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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같은 사람

신약원어 산책-5

최선범 교수
침신대 신학과
(신약학)

우리 옛 사람들은 전염병을 ‘역병’이라고 불렀고 서양 사람들은 ‘흑사병(the black plague)’ 또는 ‘페스트(pest)’라 불렀다. 현대 의학자들은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의 주범 역시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규정한다.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됐다는 뜻에서 사람들이 ‘우한 폐렴’이라고 불렀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모습이 코로나 같다는 뜻에서 ‘신종 코로나’라고 불렀고, 마침내 사람들은 2019년도 12월에 발생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코로나19’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름을 어떻게 지어 불러도 그 특징은 사람의 생명에 치명적인 악성 바이러스로 이전의 어떤 바이러스보다 감염이 잘 되는 전염병이다.


구약성경에 역병은 패역한 세대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들 중에 한 현상이다. 신약에는 역병에 대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상 마지막 때의 증세들 중에 하나가 “전염병”임을 말씀하셨다.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 21:11).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마지막 때의 증조를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만을 언급하는데 유독 누가복음은 전염병과 무서운 일들을 언급한다. 복수 명사로 표기된 “전염병(로이모이 loimoi.)”은 한 곳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각기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것을 강조한다면 복수 명사로 표기된 공포(포페트라 fo,bhtra)는 하늘 아래 땅 전체에 퍼져 있는 듯하다.


물론 fo,bhtra(포페트라)는 전염병과 분리되어 있는 “공포,” “두려움,” “무서움”을 뜻한다. 즉 전염병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공포가 전역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세적 증세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산발적인 확산의 공포에 사로잡혀 팬데믹(Pandemic)을 예견하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은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말씀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별명의 전염병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전염병”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유사한 개념을 성전 공동체인 교회와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삶에 적용시켜 설명한다. 바울은 거룩한 성전 공동체인 교회를 부패하게 한 사람들을 전염병자로 취급했다.


그래서 바울은 한 두 사람의 부도덕한 행위를 전염병과 같은 위험성을 인식하고 그들을 건전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출교명령을 내렸다(고전 5:1~2, 13).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5~6).


바울이 출교라는 사회적 격리조치를 하기 위한 것은 최소한 그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부도덕한 행위가 전염되지 않게 하기 위한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바울은 영적 전염병자에게만 경고한 것이 아니라 영적 신종 바이러스의 감염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방심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엄격한 방역체계를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9~10) 바울은 영적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방역체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사귀지 말라”라고 하는 바울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은 사람과 인간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악한 바이러스를 차단해 자신과 다른 사람이 감염되지 않게 하라는 현실적인 요구이다. 인간의 육체에 숨을 끊어 죽게 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나 인간의 영혼을 죽이는 영적 전염병이나 똑같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그들의 독소가 인간에 퍼져 죽음에 이르게 될 때 비로소 그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바이러스는 죽음을 전달하는 악한 바이러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전달하는 행복 바이어스도 있다. 사람의 시각에 따라 같은 바이러스라고 해도 달리 볼 수 있다. ‘코로나19’란 신종 바이러스에 의해 죽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망의 바이러스이지만 생화학을 만드는 한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적국에 대항해 적은 죽이고 자신의 국민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체 무기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울은 한 영적 바이러스를 보는 시각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극단적인 시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바울은 예수 복음의 십자가가 생명을 인도하는 길이라고 믿었지만 이미 세상의 체계에 전염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바울은 오래 전에 생명줄과 같은 예수 십자가의 복음이 세상 종교와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전파하는 전염병으로 여겨져 공포심을 갖게 된다는 체험했다. 사도행전에 보면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당대의 유능한 최고의 검사 더둘로를 선발해 총독이 주관하는 법정에 바울을 기소할 때에 가장 큰 죄목은 “전염병(로이모스 loimo,j)”이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 24:5). 바울은 전염병의 발원자인 예수로부터 전염된 자이고, 전염병자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전염력을 가진 예수 바이러스의 거점지역(우두머리)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바울을 죽이는 것이 예수 전염병을 차단하고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사안이었다. 바울의 전도 열정으로 시작된 예수 바이러스는 온 세상을 흔들었다.
우리는 예수의 바이러스로 세상을 흔들고 있는가? 개인적 또는 집단적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 교회, 직장 공동체를 위협하고 절망과 죽음을 옮겨주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존재는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