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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잎새 같은 달 ‘12월을 보내며’

 

하나님께 받은 2020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가 생각난다. 폭풍우가 무섭도록 휘몰아친 비바람에 모든 담쟁이 잎들이 다 떨어졌지만, 끝까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던 마지막 담쟁이 잎새 하나.

 

폐렴에 걸려 죽어가던 화가 지망생 존시가 그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회복이 됐는데, 절망에 빠진 존시를 살리기 위해 희망을 주려고 밤새도록 폭풍우 속에서 담쟁이 벽화를 그린 베어먼은 결국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존시의 친구 수는 커튼을 열어 담쟁이 벽화의 마지막 잎새를 보면서 이것은 베이먼의 걸작이라고 말한다. 코로나블루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 때, 많은 이들이 짓눌려 있고 한 해를 힘겹게 보낸 게 사실이지만 우리도 베어먼과 같이 누군가에게 담쟁이 잎새 하나를 남겨주면 좋겠다.

 

모두가 힘들어하고 지쳐 있는 요즘에 교회가 진정한 희망을 주기를 기원한다. 미국 클라이언트대학원의 기독교 상담학 교수였던 하워드 클라인 벨은 기독교인을 가리켜 희망을 일깨우는 자”(hope awakener)라고 말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절망으로 흔들리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심어주고 용기를 주며 앞서 이끌어 가기를 희망한다.

 

미국 32대 대통령을 지낸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행한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가 단 한 가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고 말한 대로 코로나 공황에서 벗어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과 소망이 복음으로 코로나와 여러 가지 상황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본을 보이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중의 하나이다.

모든 나무는 죽는 순간까지 해를 바라보며 오직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데 이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우듬지라고 한다. ‘우듬지란 나무의 맨 꼭대기에 있는 줄기를 말하는데, 곧게 자라는 침엽수의 경우,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자라면서 아래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것을 통제하는데, 우듬지 끝이 한 마디쯤 자라고 나서야 아래 가지도 뒤따라서 한 마디쯤 자라는 식이다(참조.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전나무나 메타세쿼이아 같은 침엽수들이 곧게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줄기 꼭대기의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강한 힘으로 통솔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교회나 사회도 같다고 본다. 자신의 삶과 사명을 지탱하고 이끌어주는 영적 우듬지가 있을 때, 비바람 속에서도 싹을 틔우고 잎을 내며 꽃을 피워내는 나무들처럼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침례교단이 한국교회의 우듬지가 되고 나아가서 나라에 소망을 주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거룩한 우듬지가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사회학자 라쉬의 말대로 차가운 세상에 있는 천국을 보여주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며, 60년 동안 잘 자라다가 꽃을 단 한 번 피우고 생을 마감하는 대나무처럼 절망의 시대에 믿음과 소망의 꽃을 피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고백하며 다짐해 본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은 우리를 보고 밑줄을 그으며 삶의 모델로 삼고 그리스도인을 닮고 싶어 할 것이다.

 

사무엘하 238~39절에 보면 다윗을 도와서 용맹스럽게 싸운 37명 용사들의 이름이 나온다. 37명의 용사들 중에 자신과 같은 유다지파 사람은 13명이다. 나머지는 다양한 지파와 여러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이 용사들 리스트에는 외국인도 등장한다. 요즘 말로 국적과 지연, 혈연을 불문하고 모인 용사들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윗이 그만큼 큰 그릇이요, 거인이라는 의미이다. 작은 그릇에는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사람도 같다. 그릇이 작은 위인은 큰 사람을 포용하지 못한다. 국가나 사회나 교회도 마찬가지다. 존 맥스웰은 이것을 가리켜 영향력의 한계점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의 탁월한 스태핑(staffing) 능력은 다윗 자신의 그릇됨과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탁월한 리더십에 있다. 한 마디로 다윗은 큰 사람이라는 얘기다.

 

오늘날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듯이 어려울 때 진정한 리더십이 빛나는 법이 아닌가? 목회 현장과 선교 사역에 비상등이 켜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환경 탓만 할 것인가? 모든 책임을 코로나에게 뒤집어씌우고 전가하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라고 본다.

 

지금이야말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라고 고백한 바울과 같이 우리 자신과 사역을 점검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정직하게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12월의 마지막 날이 되기를 기도하며 작가 윌리엄 영의 말로 마무리하며 다가올 새해를 아름다운 소망 가운데 기대해 본다.

 

생명, 진정한 생명, 바로 나의 생명을 당신에게 주려고 내가 왔어요. 우리는 당신 안에서 우리 삶을 살 것이고, 당신은 우리 눈을 통해서 보고, 우리 귀로 듣고, 우리 손으로 만지고, 우리처럼 생각하게 돼요.”

    

 


김형윤 목사

해외선교회 순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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