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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자아

상처받는 영혼을 향해-4

인간은 외모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외적 모습과 겉으로 보이는 성격 자체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내면의 아픔을 숨긴 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기도 한다. 인간의 자아는 태아 때부터 시작해 주로 유년기 때 형성된다. 태아 때부터 보호자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였고 유년기 때 보호자와 어떤 유대감을 형성했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정체성은 달라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밝혀주며 한 인간의 인생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주체적이지 못한 나머지 타인의 삶을 의식하여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생의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자아로 인해 삶의 방향을 어느 곳으로 향하여야 할지를 찾지 못한 채 절망의 세계로 빠져든다.

 


정체성 왜 중요한가?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엄마가 없는 아이는 구멍이 뚫린 독처럼 아무리 큰 사랑을 받고 맛난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더라도 채워질 수 없다. 애착의 부재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으며 안정감을 준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세워주는 것이다. 부모와의 애착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않는 것은 정서적 의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한마디로 일종의 사망선고라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정서적 의존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적절치 못한 정서적 의존은 기본적인 불신을 비롯한 우울감, 상실감을 유발하며 그 내면의 상처는 자기애를 말살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생모와의 이별은 아이의 자아존중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모와 헤어지게 되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어떻게 지닐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인정은 삶에 필요한 힘을 얻게 해 준다. 최초의 이별을 경험한 아이는 유기됐다는 것을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단지 누군가로부터 거부당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유기로 인해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해 거짓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아기가 부모에게서 거부당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되며 자신의 일부가 사라졌다고 느낄 것이다. 깊은 상실감에서 기인한 거짓 자아로 인해 타인과의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결별로 인한 트라우마로 심각한 불안장애를 느끼게 된다. 잃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갈망은 체념과 상실감으로 이어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자신만의 유일한 방어기제를 갖게 된다. 이처럼 부모로부터의 분리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주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친부모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큰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낳은 부모와 기르는 부모는 엄연히 다르다.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더라도 아이에게 친부모처럼 느껴질 수는 없다. 친부모와의 관계는 하늘이 맺어 준 것이며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귀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포장을 벗겨내는 용기

 

거부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자신이 거부당하지 않도록 상대방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거짓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거짓 자아의 초점은 자신이 원하고 느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용납받기 위한 원함과 느낌 그리고 요구이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는 상대방에게 이해될 수 없고 거부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상대방에게 용납받을 수 있는 허상을 만든다. 자연히 자신의 모든 에너지는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에 집중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원함을 억누르고 부인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점차 거짓 자아가 중심이 되는 삶의 양식을 형성하게 된다. 거짓 자아의 특징은 자신의 실체가 누구인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자신이 남의 눈에 어떻게 드러나고 평가되느냐에 있다. 마치 연극을 하듯이 자신의 실체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위선으로 가면을 쓰고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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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