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로마가톨릭 교회의 화체설을 비판하며 화체설에 입각한 교회의 미사를 개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비판과 그 개혁은 미진하였다. 마르틴 루터는 화체설을 비판하면서“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도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 그 분이“실제로”임재(Real Presence)하시고 “육체적으로” 임재(Physical Presence)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도들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쟝 깔뱅은“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영적으로”임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루터나 깔뱅이나 모두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해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실제에 있어서는 로마가톨릭의 화체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님이 임재해 있는 떡과 포도주에는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마술적인 능력이
지도자가 없거나 주인이 시원찮은 단체는 흔히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 불린다.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 개척시대에는 말을 타고 평원을 내달려서 먼저 경계를 정하고 말뚝을 세우면 제 땅이 되던 때가 있었다.그 무주공산 북아메리카 대륙이 오늘날과 같이 지도자와 서민이 함께 존중되는 나라가 되기까지는 미국 헌법의 기초를 놓은 로저 윌리엄스와 에이브러함 링컨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는 인류 역사와 성경과‘삼국지연의’나 시내암의 ‘수호전’등 문학작품에서 수많은 영웅호걸의 부침(浮沈)을 본다.얼마 남지 않은 수군과 전선(戰船)으로 남해바다 울돌목에 배수진을 치고 수많은 일본군 전함과 맡서 싸운 이순신 장군 같은 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임진왜란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으며, 처칠과 같이 용기 있고 걸출한 전략가가 없었다면 독일의 무차별 포화 아래에서 누가 영국을 구할 수 있었으며, 맥아더 장군같이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군인이 없었다면 누가 어떻게 공산군을 물리치고 한반도의 자유를 수호할 수 있었으랴!그런데 역사는 이들 위인들의 인간 승리 여부를 한 때의 성공과 업적에 두지 않고 뜻밖에도 시대적 요구를 깨달은 지혜로 진퇴(進退)를 결단한 용기에 두었다.
“( 뱀 )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 부패 )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11:3)세상 모든 싸움에는 전략이 있듯이, 특히 마귀와의 영적 싸움을 치루는 우리에겐 그 어떤 싸움보다도 잘 싸우고 승리하기 위해서 마지막 때의 마귀의 전략을 잘 분석하고 그에 대한 정확한 대안을 구사해야만 하겠습니다.우리가 하나님께 진실함으로 찬양 드릴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지 진실함을 떠나 건성으로 거짓되게 찬양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곳에 역사하시고 거짓된 곳엔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있을 때 하나님이 그곳에 찾아오셔서 역사하는 것이지, 미움과 시기와 탐심과 불평 등 더러운 것이 마음에 차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기가 힘들뿐더러 그러한 곳에는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마귀의 전략은 성도들의 마음을 부패시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생활을 “쭉정이와 가라지” 신앙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며, 또한 교회 내부에서도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위의
주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통해 오직 우리 주 예수님 홀로 우리를 다스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사기 8장과 9장은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 사후(死後)에 이스라엘의 지도력에 공백이 생기자 기드온의 첩의 몸에서 태어난 ‘아비멜렉’이 이복형제 70명을 기드온의 성읍으로 불러 한 반석위에서 몰살시킨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요행히 피하게 된 기드온의 말째 아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이 엄청난 살육의 사건을 나무들의 ‘우화’로 백성들을 향해 소리쳐 알리는 사건의 기록입니다.이 끔직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형제를 살육하게 된 것입니다. 9장에서 보면 ‘아비멜렉은 어머니의 고향 세겜 성에 가서 여룹바알(기드온)에게 70명의 아들이 있지만 오직 자기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추악하고 잔인한 사람입니다.(9:5) 이 사건에서 하나님은 ‘요담’의 입을 빌어서 ‘나무의 우화’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잘못된 지도자를 허용
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로마가톨릭 교회의 화체설을 비판하며 화체설에 입각한 교회의 미사를 개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비판과 그 개혁은 미진하였다. 마르틴 루터는 화체설을 비판하면서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도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 그 분이 “실제로” 임재(Real Presence)하시고 “육체적으로” 임재(Physical Presence)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도들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쟝 깔뱅은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임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나 깔뱅이나 모두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해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실제에 있어서는 로마가톨릭의 화체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님이 임재해 있는 떡과 포도주에는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지나간 세대에 복음전선에 투신한 선진들의 목회여정은, 우리가 목격한바, 생사를 건 기도와 젊음을 불태운 열정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알게 모르게 조용히 목회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유명목회자도 있어서 젊은 목회자들 중에는 그들의 말씨와 설교를 모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젊은이들이, 남이 낸 길로 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바라면서 경험에서 얻은 몇 가지 깨달음을 제시하는 바이다.단정한 복장은 예배인도자의 필수 요건이다. 반소매에 청바지를 입고 강단에 설 때도 있겠지만, 정규 예배에서는 저고리 앞단추를 잠그고 바지를 다려 입고 머리를 빗은 단정한 모습으로 강단에 서야 한다.성경 찬송과 교독문을 우리말 발음과 고저장단에 맞게 봉독(奉讀) 교독(交讀)하고 찬송가를 곡조대로 부르도록 준비해야 한다. 성경봉독은 더듬고, 교독문은 리듬을 벗어나고, 찬송가는 가락을 등지면 “준비가 부족한 목회자”로 인식되어 예배(목회) 시작부터 실족하는 신자가 생기게 마련이다.신자(청중)들을 손윗사람으로 생각하고 강단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신(操身)해야 한다. 원로들이 반말하며 ‘할렐루야’ ‘아멘’을 요구한다고 해서 젊은 목회자가 별 의미 없
세계 인구는, 2013년 통계에 의하면 71억 명이다. 중국이 14억으로 1위, 2위 인도가 13억, 3위 미국이 3억 2천만, 10위 일본이 1억 3천만, 27위 한국이 5천 100만, 47위 북한이 2천 5백만 명이며, 계속되는 내전에다 이슬람국가(IS)에게 국토의 일부를 점령당해 수많은 난민을 낸 시리아는 세계 54위로서 2천2백만 명이다. 세계 225개 국가 가운데서 인구가 가장 적은 핏케언제도는 56명(전 년에는 50명), 224위의 바티칸이 839명이다. 대륙별 인구 분포는, 대략, 아시아가 40억 명으로 세계인구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아프리카 10억, 유럽 8억, 남미 6억, 북미주 3억 5천, 오세아니아 3천 200만 등이다. 세계인구 증가 추세는, 시저가 로마를 통지하던 BC49년에서부터 AD30년까지 세계 인구는 2억 1천만에서 2억 5천만으로 추산되며, 그로부터 1700년이 지난 1650년에는 5억 5천만, 1750년에는 6억 2천만, 1804년에는 10억, 1927년에 20억, 1960년에 30억, 1974년에 40억, 1987년 7월 11일 자로 50억, 1999년 10월 12일 자로 60억이 되었다. UN은 2011년 10월 31
포퓰리즘(Populism)근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들과 연관해서 ‘포퓰리즘’이란 말이 자주 쓰인다.몇몇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검토해보니 이 말의 의미가 서민정책 또는 사회복지정책을 가리키는 말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포퓰리즘을 간단이 정의하면 인기영합주의이다. 위정자나 정치인이 미래지향적 정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책임한 정책적 재정적 혜택을 제시하거나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지난 몇 년 동안 선거철만 되면 무상급식과 고속도로 지선 건설 등 지역주의에 기인한 복지 공약이 남발되더니 얼마 전에는 서울 경기지역의 몇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청년실업자들에게 매 월 일정액의“청년수당”이란 것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해서 물의를 빚고있다.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급식과 수당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우리 실정에는 무상급식 보다는 노후 교실과 체육관 등의 시설보수가 시급하다.무상급식 재원의 일부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지만 나머지는 교육청이 떠안고 있어서 이로 인해 각 급 학교에는 시설 보수(補修)예산이 줄어들어 낡은 건물을 보수하지 못해 학생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보도에 의하면 교육청은 수 조(兆)원이 부족한 재원으로 20
‘온정’은 사랑과 동정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의미하지만, ‘온정주의’는 대중의 인기와 여론에 영합해서 사리에 맞지 않는 관용을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우리는 세월호 사건의 추이를 보면서 온정주의의 폐해를 실감하고 있다. 이 사건은, 알려진 바와 같이 구원파(유병언)가 인천과 경기도 일원에서 종교라는 미명 하에 저지른 각종 탈법행위와 뇌물 공여 등이 원인을 제공해서 수백 명의 학생과 교사 및 시민이 바다에서 참사를 당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행정당국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관련자들에 대한 신속한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및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계획을 세우게 했으나 “특조위”는 해를 넘기면서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세월호특별법”이란 것에 거론되는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혜택이 참으로 놀랍다.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알려진 바, 국가적 추념일 제정, 추모비 건립, 희생자를 의사자 처리하는 문제, TV수신료, 전기료, 상속세 할인과 감면 등등 순국선열과 일급 국가유공자 및 천안함 용사들에게조차 베풀지 못한 보상과 혜택이 논의되고 있다.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애석하고 비분을 금치 못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 우리가 )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막9:5)2011년 1월 1일 토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매월 시작하는 1일은 기도원에 올라가서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날 세상으로 다시 내려오곤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바로 주일 전날이며 날씨도 그 어느 때 보다 많이 추웠을 뿐 아니라 더욱 내 마음을 흔든 것은 그 전날에 눈이 많이 와서 차를 몰고 산으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오랜 망설임 끝에 결론 내리기를, 차를 산 중턱에 세우고 걸어가는 일이 있어도 가자는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기도원에서 낮에 눈을 다 치워 놓아서 올라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을 자고 그날도 새벽 1시 5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떠서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고 찐빵모자와 두툼한 장갑을 끼고 온몸을 덮을 담요 1장을 들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하나님께서 저의 정성을 보셨는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