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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5절

약속의 묵상-46
최천식 목사
약속의학교

빌립보서 4장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열차에 한 여성이 올라탔다.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때 그녀 앞에 앉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이 몇 모금 들이마셨다. 그녀는 담배 냄새를 맡자마자 숨이 막혀서 일부러 창밖으로 머리를 돌리고 기침을 몇 번 하며 남자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눈치를 줬다. 그러나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담배를 피웠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이 열차를 처음 타시는 건가요?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이 객차에는 흡연실이 따로 있습니다. 일반 객차 내에서는 흡연하면 안 됩니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담배를 꺾어서 버렸다. 잠시 후, 제복을 입은 몇 명의 남자가 객차에 들어왔다. 그들은 곧장 그녀 앞에 와서 “숙녀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객차를 잘못 타신 것 같습니다. 이 칸은 그랜트 장군의 개인 객차입니다. 다른 칸으로 옮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담배를 피운 남자가 그 유명한 그랜트 장군이었다. 그러나 장군은 조금도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하들에게 함께 타고 가는 것도 괜찮다고 점잖게 말했다.


이처럼 장군의 너그러움은 존경심을 일으켰다. 그의 인덕은 널리 칭송을 받았으며 넓은 마음으로 부하들을 통솔해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까지 됐다.


그랜트 장군 이야기는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면 동시에 존경을 받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관대한 마음을 품으면 더 이해할 수 있고, 조금 더 관대하면 감동을 부른다. 그러므로 아낌없이 관대함을 베풀고, 남의 잘못을 지나치게 들먹거리지 말아야 한다. 너그러운 사람이 되면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도 덕이 된다.


관용은 ‘에피에이케스’로 성경의 맥락에서 매우 깊고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단순히 “참는다”는 수준을 넘어, 인간관계와 영적 성숙의 핵심을 꿰뚫는 개념이다. 관용으로 사용된 '에피에이케스'는 ‘적절하다’, ‘합당하다’라는 뜻의 ‘에이코’에서 유래했다.


사전적 정의로는 ‘너그러움’, ‘친절함’, ‘온유함’을 뜻하며, 법의 문구보다는 법의 정신을 따르는 태도를 의미한다.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용을 “법적 정의보다 더 나은 정의”라고 표현했다. 즉, 엄격한 잣대로 남을 심판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그 권리를 스스로 제한하는 고결한 태도를 뜻한다.


영적으로 관용은 단순히 성격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적 영성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관용은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이다. 우리가 율법대로 심판받지 않고 은혜를 입었듯이, 타인에게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이 관용의 영적 본질이다.


빌립보서 4장 5절에서 “너희 관용을 알게 하라” 바로 뒤에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내가 억울함을 직접 풀거나 심판자가 되려 하지 않아도, 주님이 곧 오셔서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을 믿기에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영적 확신을 의미한다.


관용은 무질서를 용인하는 방종이 아니다. 오히려 진리 안에서 사람을 품어내는 힘이다. 비본질적인 문제에서는 양보하고, 본질적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는 성령의 열매인 온유와 오래 참음과 맞닿아 있다. 관용은 내가 마땅히 행사할 수 있는 ‘심판의 칼’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채우는 능동적인 절제이다. 관용은 나의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인내하며 배려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주께서 말씀하신 관용은 특정인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야 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기에, 우리는 심판주와 구원주를 기다리는 자답게 더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하는 시간의 길이를 줄이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염려 대신 기도와 감사로 나아가야 한다.


관용은 주고받는 모두에게 유익이 된다. 경제학적 개념으로 말하면 서로 윈윈하는 비결이다. 레바논 출신 시인 칼릴 지브란은 “위대한 사람은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 한 곳에서는 피가 흐르고 다른 한 곳에서는 관용이 흐른다”라고 썼다. 피가 우리의 육체를 살리듯이 관용은 우리의 영혼을 살린다. 그러므로 관용을 잃은 마음은 영혼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타인에게 관용을 베푼다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비록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해도, 과거에 받은 상처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보며 아픔을 되새길 필요가 없다. 이미 지난 일이며 당신이 먼저 마음에서 잊고 치유해야 비로소 그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먼저 관용을 베풀면 상대방은 당신의 영혼이 얼마나 빛나는지 보게 된다. 관용을 베풀면 상대방은 당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당신에 대한 존경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되받아치고, 때리고, 보복하고, 이에는 이로 갚기보다 차라리 웃으면서 용서하는 것이 인생을 더 기쁘게 사는 방법이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극단적으로 가는 것을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마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면 삶에는 따뜻함이 스며든다. 오늘 하루의 삶이 먼저 마음을 잘 가다듬고 상대방에 대하여 관대하게 행하며, 더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항해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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