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장애인복지법 제2조가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의 법적 정의이기도 하다. 우리 교단은 이러한 장애인들을 기억하고 함께하기 위한 주일로 작년에 처음 ‘침례교 장애인 주일’을 지켰다. 이는 장애인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더 분명히 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편리와 효율 중심으로 목회 사역을 이어가기 쉬운 평범한 일선 목회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었지만 동시에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지난 2025년 우리 교회의 첫 번째 장애인 주일은 매우 단순한 형태로 진행됐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장애인 주일을 알리는 피켓을 준비했고, 예배당에 들어오는 성도들의 손등에 하트 스티커를 붙여 드리며 이날의 의미를 함께 나눴다.
주일 설교는 아가서 1장 1~17절을 본문으로 “그 아픔까지 사랑하시다”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우리의 사랑이 제한된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를 닮아가야 함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설교의 마무리에는 유튜브에서 찾은 수어 찬양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를 전 성도들이 함께 따라 해 보기도 했다. 서툰 손짓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귀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처음 시도했다는 작은 성취감도 있었지만, 준비가 충분하지 못해 다소 급하게 진행된 듯한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조금 더 미리 준비하여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제 두 번째 ‘침례교 장애인 주일’을 맞게 됐다. 그러나 어느덧 날짜가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보니, 마음속으로만 기도해 왔을 뿐 구체적인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작년에 장애인 주일 준비를 위해 많은 역할을 해 주셨던 집사님께 연락을 드려 이번에는 조금 더 발전된 준비를 해 보자고 도움을 청했다. 또한 교회 부교역자에게 교사들과 중·고등부, 청년부 임원들이 함께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고 장애인 주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렇게 하여 다음과 같은 준비 계획을 세우게 됐다.
◇ 장애인 주일 피켓 준비해 사용하기
◇ 장애인 비하 단어에 대한 올바른 표기법 인식 개선(스티커 퀴즈)
◇ 중·고등부에서 수어 찬양을 영상으로 직접 제작하여 주일예배 영상으로 사용하기
◇ 장애인 주일 예배 시간에 전 성도들과 수어 찬양하기
◇ 청년부 바자회 준비해 진행(커피, 버터떡, 가래떡) 수익금으로 장애인 기관 돕기
사실 교회가 장애인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음을 선언한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가치는 능력이나 건강, 사회적 기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아도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누가복음 14장 13~14절에서 예수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 가난한 자와 몸이 불편한 자와 저는 자와 맹인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신다. 당시 사회에서 장애인은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손님으로 초대하셨다. 이 말씀은 교회가 장애인을 단지 돌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중심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보여 준다.
또한 성경은 교회를 하나의 몸으로 설명한다. 고린도전서 12장 22절은 “몸의 지체 가운데서 더 약하게 보이는 그것들이 도리어 요긴하다”고 말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공동체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장애인을 향한 교회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장애인은 교회의 사역 대상이 아니라 교회를 완성시키는 소중한 지체이다.
14년 전 내가 우리 교회에 부임해 목회를 시작하던 즈음, 한 권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목사님, 교회 구석구석에 싹을 틔우고 자라난 이름 모를 풀들도 너무 예뻐서 뽑아내기가 어려워유.”
누군가에게는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교회를 향한 권사님의 사랑을 알기에 그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떠올렸다. 이 세상에는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했어도 존재 그 자체로 귀한 풀과 꽃, 나무와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우리의 사랑이 너무도 이기적인 기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다른 사람, 나의 편의와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일지라도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며 사랑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살아 있어야 하리라.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서로의 존재 그대로 인정하며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는 공동체. 그러한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교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장애인 주일은 단지 한 번의 행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가 누구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이 오늘 우리의 교회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묻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애인을 기억하고 함께하는 일은 특별한 사역을 하는 몇몇 교회의 몫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면 마땅히 함께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이다. 작은 실천이 큰 의미를 되살린다. 장애인을 위해 기도하는 일, 예배 가운데 그들을 기억하며 이해하는 일, 다음 세대에게 장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지역사회 속에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사역을 시작하는 일, 이러한 작은 걸음마는 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세워 갈 것이다.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이 땅에서 조금 더 선명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