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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펜윅의 비즈니스 선교에 관한 평가-2

안희열 교수
한국침신대 선교학

두 번째 질문의 답은 1896년이다. 펜윅의 원산 농장 10만 평 구입설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891년 구입설이고, 다른 하나는 1896년 이후설이다. 연구자는 후자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펜윅이 1891년 원산에서 비즈니스 선교를 시작할 때는 경제적 여유가 없던 때라 작은 땅을 구입해서 원산 농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방문(1893~1896년)을 마치고 귀국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 “한국의 농사법”(1898년 8월)에서 “큰 땅”에서의 성공담을 소개한 것을 보면 1896년 봄 이후부터 1898년 8월 사이에 10만 평의 큰 농장을 매입한 것으로 본다. 여기에 주목할 점은 펜윅이 1898년 8월에 게재한 글이 “한국의 농사법”이지 “한국의 과일 재배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작물은 1년 단위로 수확하지만, 과일의 경우 특히 사과는 8년째부터 수익이 발행하기 때문이다. 


펜윅이 1896년에 구입했다면 2~3번 정도의 성공담이, 1897년이면 겨우 1~2번 정도의 성공담이 잡지에 담아있기에 연구자는 1896년 구입설을 지지한다. 오지원은 1897년에 펜윅이 약 10만 평의 농장을 구입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질문의 답은 펜윅이 3년간 미국과 캐나다 방문(1893-1896년)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본다. 펜윅이 1889년 내한할 당시 한국연합선교회에서 선교비를 얼마 정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같은 형편에 있던 독립 선교사 게일이 연 500달러를, 하디가 연 750달러를 받은 것을 고려한다면 펜윅 역시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당시 이 돈은 그리 높지 않은 연봉이었다. 특히 펜윅의 어학 선생이었던 서경조는 펜윅을 송천(소래)에서 만난 이후 소래 사역(1890년 가을-1891년 가을)에 비쳐진 펜윅의 경제적 열악함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편목ᄉᆞ(펜윅)의 서투른 죠션말대로 고집ᄒᆞ니 나는 그 말대로 못ᄒᆞᆫ다고 ᄒᆞ야 피ᄎᆞ에 쟁론만 됨으로 ᄒᆞᆯ수업서 작별ᄒᆞ고 상경(上京)하엿다가 도로 숑쳔(소래)으로 ᄂᆞ려오니 편목ᄉᆞ(펜윅)는 돈업ᄂᆞᆫ 사ᄅᆞᆷ이라 수륙(水陸)간 왕래에 내돈으로 썻스니 이럼으로 내가 빗을 지게 된지라.” 


내한 초기 펜윅은 가난뱅이 선교사로 비춰졌지만, 그가 10만 평의 큰 농장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3년간 미국과 캐나다 방문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펜윅은 이때 클래런던 스트리트 침례교회(Clarendon Street Baptist Church)의 고든(Adoniram Gordon) 목사가 운영하던 보스턴 선교사 훈련학교(Boston Missionary Training School, BMTS)에서 1년 미만으로 선교사 훈련을 받고, 목사 안수도 받은 후 한국순회선교회(Corean Itinerant Mission, CIM)를 조직하고 회장이 된 후 농장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모금해서 귀국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한국순회선교회의 원리와 목적 선언문’을 보면 “필요한 모든 자원은…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 있는 기도의 응답을 확신”한다는 내용에서 원산 농장에 필요한 자금을 이 기간 동안 마련해서 대단위 농장으로 확장한 것으로 본다.

 

2. 한국연합선교회와의 결별에 따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함
펜윅은 한국연합선교회의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한 지 2년 만에 필화사건(筆禍事件)으로 일생일대의 큰 위기를 맞게 됐다 사건 발단의 계기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1891년부터 1년간 안식년을 가질 때 너무 과장된 선교 보고를 했음을 펜윅이 나이아가라 사경회 총재였던 제임스 브룩스(James H. Brooks)에게 편지했고, 브룩스는 1891년에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진리(The Truth)에 기고하면서 사건이 발생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언더우드가 소래에서 세례를 베풀 때 너무나 터무니없이 과장되게 숫자를 올렸다는 편지가 발단의 계기가 됐다 
이 편지는 펜윅과 언더우드의 부인인 릴리아스(Lillias) 간의 혈전으로까지 번져갔고 릴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언더우드 박사는 이 일로 크게 불안해하고 마음이 상했다. 이것은 언더우드의 평판에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선교에 큰 타격을 주었고, 한국 사업에 대한 국내 교회의 신뢰를 심각하게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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