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외모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외적 모습과 겉으로 보이는 성격 자체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내면의 아픔을 숨긴 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기도 한다. 인간의 자아는 태아 때부터 시작해 주로 유년기 때 형성된다. 태아 때부터 보호자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였고 유년기 때 보호자와 어떤 유대감을 형성했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정체성은 달라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밝혀주며 한 인간의 인생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주체적이지 못한 나머지 타인의 삶을 의식하여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생의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자아로 인해 삶의 방향을 어느 곳으로 향하여야 할지를 찾지 못한 채 절망의 세계로 빠져든다. 정체성 왜 중요한가?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엄마가 없는 아이는 구멍이 뚫린 독처럼 아무리 큰 사랑을 받고
기독교의 역사를 한 마디로 말하면 박해와 박해로 이어진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곳마다 박해를 받았고, 잘못된 교회를 바로 잡을 때마다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받았던 것이 바로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지금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하고 수많은 교회가 불에 타고 무너졌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왕성하게 살아나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전히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케 했을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이기게 한 것입니다. 믿음은 연약함을 강하게 한다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 11:34)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만 받으셨고 이에 분노한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리오 왕이 다른 신에게 절하는 자는 사자굴에 넣는다고 공포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믿음대로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단 6:10). 그는 사자
사무엘하 1장 26절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매우 춥고 비가 내리는 날 피카소는 이발소에 갔다. 추위에 떨며 이발소에 들어서는데, 아리아스라는 젊은 이발사가 유명한 화가를 알아보고 다가와 간곡하게 말했다. “선생님, 이렇게 옷을 얇게 입으시면 안 돼요. 괜찮으시다면 제 옷을 걸치세요.” 피카소는 이발사의 배려에 감동했다. 이후 피카소는 매번 이곳에서 이발했고 아리아스와 친구가 됐다. 피카소는 자주 아리아스를 집으로 초대했다. 때로는 아리아스에게 자신의 작업실에서 머리를 깎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28살이나 나이 차이가 났지만 우정은 나날이 두터워졌다. 아리아스는 피카소를 ‘제2의 아버지’로 생각할 정도로 피카소를 존경했다. 누구도 그를 모욕하거나 공격하지 못하게 했다. 피카소는 죽으면서 50점의 그림을 아리아스에게 남겼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모두 박물관에 기증했다. 아리아스의 진정 어린 배려는 당대 유명한 화가와 친구가 될 수 있게 했다. 만약 아리아스가 유명한 화가인 피카소에게 부담을 느껴 다가가지 못했다면 소중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고 알고 있는 만큼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합니까? 성도는 믿음으로 바랄 수 있어야 하고, 믿음으로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으로 구하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만 받으셨고 이에 분노한 가인이 동생을 돌로 쳐 죽이게 됩니다. 창세기에서는 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는지 이유가 나오지 않지만,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아벨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가인의 믿음의 대상은 그가 드리는 제물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가 지금 드리는 것을 왜 안 받으십니까’ 원한으로 동생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만큼 바란다는 것은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인생을 결산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정말 믿으십니까? 이를 종말론적 신앙이라 합니다. 급진적 종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내 모든 인생을 결산할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믿고, 늘 의식하며 사는 신앙을 말합니다(전11:9, 계20:12).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기록된 이 말씀처럼 죽음 이후,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결산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종말론적 신앙의 핵심으로, 모든 성도가 반드시 마주할 현실입니다. 그래서 늘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 생활하며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것이 신자 된 도리입니다. 물론 신자는 마지막 날에 징벌적 심판을 받는다든지, 정죄, 저주를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롬 8:1). 또 형벌과 책망, 부끄러움이나 수치, 버림당함을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벧전 2:6). 천국은 고통과 슬픔과 저주나 형벌(정죄), 두려움이 없는 곳이며 오직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한 곳이며, 그곳에서
세상은 우리들을 신앙인, 믿는 사람들(believer)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이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믿음에 강력한 능력이 있음에도 이 믿음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믿음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복음의 능력이 믿음에 이르게 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로마서 1:16)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에 대해 증거하면서 무엇이 우리의 믿음이 된다고 말씀합니까?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로마서 1:12) 복음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복음을 근거로 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고 그 믿음으로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성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전 세계에 AI 열풍이 불고 있다. AI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로서, 한국어로는 인공지능(人工知能)이라고 한다. AI 시대에 가장 떠오르는 기업은 AI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엔비디아이다.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설계 기업으로 2026년 1월 기준, 시가총액이 4.5조 달러(한국 돈 현재 환율로 6,508조 6,200억 원)를 돌파하며 세계 1위 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엔비디아의 창업자 젠슨 황(Jensen Huang)은 현재 엔비디아의 CEO로 전 세계 AI 산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1963년 대만 타이난에서 출생하여 9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오리건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전기공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미국의 데니스(Denny’s) 식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회사를 창업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는 1990년대 한국의 용산 전자상가 그 먼지 날리는 조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다 보면 내면의 자아와 외면의 자아 사이의 불일치가 일으키는 심리적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혼란이 대표적 증상이다. 너무 오랜 시간 가면을 쓰면서 진정한 자신과 만들어 낸 자신 중 무엇이 정말 자신인지를 구분 해 내지 못한다.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생각하는지 혹은 느끼는지 알 수가 없다. 늘 내뱉는 말은 “난 원래 그래, 그래서 뭘 어쩌라고!”라는 항변이다. 그리고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을 늘 매섭게 비판하고 몰아세운다. 다른 사람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으면서 막상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다. 머릿속엔 늘 “반드시 ~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 기준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수많은 행동 기준을 제시한다.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사람과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 통제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짜증이 나고 그 짜증은 곧 분노로 이어진다.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어떻게 감히 나에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 공격은 심한 말과 함께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삐지는 것과 같이 수동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 자신이
시편 37편 8절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작가 오 헨리는 친구와 함께 슈퍼마켓에 과자를 사러 갔다. 계산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점원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 점원은 듣는 둥 마는 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쩜 저렇게 예의가 없을까? 서비스도 정말 형편없군!”이라고 친구는 끊임없이 불평했다. “저 사람은 오후마다 저랬네.” 오 헨리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친구는 계속 그랬는데도 왜 정중하게 인사한 거냐며 따졌다. 이에 오 헨리의 답은 명쾌했다. “그 사람이 내 감정을 다스리게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는 자는 총명한 자다. 화내는 것도 습관이다. 화는 선택이고, 화를 내는 것은 아무 생각을 거치지 않은 충동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분노를 유발했는지 물어보면 그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횡설수설한다. 분노는 현상과 상황에 대한 개인의 인식과 해석, 평가에서 비롯된다. 물론 사람의 성격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자신의 감정 조절 능력에 달려 있
1.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곳곳에서 캐롤이 울려 퍼지고, 트리의 불빛이 반짝이는 이 성탄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우리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서막, 즉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다시 마주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무대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은 연극과 같습니다. 무대는 이미 준비되었고, 대본은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위대한 드라마 속에서 어떤 배역을 선택하고, 어떤 연기를 펼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는 은혜의 소식 앞에서 세 가지 다른 배역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을 통해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기를 원합니다. 2. 하나님은 은혜의 이야기를 쓰신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우연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 은혜의 이야기를 쓰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장은 이 은혜의 이야기가 얼마나 섬세하고 계획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감동적으로 펼쳐집니다. 무대는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동네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매일 수많은 병원균에 노출되지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면역력 덕분이다. 병에서 빨리 회복하는 사람에게는 웃음과 대화가 많다. 몸의 건강은 마음의 면역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면역력을 높일 때 몸의 면역력도 높아져서 건강해질 수 있다.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는 1912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뒤 뉴욕이브닝 포스트지 기자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1940년 새터데이리뷰로 자리를 옮겨 1972년까지 30년 이상 편집장 및 발행인을 역임했다. 또한 캘리포니아 대학교 의학부 대뇌연구소 교수로서 의료 저널리즘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1964년 8월 53세 되던 해 러시아를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미열이 나고 몸살기가 돌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목, 팔, 손, 손가락, 다리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적혈구 침강 속도가 80을 넘었다(감기와 같은 질병은 30~40정도).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적혈구 침강 속도가 150을 넘기자 중병에 든 것을 알게 됐다. 그가 받아든 병명은 콜라젠 질환과 강직성 척수염이라는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5~10월은 건기에 해당되지만 11월부터 그 다음해 4월까지는 비가 내리는 우기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기후와 자연환경은 이 두 시기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건기는 뜨거운 날씨에 비가 전혀 내리지 않으며 풀들은 모두 말라버려 거칠고 황량할 뿐이다. 하지만 우기에는 산과 들 그리고 계곡과 평야는 물론 심지어 광야마저도 풀들이 자라고 꽃들이 가득 피어난다. 우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12월쯤, 그래서 봄이 더욱더 간절히 기다려질 때, 이스라엘 땅에는 그 누구보다 서둘러 봄을 예고하는 전령사가 나타난다. 바로 아몬드 꽃이다. 예루살렘에서 국도 1번을 따라 텔아비브로 가려면 소렉골짜기와 아브고쉬를 지나야 한다. 시가지를 지나자마자 소렉골짜기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난다. 도로 옆 비탈과 골짜기 반대편 산기슭에 뭉개 뭉개 피어난 아몬드 꽃이 보인다. 햇살을 맞으며 피어오른 엿은 분홍빛 아몬드 꽃을 볼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복사꽃 피어나는 고향 마을을 떠올리곤 했다. 우리말 성경에서 아몬드 나무나 꽃을 찾을 수 없다.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 번역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히브리어 성경의 아몬드
우리는 언제나 밖을 본다. 그리고 멀리 있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갈망한다. 타인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외부의 기준을 살피느라 늘 분주하다. 그렇게 우리의 시선이 밖을 향해 있는 동안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자기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를 알아가려 하는 모습은 그래서 애처롭고 불안하다. 스스로를 모르는데 타인에게 나에 대한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뿌리와 토대를 모르는데 무엇을 쌓을 수 있단 말인가. 알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 혼자 상대방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대의 입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해 듣는 것, 이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하다.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은 귀하다. 수가 적어서 귀하고 가치가 있기에 귀하다. 그런 귀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은 더욱 귀하다. 당신의 가면은 무엇인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겹 혹은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복장이나 화장처럼, 우리는 가면을 그렇게
성경을 이해(understand)하고 해석(interpretation)하기 위해서는 그 성경이 쓰여진 땅, 역사,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지 답사를 하다 보면 그 중요성에 비하여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것에 무관심하다는 현실에 놀라곤 한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시는 과정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담고 전개된다. 우리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과정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문맥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을 간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다나엘이 왜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에 발끈하고 그를 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는지,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말씀에 나다나엘의 태도가 급변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이스라엘 땅에서 그 문화적 배경 안에서 쓰인 것이니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래서 성경의 지리, 역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절실해지는 까닭이다. 먼저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사렛에 대한
요한복음 13장 2절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생애를 좌우한다. 생각의 여하, 마음먹기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수십 년 전 미국 뉴저지주 역에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이 내렸다. 그의 이름은 에드윈 바네스였다. 그는 대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의 파트너가 되길 원했다. 에디슨의 회사를 찾아간 그는 직원에게 자신이 에디슨의 파트너가 되겠다고 했지만 야유를 받았다. 하지만 바니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에디슨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갔다. 에디슨은 그가 회사의 청소부와 설비 수리공을 맡도록 허락했다. 바니스는 이 자리에서 몇 년 동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디슨의 제품판매원들이 새로운 발명품을 비웃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바로 구술기록기였다. 사람들은 비서가 기계보다 유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자 바니스는 일어서서 “제가 해보겠습니다. 저는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소부에서 판매원으로 변신했다. 한 달 동안 바니스는 뉴욕 전역을 돌아다녔다. 오랜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했고 그는 7대의 구술기록기를 팔았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