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머니는 항상 내가 아프면 “안 씻어서 그래!”라며 등짝에 강력한 스파이크를 날리셨다. 그게 감기든 발목을 삐거나 넘어져 상처가 난 것이든 결론은 항상 안 씻어서였다. 외출할 일이 없을 때만 안 씻었는데…. 사실 지금은 웃고 넘기는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어머니의 의도대로 행하기엔 그리 효자가 아니었다. 지난 11월 15일,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경북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어 대한민국 지진 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총회 건물이 있는 여의도에서도 지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로 인해 한동대학교에서 건물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포항 지역에 크고 작은 피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11월 16일로 예정돼 있던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수험생의 안전을 위해 일주일 뒤로 연기될 만큼 지진의 여파는 굉장했다. 한국교회도 포항 지진의 충격이 꽤나 큰가보다. 지진 진원지와 매우 가까웠던 한동대에는 “동성애 옹호론자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려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어떤 목회자는 “종교계에 과세를 한다고 하니 포항에 지진이 났다”며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다 세금을 내라 하나”라고 말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운동권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지방이기도 했고 노무현 정부 시기라 민주화운동을 할 것도 아니고 취업도 어려운 상황이니 데모 같은 것은 담배값 인상에 반대하는 현수막 정도에 그쳤다. 어느 따사로운 봄날, 대학생이 된 후 처음으로 캠퍼스 안에서 데모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우리 캠퍼스에서 그나마 머리 좀 돌아간다는 한의대생들이었다. 그들은 차상위계층 장학금 신설을 반대하기 위해 북을 들고 강의실 밖을 나섰다. 주된 요지는 ‘왜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받는 장학금을 차상위계층에게 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시위 결과는 참담했다. 학생들 눈에 한의대생들의 시위는 집단이기주의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결국 한의대 학생회는 사과 대자보를 내건 후 백기를 들었다. 돌려막기 식 장학금 신설이라는 한의대생들의 외침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지만 학생들의 공감대 형성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지난 9월 총회에서 규약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대위 구성과 관련된 규약 하나 빼고 나머지 다 통과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단의 발전을 위해선 규약개정이 어느 정도 필요할 법도 한데 개의안으로 통과된 것도 아니고 아
교계기자를 처음 시작한 2010년 그해의 핫이슈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였다. 길자연 목사가 김동권 목사를 59표차로 제치고 한기총 제17대 대표회장에 선출됐다. 선거 과정이 매우 치열한 후유증 탓인지 금권선거 파문이 일었다. 길자연 목사가 대표회장에 당선되기 위해 돈을 뿌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기총은 내분으로 몸살을 겪었고 길자연 목사는 직무정지를 당한 후 7·7정관이 인준된 후 대표회장 직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일련의 상황을 취재하면서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는데 성경말씀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내게 하나님의 말씀은 경외의 대상이었으나 그들에게 하나님은 변명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비단 한기총 사태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서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는 이렇듯 하나님 말씀을 호도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최근 명성교회 후계자 문제가 교계에 떠들썩하다. 명성에 “답은 ‘하나’다”라는 말이 은연중 떠돌아 결국 김하나 목사가 후임으로 청빙될 것이 유력했다. 그러나 소속 교단인 예장통합 총회가 지난 98회 총회에서 결의한 세습방지법이 걸림돌이었다. 명성교회 측은 격렬히 반응했다. 소속노회인 서울동남노회 제73회 정
내 고향 광주광역시는 장로교 교세가 강한 곳이다. 신도심으로 개발되는 곳은 한 블록 당 예장통합·합동 교회 2~3개가 나란히 있을 정도로 장로교 끼리의 경쟁이 참으로 심하다. 그래서 그런지 침례교회는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이다. 심지어 “침례교회는 이단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말도 고향교회 사람들로부터 종종 들었다. 구원파와 같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교단명에 ‘침례’라는 말을 쓰는 것도 문제지만, 그만큼 침례교가 광주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도 이런 평판에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교계기자의 삶을 살기 위해 서울 땅을 밟은 후 처음 맞이한 침례교와의 대면은 한기총이 분열된 후 2015년의 일이다. 당시 침례교는 한기총 행정보류를 철회하고 실행위 복귀 의사를 밝혔다. 예장합동·통합 다 빠져 쓰러져가는 한기총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줬기에 차라리 한기총이 해체되고 건강한 교단끼리만 다시 모여 한국교회의 위상을 회복하길 바랐던 기자 입장에서는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했다. 침례교의 이야기가 더 이상 교계기자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가장 최근 유관재 직전총회장이 한교총에서 대언론 창구역할을 하면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지만 주도적
사이비이단을 주제로 한 ‘구해줘’라는 드라마를 통해 한국 사회와 교회를 오염시켰던 사이비 이단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먼 과거 백백교를 비롯해 아가동산, 영생교를 비롯해 일본의 옴진리교 등 사이비 이단들의 과거가 다시 한 번 조명돼 많은 이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구해줘̓를 통해 화제가 된 인물도 있다. ‘응답하라 1988’과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유명한 배우 박보검이 그 주인공이다. 박보검은 귀신론을 추종하는 것으로 알려진 모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9월 25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교회 행사를 홍보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이단의 기준이 뭐냐”며 한국교회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단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나쁜 것은 정통교단이라는 주장이 연이어 달린 것을 목격한 것이다. 이단으로 지목받은 교회에서 조직적으로 쓴 것인지 아니면 안티크리스천이 교회에 대한 반감에 작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지금 한국교회에 대한 이러한 여론들을 묵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단들은 봉사와 구제를 자신들의 홍보수단으로 사용하며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이런 모습에 안티크리스천을 비
대학생 시절 ‘사회조사방법론’이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낸 민형배 교수가 강의를 담당했다. 민 교수는 첫날 강의에서 “만약 당신이 선거에 나선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답은 여론조사였다. 여론조사 결과가 좋으면 이를 통해 밴드웨건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좋지 않을 경우에도 해당 결과를 가지고 선거 전략을 짜는 등의 순서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현 상황을 아는 것, 그것이 미래의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침례교 제107차 정기총회에는 우리 교단의 주요 현안들이 논의됐다. 가장 큰 이슈는 침례병원 회생에 관한 건이었다. 이밖에도 침신대 문제, 규약개정의 문제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교단지 기자로서의 첫 총회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침례교의 미래를 향한 준비에 대한 관심이 다소 미약해보인다는 것이다. 정기총회 상정안건 어디에도 다음세대를 위한 안은 나오지 않았다. 신안건 시간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이를 위한 내용은 없었다. 총회 의사자료집에 나온 총회 행정 통계를 보고서야 아직 우리교단이 미래를 향한 이정표를 제시하기에는 미흡한 상황이
침례신문에 들어오기 전, 유아세례를 반대한다는 것과 신학의 폭이 넓다는 점, 신학교는 대전에 있다는 점,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우리교단의 전부였다. 때문에 약간 낯선 느낌도 있었지만, 한 달간 지내보니 연일 사고기사가 터져 나오는 타 교단과 비교할 때 매우 성숙하고 건강한 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대전에 있는 침신대에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캠퍼스의 모습에 우리교단 목회자들의 침신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감동스러웠다. 신문사 사무실 분위기도 지금까지 내가 거쳐 온 어느 회사보다도 화목하다. 급여도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산다면 넉넉하진 않더라도 밥을 굶지는 않을 수준이라 만족하며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 기자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마도 자신이 쓴 기사를 누군가 읽어줄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교파 신문에 있을 때는 매일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하며 누군가 내가 쓴 기사를 공유했는지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침례신문에서는 내 기사를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 참으로 행복하다. 그래서 기사를 쓸 때 더 생각하고 쓰고 있다. 취재 나가서 명함 내밀 때 “이런 신문도 있어요? 처음 듣는 곳인데…”란 소리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