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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인가 상처인가”-끝

두 평행본문의 언어적 분석 및 번역

기민석 교수
침신대 신학과(구약학)

먼저 마소라 본문의 각 4절을 살펴보자.
사무엘상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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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0장 4절
.h;yl,[; lPoYIw" br<j,h 'Ata, l~Wav; jQ'YIw" daom] arEy: yKi wyl;ke acenO h~b;a; alw] ybi AWlL]['t]hiw] h~L,ae~h; !ylirE[}h; Waboy: A@P, Hb;% ynIrEq]d:w] *B]r]j' #lv] wyl;ke acenO Ala, lWav; rm,aYow"


두 평행 본문에서 3절 마지막에 사울이 ‘떨었다’는 표현은 마소라 본문 그대로를 존중한 것이다. 사울이 떨었지만, 사무엘상 구절에서는 아직 사울이 생명을 위협할만한 부상은 입지 않았다. 반면 역대상의 기록에 의하면 사울은 이미 3절에서 활에 쏘여 중상을 입었다.


활잡이들에 의해 부상을 당했는지 아닌지는, 이어지는 4절로 인해 상당히 주목해야 할 사안이 된다. 왜냐하면 사울의 부상 여부가 4절을 이해하는 대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행하는 두 4절을 보면, 사울이 무기병에게 하였던 말에 또렷한 차이가 있다. 무기병이 자신을 죽여야 할 이유를 사울이 말하는데, 사무엘상에서는 할례받지 못한 이들이 자신을 ‘찌르고’ ‘희롱’할 것을 염려하지만, 역대상에서는 ‘희롱’ 당할 것만 염려하고 찌르는 것에 대한 염려는 없다. 이 차이는 사울의 죽음의 방식에 대한 차이를 만든다. 사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결정타를 어떻게 입게 되었느냐의 차이다.


사무엘상의 기록에 의하면 3절에서 사울은 아직 활잡이들로 인해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사울은 그 다음 구절에서 말하기를 블레셋 군사가 와서 자기에게 부상을 입히고 - 즉, 찌르고 - 그리고 자신을 희롱마저 할 것을 염려한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칼 위에 엎어진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사무엘상에서는 사울이 블레셋 군인에 의하여 치명타를 입은 것이 아니다.


반면 역대상의 기록에 의하면 사울은 이미 3절에서 부상을 입었다. 그렇기 때문에 4절에서, 사울은 블레셋 군사에 의해서 결정적인 부상을 입을 염려를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롱당할 것만 염려한 것이다. 역대상에서는 사울이 블레셋 군인에 의해 치명타를 입었다.


이처럼 두 평행 본문은 이방 군인에게 사울이 결정적 상처를 입었는지 아닌지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죽음을 야기한 결정적 타격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가 서로 다르다. 사무엘상에서는 사울 자신, 역대상에서는 이방 군인이었다.


사울이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는지는 어떤 의의가 있는 것일까? 사울의 죽음의 방식은 왜 역대기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일까? 역대상이 기록한 사울은, 신명기적 역사서가 그에 대하여 기록한 것과 비교해 보자면 매우 간략하고 편파적이고 부정적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남 왕국 다윗-솔로몬의 왕정과 예루살렘 성전을 최고의 정점으로 여기는 역사서다. 역대상은 1장부터 9장까지 족보만 길게 열거하다가, 10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궁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 서곡으로 초대 왕 사울의 죽음을 짧게 노래하고, 11장부터는 찬란한 다윗-솔로몬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신명기 역사서에서 볼 수 있는 사울의 전반적 인생사는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사무엘서는 20장에 걸쳐 사울 이야기를 전하며, 사울에 대한 동정적 시선도 보인다. 그러나 역대기의 사울의 삶은 역대상 10장에만 짧게 등장하고, 매우 편파적이고 부정적이다. 사울의 죽음만을 다룬 역대상 10장은 명백히 다윗 왕 이야기의 서두 격이며, 전혀 독립적이지 않은 부가적 이야기이다. 다의 왕위의 정당성과 그 영광을 빛내주기 위한 짧은 서곡인 것이다.


다윗-솔로몬의 영광스러운 남 유다 왕정 역사를 빛내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북이스라엘 출신인 사울의 등장은 대비적으로 어둡고 암울해야 했다. 오직 그 편파적인 목적을 위해 구성된 본문이 역대상 10장이며, 위에서 살펴본 3~4절은 그 목적에 부합한 요소여야만 했을 것이다. 역대기 사가가 사무엘상의 사울 죽음에 대한 기록을 알고 의식하고 있었다면, 역대기 사가가 취한 본문 구성과 편집은 전반적인 역대기의 사상과 부합해야만 했을 것이다.


역대기 기자가 보기에는 사무엘상 31장이 기록한 사울의 죽음은 너무 영웅적이고 장렬한 자결일 것이다.
수치스러운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옆에 있는 부하 병사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가 사사기에도 등장한다. 바로 아비멜렉의 죽음이다.


사사기 9장 53~54절은 이렇게 보고한다. “그러나 그 때에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에 내리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숴 버렸다. 아비멜렉은 자기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 병사를 급히 불러, 그에게 지시하였다. "네 칼을 뽑아 나를 죽여라! 사람들이 나를 두고, 여인이 그를 죽였다는 말을 할까 두렵다." 그 젊은 병사가 아비멜렉을 찌르니, 그가 죽었다.”(새번역)


극악무도했던 그의 죽음은 매우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죽음이어야 했다. 여자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에 부상을 입은 아비멜렉은, 여자에게 당했다는 것이 수치스러워 부하 병사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 병사는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진짜로 죽여 버린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울의 경우, 사무엘상 31장의 기록에 의하면, 할례받지 못한 이들로부터 부상을 당하는 수치가 아직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며 그의 기름부음 받은 초대 왕으로서 사울은, 이 수치를 스스로 피하고자 부상도 입기 전에 무기병에게 찌를 것을 부탁한다. 부하 병사로부터 진짜 찔려 죽었던 아비멜렉의 경우와는 달리, 그의 무기병은 두려워 감히 찌르지 못한다. 결국 사울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고, 이방인에게 당할 수치를 겪지 않는다.


이런 비장하고 영웅적인 사울의 죽음이 역대기에는 어울릴 수 없다. 아비멜렉이 여자로부터 부상을 당해 수치스러웠던 것처럼, 사울도 할례받지 못한 이들의 활에 맞아 수치스러운 부상을 당해야 하는 것이 역대기의 신학과 부합한다. 이미 중상을 입었기에, 칼에 엎어져 죽음을 맞게 되는 사울의 마지막 행위는 사무엘상의 기록만큼 영웅적이지 않아 보인다.


더불어 역대기의 신학에 의하면, 사울의 죽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징벌이어야 한다. 그 뚜렷한 의도가 역대상 10장 13~14절에 드러나 있다: “사울은 그가 여호와를 배신하였던 일 때문에 죽은 것이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심지어 신접한 자를 찾아 바랐지 여호와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는 그를 죽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기셨다.”(새번역)


이 두 구절은 평행본문인 사무엘상 31장에는 보이지 않는 기록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기록이 역대기 기자가 사울의 죽음에 대하여 평가하여 삽입한 구절로 보고 있다. 즉, 역대기 기자의 관점으로 보자면 사울은 반드시 하나님에 의하여 징벌을 받아 죽어야 한다. 블레셋 사람의 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면, 이는 충분히 하나님의 징벌로 여겨질 수 있다.


사울의 죽음을 기록한 두 평행 구절인 사무엘상 31장 3절과 역대상 10장 3절간의 상이점은, 언어와, 문맥, 신학적 의의를 고려해 보았을 때, 그 해석과 번역에 있어 매우 신중하게 다뤄 졌어야 했을 부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서 번역은 이를 간과했다. 개역개정의 경우 이 평행 구절들의 번역에 차이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번역의 타당성을 찾기 어려운 해석을 하고 있다. 위에 열거한 성경들 대부분은, 마치 평행 구절들은 서로 반드시 ‘평행’이 되어야 한다는 듯이 너무 동일하게만 번역하고 있다. 새번역의 경우 둘이 완전 일치한다.


사무엘상 31장 3절의 경우, 대부분의 번역이 사울이 부상을 이미 입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직 Jewish Publishing Society 번역만 사울이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 활잡이들로 인해 두려워한다는 해석을 취하고 있다: “And the battle went sore against Saul, an the archers overtook him; and he was in great anguish by reason of the archers.” 하지만 아쉽게도 Jewish Publishing Society는 평행 본문인 역대상 10장 3절마저도 동일하게 번역을 하고 있다.


사울이 부상을 당했다는 표현이 역대상 본문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모림’(מוֹרִים)과 ‘요림’(יוֹרִים)의 차이를 간과한 것이며, 연이은 4절간의 변이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역대상 10장 3절의 ‘모림’과 ‘요림’을 차이를 두어 번역한 경우는 독일어 Neue Lutherbibel이다. 그러나 그 뜻에서 차이는 없는 두 단어, 각각 ‘Bogenschützen’과 ‘Schützen’으로 번역했다 (Bogen=활 / Schütze=궁수).


연구자가 관찰한 그 의미의 차이는 전혀 전달되지는 않는다. ‘Bogenschützen’은 그저 “활을 가진”이란 단어를 살려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하게도, 사무엘상 31장 3절에는 ‘모림’(מוֹרִים)만 두 번 나오고 역대상 10장 3절이 서로 다른 두 단어를 가지고 있는데, 두 평행 본문에서 모두 서로 다른 두 단어 ‘Bogenschützen’과 ‘Schützen’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번역을 관찰해보면, 이 두 평행 구절을 동일하게 번역해야 한다는 번역자의 강박(?) 의식이 드러나 보인다.


어쩌면 성서의 평행본문 번역은, 평행보다는 변이에 주안점을 두어 예민하게 번역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성서의 평행 본문 번역에 있어 그 상이점들이 좀 더 면밀하고 세밀하게 관찰되어 번역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사울의 죽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차이로 인해 그 변이가 보이는 사무엘상 31장 3절과 역대기 10장 3절이 그 좋은 예이다.


더불어 사울의 죽음에 대한 두 역사기록의 차이는, 다시 한 번 두 역사 기록문 간의 신학적 차이를 명확하게 해준다. 남 유다 왕국을 중심으로 한 역대기의 역사 신학은 북이스라엘 출신의 초대 왕 사울을 다윗의 영광을 빛내기 위한 짧은 조연으로만 삼는다.


사무엘상에는 없던 사울의 죽음에 대한 ‘평가’구절은 (역대상 10:13~14), 역대기 사가의 이해 속에 사울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사울은 절대 영웅적이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 되며, 사사기의 아비멜렉처럼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죽음이 하나님에 의한 징벌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상이한 차이는 성서 독자와 해석자들이 어떻게 이를 정경적으로 소화해야 할지 고민을 던져준다. 그러나 이는, 역대기라는 역사서의 성격을 좀 더 명확히 함으로 말미암아, 사울뿐만 아니라 다윗이나 솔로몬의 역대기 기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 답을 더 명확히 해준다.


역대기의 편향성을 확실히 이해한 만큼, 역대기의 다윗-솔로몬 영웅화도 반드시 신명기적 역사기록과 비교 평가하는 가운데에 절충하여야 할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도 역대기가 그리는 것 만한 절대적 영웅은 아니다. 어쩌면 성서 안에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다른 두 본문들이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좀 더 객관적인 실체에 비교를 통하여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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