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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크리스텐덤으로 바라본 한국교회 현주소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장동민 지음┃654쪽┃28000원┃새물결플러스


‘포스트 크리스텐덤’이란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생소한 단어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동안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단어는 많이 봐 왔지만, 크리스텐덤이란 단어는 흔히 쓰이지 않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여기서 ‘크리스텐덤’이란 기독교가 지배하는 국가나 사회를 뜻한다. 역사적으로는 기원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서 시작돼 계몽사상과 시민 혁명으로 서서히 사라지다가 20세기 말에 와서야 포스트 크리스텐덤을 맞이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신교로만 따졌을 때 개화기 시대 때부터 계몽운동이나 의료선교 등 서서히 영향력을 미쳤고 해방 후 폭발적인 부흥으로 사회를 향한 교회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편이지만 기독교가 우리 사회나 국가를 지배한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사 크리스텐덤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서구 크리스텐덤의 역사를 다룬다.
앞서 언급했던 크리스텐덤 시대의 출발이라 할 기원후 313년의 밀라노 칙령에서 시작한 크리스텐덤 사회와 교회의 특징을 간단히 살피고, 이어 크리스텐덤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크리스텐덤은 하루아침에 붕괴된 것은 아니고 수백 년에 걸쳐 아주 천천히 무너졌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민 혁명과 과학 혁명, 기독교 신학의 변화 등이 크리스텐덤 체제 붕괴의 요인들이다. 제2장은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이야기다. 조선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세계 최초의 세속 국가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였다. 그런데 기독교가 전래된 지 채 한 세기가 되지 않는 한국 사회가 상당 부분 서구 크리스텐덤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한국 사회에 이식된 미국형의 복음주의 기독교는 ‘유사 크리스텐덤’(pseudo-Christendom)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의 유사 크리스텐덤은 붕괴하고 온전한 형태의 세속화 사회가 이뤄졌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제2부의 주제는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의 성경 읽기”다. 개신교 신앙에서 성경 해석의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을 통해 영성을 형성하기에 새로운 교회는 새로운 성경 읽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를 사는 우리가 성경 읽기에서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점들 몇 가지를 다룬다. 먼저 우리 시대 기독교는 주류세력이 아닌 주변부로 밀려났는데, 성경을 읽을 때도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과거 크리스텐덤 시대의 성경 읽기가 우리에게 배어 있는 것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크리스텐덤 시대의 특징적인 성경 읽기 방법들은 우리 시대에는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을 왜곡해서 해석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텐덤 교회는 신앙고백이라는 성경 해석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성령의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틀이 깨어진 지금 새로운 시대에 우리를 진리로 이끌 분은 성령밖에 없다. 저자는 성령이 주도하는 해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상세히 논한다.
제3부는 실천 편이다.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의 도래를 자각하고 일어난 대표적 교회 운동을 들라면 미셔널 처치 운동을 꼽을 수 있다. 레슬리 뉴비긴의 사상에서 비롯된 미셔널 처치 운동은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기보다는 교회론 전체를 근본부터 다시 보자는 본질회복 운동이다. 제5장은 미셔널 처치 운동의 주안점들을 하나씩 다룬다.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교회의 의미, 복음과 문화의 관계, ‘하나님의 선교’ 개념의 발전, 교회의 공동체성과 공공성 등의 주제가 오늘날 교회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제6장과 7장은 미셔널 처치 개념을 우리 현실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제6장은 기존 교회들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논하고, 제7장은 개척 목회를 시작하는 사역자들을 위한 매뉴얼이다.
책을 읽으면서 신선한 부분은 그동안 많은 저자들이 외부적 요인이라 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주목해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했다면 저자는 크리스텐덤이란 내부적 사안들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이다. 유사 크리스텐덤 시대를 몸소 겪었던 산 증인으로서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모든 행위들 뒤의 어두운 단면들을 직시하지 못했던 자기고백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한국교회의 문제는 이것이라며 지적하지만 다들 거기서 거기인 내용들로 채워져 왔다. 반면 이 책은 왜 지금의 포스트 크리스텐덤이란 현상이 나타났고 그에 따른 영향은 무엇인지 소상히 고찰하면서 문제는 외부가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었다는 점을 더욱 깊이 받아들이게 한다.
범영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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