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장 26절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매우 춥고 비가 내리는 날 피카소는 이발소에 갔다. 추위에 떨며 이발소에 들어서는데, 아리아스라는 젊은 이발사가 유명한 화가를 알아보고 다가와 간곡하게 말했다. “선생님, 이렇게 옷을 얇게 입으시면 안 돼요. 괜찮으시다면 제 옷을 걸치세요.” 피카소는 이발사의 배려에 감동했다. 이후 피카소는 매번 이곳에서 이발했고 아리아스와 친구가 됐다. 피카소는 자주 아리아스를 집으로 초대했다. 때로는 아리아스에게 자신의 작업실에서 머리를 깎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28살이나 나이 차이가 났지만 우정은 나날이 두터워졌다. 아리아스는 피카소를 ‘제2의 아버지’로 생각할 정도로 피카소를 존경했다. 누구도 그를 모욕하거나 공격하지 못하게 했다. 피카소는 죽으면서 50점의 그림을 아리아스에게 남겼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모두 박물관에 기증했다. 아리아스의 진정 어린 배려는 당대 유명한 화가와 친구가 될 수 있게 했다. 만약 아리아스가 유명한 화가인 피카소에게 부담을 느껴 다가가지 못했다면 소중한 우정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28년 동안 소중한 우정을 나누는 권사님이 계시다. 이분은 울산에 위치한 100년의 역사를 가진 ‘방어진제일교회’ 제1호 권사님이시다. 필자가 미국 웨이코에서 목회를 할 때, 30분 정도 떨어진 템플지역에서 한인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다. 그 집회에 필자가 참석해 은혜를 받고 알게 되신 분이시다. 그 권사님은 템플교회의 부흥 강사님으로 오셨다. 여자분이 강사로 오셔서 매우 생소한 마음이었지만, 그분의 간증과 말씀을 듣고 깊이 은혜를 받고 바울이 로마서 16장 13절에서 “루퍼의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필자가 ‘어머니’로서 존경하는 분이시다. 그 권사님은 28년 동안 필자와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셨고 사랑을 아끼지 않고 베풀어 주신 귀한 분이시다.
어떤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많은 사람과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고 있다. 인맥이 넓을수록 걸어갈 길은 든든해진다. 사람들은 인맥을 넓게 많이 사귈 것인지, 아니면 깊게 몇 사람만 만날 것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문제는 ‘신뢰’와 ‘유대감’이다. 몇 명의 인맥을 만나든 진중하고 진실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도 든든한 지지자를 얻지 못하면 한 사람의 인간관계보다 못하다. 반면, 대인관계가 좋지 않으면 성공으로 가는 길의 굴곡은 심해진다. 자신에게 진심을 보이는 사람도 없고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없다면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진다. 실의와 좌절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실패하고 넘어져 있을 때 등을 다독여 주는 사람이 없다면 다시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에서 형성된 유대는 보이지 않는 든든한 밧줄이 된다. 그만큼 성공으로 가는 길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지원과 도움도 만들어진다. 매우 뛰어나고 특출난 재능을 가졌더라도 인간관계에서 실패하면 성공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과 사귀는 법을 배우면서 인맥을 넓힐 때 성공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를 이룬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인간관계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사울왕을 피해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여 광야에서 10년을 유랑할 때도 그의 주변에는 그를 따르는 수백 명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후에 다윗을 왕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였을 때(삼하 23:15),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왔다. 다윗에게는 다윗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다윗 왕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다윗의 인생 속에 많은 인연들이 있었지만,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에 다윗이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바로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버지와는 다르게 권력에 함몰되지 아니하고 다윗을 사랑하고 다윗과의 우정을 귀하게 여겼다. 그는 결국, 사울왕과 함께 길보아 산의 전투에 참여했다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무엘하 1장 26절은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며 요나단과의 깊은 우정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다윗은 여인의 사랑보다 진한 요나단의 사랑을 ‘심히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 목숨을 건 우정과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 됨을 보여준다.
다윗은 요나단의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베푸시는 신실한 사랑(헤세드)을 경험했다. 다윗은 요나단을 ‘형’이라고 부르며, 육신의 혈연보다 더 깊은 영적인 형제 관계를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은 질투나 욕심이 아닌, 서로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성숙한 사랑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이 바로 요나단이 보여준 사랑의 원형이다. 다윗이 요나단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며 애통해했듯, 우리도 성도 간에 신실한 사랑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 사무엘하 1장 26절은 다윗이 요나단의 죽음 앞에서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조가(弔歌)이다. 요나단이 보여준 신실한 사랑처럼, 이기심을 떠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그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을 남기는 삶이 되기를 소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