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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묵상 48 - 야고보서 3장 2절

최천식 목사
약속의학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어느 날 나무꾼이 산에 올랐다. 나무를 하다가 산 깊은 곳에서 길을 잃었다. 그는 차가운 가을바람에 후들후들 떨었지만, 다행히 사냥꾼에게 발견되어 초가집에서 하룻밤 묵게 됐다. 사냥꾼은 팔에 상처가 있었지만 풍성한 저녁 식사를 차려 그를 대접했다. 다음 날 사냥꾼은 나무꾼에게 잠을 잘 잤느냐고 물었다. “너무 잘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건 당신 몸에서 나는 심한 악취입니다.” 그 말을 듣고 사냥꾼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무꾼은 다시 사냥꾼을 만났다. 나무꾼이 팔에 난 상처는 다 나았느냐고 묻자 사냥꾼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 상처는 잠깐 아프다가 곧 나았습니다. 그때의 통증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신이 제게 한 말은 평생 잊히지 않는군요.” 진정한 아픔을 주는 것은 칼이 아니라 악담이다. “좋은 말 한마디는 엄동설한의 추위도 따뜻하게 느끼게 해주지만 악담은 유월의 더위도 춥게 느끼게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종종 타인과 대화할 때 말로 해를 끼친다. 고의성이 없더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3장에서 교회의 지도자 또는 선생이 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꼬집어 준다. 그것은 “말”이다. 선생은 현대에는 주로 목사가 해당되고, 간접적으로는 장로들과 주일학교 교사 및 구역장들 같은 교회 지도자들이 해당된다. 그런데 “말에”(엔 로고)라는 헬라어는 헬라 숙어로서 공적인 말에 실수가 없는 자란 뜻이다. 같은 표현으로는 디모데전서 5장 17절이 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여기서 “말씀과 가르침”이란 설교와 교육을 말한다. 즉, 'Preaching and Teaching'에 수고하는 이들로서 지금 시대로 보면 목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야고보서 3장 2절을 1절과 연결하면 공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에 실수가 없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면서 2절이 3절로 이어지면서 모든 성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 된다. 즉,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되는 것이 성숙한 신자가 되는 것이며 그러한 성도는 삶을 다스린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1절에서 3절까지의 의미는 목사나 교사나 성도들은 온전한 교훈에 서서 바른 진리를 전하며 말에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바른 진리로 온전하게 말하며 살 때 그의 삶에는 절제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곧 온전한 사람이 되어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기 312년경에 교회는 엄청난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그것은 진리에 관한 싸움이었다. 그 당시 이 세상의 교회는 아리우스(Arius)라는 사람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라는 사람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아리우스는 “성자는 성부보다 하등하다”고 주장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성자와 성부는 본질이 같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진리 싸움의 결과로서 우리가 잘 아는 ‘니케아 신경’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리우스가 천사와 같았다는 것이다. 그 누가 보아도 검소하고 온유하고 정직하고 거룩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의 가르침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지금 여호와의 증인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하고 있다. 아무튼 아리우스의 인품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의 주장을 믿고 속아 넘어갔다.


반면 아타나시우스는 성격이 아주 강하고 투철하며, 진리에 관한 한 조금의 양보도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과 변론하는 관계로 인간적으로는 완강하게 보였다. 그러나 누가 바른 선생인가? 누가 온전한 사람인가?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아타나시우스의 손을 들어 주셨다. 아타나시우스는 박해와 유배를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진리를 지켰으며, 훗날 ‘정통 신학의 수호자’로 불리게 됐다. 즉, 교사의 자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속일 때 무엇으로 속이는지 아는가? 바로 ‘착한 행동’으로 속인다. 사람들에게 아주 잘해주면서 속인다. 그러면서 ‘비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가 이단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문선명 집단, 여호와의 증인 등, 이들이 얼마나 친절하며 온유하며 좋은 일을 많이 하는가? 직장이 없는 자들에게 직업을 알선해 주고, 결혼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결혼을 알선해 준다. 무료로 영어도 가르쳐 주고 밥도 사주면서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먹을 것도 주고 옷도 준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은 이단이며 그들의 영적 교만은 하늘을 찌른다. 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간절하게 권면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온전한 자라고 했다. 목회자로서 그 가르치는 내용이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한 진리를 전달할 때도 온유한 마음으로 공손하게 전달해야 한다. 한 번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다. 안 들은 것으로 하라는 말도 억지다. 그러므로 스스로 다스려서 진리에 입각한 선의를 담은 말을 전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 또한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는다. 더불어 유익이 되고 유대감은 높아지며 상대방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열리게 된다. 오늘 하루의 삶이 입술을 잘 다스리고 지혜롭게 사용함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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