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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자아상-2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신구조를 페르소나, 자아, 그림자라는 개념으로 구분 지어 설명한다. 페르소나는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착용하던 가면을 뜻하는데 ‘외적 인격’, 즉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을 말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이고 행동규범이다. 목사, 사모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기대치이다. 그런데 대외적으로 보이는 그 페르소나 뒤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우리 안에 있는 부도덕하고, 부정적이고, 가리고 싶은 더러운 면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온전한 인간이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당연히 목회자나 사모에게도 이 그림자는 존재한다. 말씀을 들고 강단에 호기 있게 서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이나 비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주일의 나와 주중의 내가 다르다. 사람들이 몰라야 하는 허물들이 셀 수도 없다.


자신이 얼마나 쪼잔한지, 찌질한지, 뒤끝이 작렬하는지, 얌체인지, 비겁한지 절대 들킬 수 없다. 하지만 그림자는 잠시 숨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언제나 은혜만 끼치며 살 수 없고, 맞는 말만 하고 살 수 없다.


안타깝게도 교회에 오는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나 때문에 교회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남 일을 척척 해결하기는커녕, 나 자신도 감당이 안 되는 문제들로 발버둥 치며 산다. 목회자가 사람인 이유이다.


자신이 가진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차이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목회자는 병들어간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기대와 그 뒤에 숨겨진 실제의 내가 다르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한다. 그런데 우리 안에 숨긴 어두운 그림자는 없애려고 애쓸 때 더 짙어진다. 센 척, 거룩한 척, 괜찮은 척하는 벽이 높아질수록 그 벽 뒤로 드리워지는 나만 아는 그림자도 높아진다. 오히려 그 그림자를 인정하고 마주 볼 때 우리는 비로소 빛으로 나온다.


내 안에 연약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공존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숙함이다. 자신이 얼마든지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는 사람임을 인식하는 것은 용기이다. 자신 안에 있는 약함을 미워하고 비관하고 감추기보다는, 그 약함과 화해하는 것이다.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약함을 용서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끄럽고 죄된 모습이 당당해서가 아니다. 이미 받은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약함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닮아가는 과정은 나의 부끄러운 그림자,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구원을 시작하신 엄청난 사랑에 기대면서 시작된다.


나의 그림자로 통하는 문을 주님께 열면서 시작된다. 나의 강함이 아닌 주님의 강함에 기대면서, 나의 거룩함이 아닌 주님의 거룩함을 의지하며 시작된다. 그래서 그림자는 빛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우리의 약함이 축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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