 마침내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모든 일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경서지방 남부교회 임대식 목사님이 선친께 물려받은 경북 김천시 부곡동 180번지 2,342평의 전망 좋은 땅을 기증해 주셔서 전여회는 11월 4일 대지 등기 이전을 마치고 2009년 4월 ENG종합건설과 건축계약을 맺고 건축을 시작하였다. 수원중앙교회를 섬기시는 우경애 증경회장님이 추진위원장으로서 이 일에 남은 생애를 걸겠다고 헌신하였고 조혜도 증경총무님은 제일 먼저 가지신 것의 모든 것이라며 힘에 겨운 헌금을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건축을 위해 마치 우리들의 등을 떠미시는 것만 같았다.추진위원회는 기도하며 모금 계획을 세웠는데 사랑의 집 방이나 식당, 휴게실, 사무실등에 3000만원의 헌금을 하는 교회나 개인의 명단을 부착해 드리기로 했다. 전여회는 독
어느 그리스도인 모임에 갔더니 그 중 어떤 그리스도인이 차라리 불교방송을 듣는 게 어떠냐고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동의를 얻고자하는 기세를 펴고 있었다. 모두 교회신자들이었고 목사는 나 홀로였다.모두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 사람은 나를 향해 가부간에 나의 의견을 말해 보라는 듯 시선을 나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그런 질문에 당황하기는커녕 오죽하면 오늘 날 교회신도들이 저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 하면서 내심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나는 그런 질문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더니 그의 긴 설명이 뒤따랐다 : 몇 몇 기독교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데 온통 마음이 가지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를 대게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왜 저 멀리 떨어진 지방의 담임목사가 굳이 온 한국이 다 듣도록 설교를 내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저 목사가 저렇게 설교하자니 교회 헌금을 얼마나 방송국에 쏟아 부었을까? 저 설교목사의 설교는 그럴사한대 실제로 그의 삶도 그럴까?어쩌면 전에는 아비목사가 설교하더니 이제는 자식목사가 대를 이어 설교할까.저 깡촌교회 목회자는 언제 저렇게 전파를 타는 설교를 할까?중들 설법이야 의당히 별것 아니라 치부하
“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2:11)예수님께서 우릴 위해 세상에 오신 구주 성탄절과 새해를 맞아 동역자들과 섬기는 교회에 풍성한 은총과 축복을 기원합니다. 우리가 동방 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여 동방으로부터 험난한 사막길을 지나 베들레헴까지 찾아가 아기 예수께 경배하지 못할지라도, 어린 아이가 자기의 점심을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드림으로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조각을 12광주리에 거둔 것처럼, 우리 침례교 성도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6:9)지방회비의 1/10을 절약하여 돕는 방법도 있겠다고 생각하여 의논해 보기도 했고, 최보기 증경회장의 좋은 제안에 본인도 동의한바 있거니와 믿음의 분량대로 동역자들이 사례비를 봉헌하는 것이나, 옛말에 십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