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한글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27)

조선의 “새빛” 선교사들

“강의를 듣고 전도에 다시 매진하기로 했습니다. 말씀의 힘을 믿습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관리했던 필자는 개교회에 ‘한글 성경의 유래 및 조선 중.후기 선교사’ 관련 강의를 하는데, 강의 후 필자에게 하는 교역자들의 말이다. 왜냐하면 강의에서 전도지 얘기를 꼭 하기 때문이다. 과연 전도지 얘기는 무엇일까?


오늘날 교계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요즘은 전도지가 잘 통하지 않아요.” 정말 그럴까? 통계적으로 보면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처럼 보인다. 2024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성도의 약 70%가 ‘국내 전도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실제 초신자의 교회 유입률은 약 29%에 불과하다. 반대로 이미 신앙 경험이 있는 이른바 ‘수평 이동자’의 비율은 71%에 달한다. 전도에 의해 교회에 출석하는 비율이 적다는 것이다.


또한 비개신교인 중 “최근 1년간 전도나 포교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 역시 2017년 36%에서 2024년 22%로 급감했다. 이 수치들은 오늘날 한국교회 전도의 현실을 보여준다. “전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식은 높지만, 실제 전도의 현장은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선다. “전도지는 과연 아직 의미가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건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받거나, 받아도 잠깐 보고 버린다. 물티슈 같은 생필품이나 간식이 없으면 받아주지도 않는다. 교회 소개나 예배 시간표가 적힌 전단지는 쉽게 흩어지고, 이에 대한 즉각적인 효과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인간의 계산을 넘어선다는 사실이다. 1866년, 조선에 복음을 품고 왔던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를 떠올려본다. 이미 한 차례 조선에 왔던 토마스는 통역관으로 무역 상선이던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평양에 오게 된다. 그러나 셔먼호 선원들의 폭동으로 조선군이 진압을 하게 됐고, 배는 불에 타고 선원 모두가 조선군에게 처형당한다. 안타깝게도 이때 토마스 선교사도 순교를 당하는데, 그는 죽기 전, 홀로 뱃머리에 올라 “야소(예수) 믿으세요‘를 외치며 한문 성경을 조선군과 군중에게 던졌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토마스가 차분하게 관계 전도를 맺은 것도 아니었지만, 성경을 주워 읽은 조선인들 가운데 복음을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토마스를 참수한 박춘권도 토마스가 죽기 전 전해준 성경 1권을 주워 집으로 가져갔다. 성경을 정독한 그는 후일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주교회 영수(장로)가 됐다.


또한 당시 군중 속에서 12세 소년 최치량이 있었는데, 토마스 선교사가 뿌린 성경 중 3권을 집에 가져왔다. 그 중 1권을 영문주사(위병소장) 박영식에게 줬는데, 박영식은 성경을 너무나 좋아했다. 왜냐하면 당시 책이나 종이가 매우 귀한 시절이었고, 더구나 종이의 질이 국산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문 성경을 찢어서, 방을 도배했다. 국내 최초로 성경으로 도배한 집인 것이다. 성경으로 도배하니, 사방이 성경이었다. 앉아도 성경, 일어나도 성경, 누워도 성경, 옆을 봐도 성경만 눈에 들어왔다. 그는 도배한 성경을 심심풀이로 읽었는데,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있고, 죽음 후에 영생이 있고 심판이 있다는 말씀에 붙잡히게 됐다.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의 집이 나중에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교회가 된다. 이후 명칭이 장대현교회로 바뀌며, 훗날 1907년 이곳에서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토마스 선교사를 처형한 박춘권의 조카 이영태가 박영식의 집을 방문했다가 벽에 도배 된 성경을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결국 그는 말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씀의 조각이 사람들의 심령 속에서 살아 역사한 것이다. 토마스 선교사는 죽었지만, 그가 던진 성경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씨앗이 됐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는 비효율적이고 버려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손에 들린 한 장의 말씀은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전도지 한 장, 그 안에 담긴 복음의 한 구절이라도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방전도의 전도지는 쓸데없는 낭비가 아니라 거룩한 낭비다.


다른 의미에서 전도지도 변화는 필요하다. 전도지가 단순한 ‘교회 소개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배 시간이나 교역자의 경력, 주소만 나열한 전단지는 정보일 뿐 복음이 아니다. 전도지는 말씀을 담는 그릇이 돼야 한다. 짧은 문장이라도 복음의 핵심이 담겨야 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져야 한다.


또한 이제는 전도지가 숏폼으로 제작될 필요가 있다. 짧은 영상 콘텐츠를 뜻하는 '숏폼(short-form)'의 인기가 급부상하면서 교회 사역에도 다양한 변화와 고민을 가져와야 한다. 요즘 현대사회에서 짧고 간결한 형태의 숏폼 콘텐츠가 새로운 영상 소비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 만 15~6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미디어 및 쇼핑 플랫폼 이용 행태, 광고 선호도, 주요 마케팅 트랜드 관련 이용자 인식 및 경험’을 조사한 ‘2024 아이엠 리포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90%가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인 ‘숏폼’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최근 ‘시성비(시간+가성비)’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짧은 시간을 활용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숏폼 콘텐츠의 이용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노방전도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듯 숏폼 영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새롭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새들백교회나 엘리베이션교회와 같은 여러 교회들이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강력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하는데, 이러한 전략은 특히 젊은 세대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시간을 고려할 때 매우 효과적이다. 따라서 교회는 숏폼 콘텐츠를 전도의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고민해봐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혁신에도 우려는 있다. 숏폼 콘텐츠의 얕은 메시지 전달과 성경적 균형의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숏폼 콘텐츠의 구조상 심오한 신앙적 메시지나 교리적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앙의 깊이와 성숙도를 저해할 수 있고, 오히려 감정적 호소나 단순화된 메시지에 치중하는 경향으로, 성경의 균형 잡힌 진리를 전달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는 우려가 있으니, 기획과 제작시 분명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말씀 한 줄은 159년 전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씨앗이 되었듯이 오늘도 그렇게 사용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한 장의 전도지가 누군가의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통로가 될 것이다. 오늘도 믿음으로 한 장의 전도지를 건넬 때, 작아 보이는 순종이 하나님의 역사로 자라날 것이다. 전도는 인간의 열심으로 시작하지만, 그 완성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단지 씨를 뿌리는 사람일 뿐이다. 그 씨앗이 자라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효율보다 순종을 붙잡고, 결과보다 믿음을 붙잡아야 한다.

(다음에 계속)

백정수 목사
더가까운교회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