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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저주타령?

여의도의 창

어릴 때 어머니는 항상 내가 아프면 “안 씻어서 그래!”라며 등짝에 강력한 스파이크를 날리셨다. 그게 감기든 발목을 삐거나 넘어져 상처가 난 것이든 결론은 항상 안 씻어서였다. 외출할 일이 없을 때만 안 씻었는데…. 사실 지금은 웃고 넘기는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어머니의 의도대로 행하기엔 그리 효자가 아니었다.
지난 11월 15일,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경북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어 대한민국 지진 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총회 건물이 있는 여의도에서도 지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로 인해 한동대학교에서 건물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포항 지역에 크고 작은 피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11월 16일로 예정돼 있던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수험생의 안전을 위해 일주일 뒤로 연기될 만큼 지진의 여파는 굉장했다.


한국교회도 포항 지진의 충격이 꽤나 큰가보다. 지진 진원지와 매우 가까웠던 한동대에는 “동성애 옹호론자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려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어떤 목회자는 “종교계에 과세를 한다고 하니 포항에 지진이 났다”며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다 세금을 내라 하나”라고 말했다.
그들의 논리대로 하자면 오늘 아침 출근길 날씨가 추운 것도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도 다 동성애와 종교인과세 때문이다. 종교인과세 실무를 담당하는 기재부가 포항에 있나? 진짜 소돔과 고모라 땅은 서울 한복판인데 뜬금없이 왜 포항이냔 말이다. 차라리 우리 어머니가 줄곧 하시는 “안 씻어서 그래”가 포항 지진 원인에 더 가까워 보일 정도다.


종교인과세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니 정말 한국교회는 세금내기가 싫은가 보다. 2015년에 열렸던 평화통일기도회에서 “평화통일을 위해 종교인과세를 반대한다”라는 행동강령을 발표했을 때도 평화통일과 종교인과세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했는데 이번 일을 통해 정말 내가 결정권자라면 차라리 세금 안 물릴테니 적당히 좀 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이미 언론을 통해 지진이 일어난 원인이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밝혀졌는데도 한국교회는 선사시대 샤머니즘과 같은 주장들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내가 동성애랑 종교인 과세 때문에 기분이 몹시 나빠, 그래서 포항에 지진을 내릴거야”라고 귀에다가 속삭이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아서 그런 말들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 한국교회가 할 일이 동성애와 종교인과세 때문에 지진이 났다고 저주를 쏟아낼 때가 아니다. 영하의 날씨에 대피소에서 고생하고 있을 포항 이재민들을 위해 담요라도 들고 찾아가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뭐 때문에 지진이 났는지는 제발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내뱉지는 마시기 바란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9)


범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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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