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크로스처치, ‘2025 뉴모라비안 콘퍼런스’ 성료

얀 후스에서 진첸도르프까지 모라비안 신앙유산 깊이 있게 다뤄

 

 

더크로스처치(박호종 목사)는 지난 11월 10~12일 성남 분당 원띵채플에서 ‘2025 뉴모라비안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600여 년 전 시작된 모라비안 형제단의 신앙유산을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는 모라비안 역사·신학·선교·실천·비즈니스의 다섯 축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국내 연구자뿐 아니라 전 세계 모라비안 전통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살아내고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번 콘퍼런스는 단순한 학술행사가 아니라, “기도·선교·경건의 본질 회복”을 목표로 기획됐다. 더크로스처치는 그동안 기도운동을 진행해 오는 과정 속에서 모라비안 운동의 신앙적 뿌리와 실제적 적용을 깊이 탐구해 왔다.

 

 

모라비안, 본질을 잃지 않는 경건의 역사
개회 세션에서 박호종 목사는 요한계시록 14장 3~5절을 본문으로 모라비안의 핵심을 설명했다. 그는 성경 속 14만 4천을 둘러싼 해석 논쟁을 언급하며, 많은 단체가 “누가 들어가느냐”에만 관심을 두지만 정작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라비안 형제들은 바로 그 부류였다. 그들은 시대의 핍박과 도망, 순교의 위협 속에서도 어린 양의 길, 십자가의 길을 기쁘게 따라간 사람이었다”라고 설명하며 모라비안의 전통이 ‘본질을 잃지 않는 경건의 역사’임을 강조했다.


박 목사는 모라비안의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종교개혁 사건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반드시 다시 붙잡아야 할 길로 제시했다. 그는 “지금 우리의 문제는 너무 많은 것이 섞이고 본질이 혼탁해진 데 있다”며 “모라비안 형제들은 목숨 걸고 본질을 지킨 사람들이다. 이 시대의 한국교회가 정말 배워야 할 유산”이라고 말했다.


얀 후스를 비롯한 초기 개혁자들이 마틴 루터보다 한세기 앞서 신약 중심 신앙을 추구하며 교회의 부패에 저항했다. 박 목사는 모라비안의 역사가 도망, 추방, 박해, 죽음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모라비안들은 종교개혁이 끝나면 환영받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가혹한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박 목사는 “본질을 지키려는 요구가 또다시 핍박의 이유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기도는 삶과 세대를 바꾸는 힘
박호종 목사는 이 콘퍼런스가 단순한 지식 습득의 자리가 아니라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모라비안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이 시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동일한 각오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1990년대 인천에서 일어난 십대 기도운동 이야기를 소개하며, 자신이 모라비안의 유산에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당시 ‘주나임(주님의 나라가 임하소서)’이란 이름으로 번졌던 청소년 기도운동을 언급하며, “때로는 학교에서 맞아가면서도 기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고난이 오면 불이 붙는다”며 당시 수백 명의 학생이 모여들던 현장을 회상했다.


그는 이 경험이 모라비안 형제단의 기도운동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모라비안의 100년 기도운동을 보면, 기도가 단순히 모이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고 세대를 바꾸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김성욱 교수 “모라비안, 전문인 평신도 선교 가장 먼저 실천”
첫날 저녁 세션은 총신대 김성욱 명예교수가 ‘신학적 관점에서 본 뉴모라비안의 선교신학적 토대’란 주제로 강의했다. 김 교수는 모라비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평신도 선교 영성’으로 정의했다. 그는 “모라비안은 전문인·자비량·평신도 중심의 선교를 가장 먼저 실천한 운동”이라며,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모든 크리스천은 선교사 △전문인 선교는 현대 선교의 중심축 △교회는 선교로 존재 △평신도는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사역의 주체라는 점 등을 제시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목회자 중심 구조에서 평신도 사역을 회복해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모라비안 신학의 중심 단순함, 공동체, 그리고 사랑
이번 모라비안콘퍼런스를 위해 특별히 초대된 강사가 있다. 그는 바로 30년 넘게 모라비안 전통을 연구해 온 크레이그 애트우드 박사(Dr. C. Atwood)이다. 애트우트 박사는 콘퍼런스 둘째날과 셋째날 연달아서 강연을 펼치며 한국교회에 모라비안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애트우트 박사는 얀 후스와 형제연합회(Unitas Fratrum)의 역사를 강의하며 “15세기 보헤미아 지역의 개혁은 루터보다 훨씬 앞서 시작된 ‘첫 번째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직 매매와 교권주의에 맞선 이들의 개혁운동이 결국 모라비안 교회의 기초가 됐다고 분석했다. 애트우트 교수는 “후스의 개혁은 단순한 신학 논쟁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문제”였다며 이를 통해 보헤미안 형제단은 단순한 예배, 성경적 윤리, 공동체적 삶, 평등한 신앙 구조를 추구하며 교회와 사회의 변화를 꿈꿨다는 설명을 풀어냈다.


애트우트 박사는 “대부분의 종교운동은 이런 수준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모라비안은 ‘흩어진 씨앗’처럼 오히려 더 깊이 뿌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공동체는 숨어서 성경을 암송하고, 지하 예배를 드리고, 가족 단위로 신앙을 계승했다. 이 시대를 “모라비안 정체성이 가장 순수하게 다져진 시기”라고 평가한 애트우트 박사는 외형을 잃고, 제도를 잃고, 건물을 잃었지만 말씀, 경건, 단순함, 공동체라는 핵심 요소만 남았기에 오히려 더 강해졌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 모라비안 공동체의 핵심은 선교이다. 애트우트 박사는 그들이 최초의 세계 선교운동을 일으킨 공동체이며 그들이 파송한 선교사는 목회자나 성직자가 아닌 평범한 평신도, 장인, 직공 인쇄공들이었음에 주목했다. 그는 “이들의 선교는 조직이 아니라 삶이었다. 어디든지, 누구든지, 어떤 환경이든지 복음을 전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애트우트 박사는 모라비안 신학의 중심은 단순함과 공동체, 그리고 사랑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본질로 돌아가는 단순한 신앙 △평신도를 사역의 주체로 세우는 교회 구조 △말씀이 삶으로 연결되는 공동체적 영성 △기도가 끊어지지 않는 지속성의 영성 △소수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 등을 한국교회가 배웠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박호종 목사 “뉴모라비안으로 새로운 부흥 일어나기를”
이밖에도 미국 모라비안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김혜린 선교사가 참여해, 모라비안 공동체의 실제 생활, 경건훈련, 선교 방식 등을 나눴고, 신이철 대표(글로벌창업네트워크)가 “비즈니스선교(BAM)와 선교적 교회로서 모라비안의 경제활동과 영향”에 대해 발제했다.


행사를 마치며 박호종 목사는 “이 콘퍼런스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본질 회복과 선교적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흐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라비안 형제단은 숫자나 규모로 정의되지 않았다. 그들은 본질을 지키는 무리였다. 우리가 그 길을 다시 걷고자 한다면,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부흥의 씨앗이 심겨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범영수 부장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