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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이긴다

말씀동행-3
고요셉 목사
영통영락교회

기독교의 역사를 한 마디로 말하면 박해와 박해로 이어진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곳마다 박해를 받았고, 잘못된 교회를 바로 잡을 때마다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받았던 것이 바로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지금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하고 수많은 교회가 불에 타고 무너졌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왕성하게 살아나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전히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케 했을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이기게 한 것입니다.

 

믿음은 연약함을 강하게 한다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 11:34)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만 받으셨고 이에 분노한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리오 왕이 다른 신에게 절하는 자는 사자굴에 넣는다고 공포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믿음대로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단 6:10).

 

그는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결국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믿음은 연약함을 강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윗은 어린 소년이었으며 여호수아와 갈렙은 경험없는 청년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서른 살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세상의 강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 육신의 연약함, 환경의 연약함, 상황의 연약함이 있습니까?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아니라 나에게 믿음만 있다면 그 믿음이 나를 강하게 하고 용기를 내게 합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물리친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35)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시련과 실패가 있다 해도 그 상황에 내 감정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과정의 기쁨을 즐기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 더 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키며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련과 연단을 경험하게 될 때가 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반드시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자에게는 반드시 더 좋은 부활, 더 좋은 은혜가 있음을 믿기를 바랍니다.

 

묵상하기
◇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냈던 경험에 대해 함께 나눠 봅시다.

 

◇ 연약함 속에서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함께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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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