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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의 기능-5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만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일반적인 가르침에서 상징적 언어 또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다. 예수가 “나는 문이다”(요10:9)라고 선언할 때, 영생과 구원의 문이 되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예수가 그렇게 선언하실 때문이라는 물체가 그리스도의 실체로 본질이 변하는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가 문의 밑에, 함께, 또는 안에 그리스도가 임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체험하는 문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의 선언에도 문은 문으로 남아 있지만 단지 그리스도가 문맥 가운데 말씀하신 내용처럼 예수는 구원의 통로가 되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매개체를 보여주는 그림 언어로 작용한다.

 

동일하게 주의 만찬에서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 언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에 대한 침례교 전통의 기념설에 의하면,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단순히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상징체의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만찬은 과거에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과거 사건과 미래의 사건을 현재의 시점에서 동시에 가리키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고전11:24~26; 마26~29).

 

가톨릭의 화체설, 루터교의 공재설, 또는 칼빈의 임재설은 성서의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함으로 주의 만찬에 실체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강조하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 그러나 침례교의 기념설은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 임재에 대한 강조가 빠져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의 만찬을 행할 때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의미를 기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침례교의 기념설이 주의 만찬에 그리스도의 부재를 주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침례교인들은 그리스도가 주의 만찬에 떡과 포도주를 통해서만 임재하실 수 있다는 주장을 반대하는 것이지 성만찬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는 주의 만찬에서만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성령을 통해 임재하신다(마18:20; 마28:20).

 

침례교인들은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단순한 상징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는 효력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침례교인들은 주의 만찬을 통해 그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념 이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을 강조한다. 기독교의 성례전인 침례와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의 연합을 상징하는 의식이다(롬6:3~9).

 

침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는 것을 그림언어로 표현하고 의식을 행하는 것과 같이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의 약속을 기념하게 하는 상징적 매개체이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만찬 참여자들의 연합을 표현하는 의식이다.

 

VI. 맺는 말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교회 전통이 세워지게 됐다.

첫째로 가톨릭교회와 루터교 전통은 주의 만찬과 관계된 성서 본문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함으로 그리스도의 직접적임 임재를 강조하는 화체설이나 공재설을 주장한다. 칼빈의 개혁교회 전통은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을 포괄적으로 인정함으로 그리스도 몸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로 현존한다는 실재 임재설을 주장한다.

 

반면에 침례교 전통은 모든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고 오직 떡과 포도주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표상하는 상징물로 이해하고 오직 주의 만찬의 제정의 말씀 중에 “나를 기념하라”라는 구절만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므로 임재설과 반대 개념으로 일명 기념설을 주장한다고 평가를 받게 되었다.

 

주의 만찬에 대한 그리스도의 제정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느냐 아니면 상징적으로 보느냐의 관점의 차이는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실체적으로 임재하느냐 아니면 단순한 상징물인가라는 논쟁을 초래했다. 그 논쟁 중침례교 전통은 유일하게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무관하게 그리스 도의 죽음을 기념하게 하는 하나의 단순한 상징물로 보는 입장을 취했다.

 

둘째로 주의 만찬에 관련된 성서의 본문들을 문자적으로 보느냐 상징적으로 보느냐에 대한 해석학적 차이는 주의 만찬과 다른 신약 성서의 교리에 연관된 다른 논쟁을 불러오게 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주의 만찬과 종말론적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연관성의 문제이다.

 

가톨릭 전통과 루터교 전통은 주의 만찬에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를 시공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지 않고 무시간적인 초월적인 그리스도로 보았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그리스도가 아닌 떡과 포도주의 내면적 본질적 실체가 그리스도의 실체로 변화된다는 화체설이나 떡과 포도주의 표면에 비가시적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동시에 현존할 수 있다는 공재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개혁교회 전통과 침례교 전통은 떡과 포도 주는 이 땅에 존재하는 물질적 물체로 본 것에 반해 그리스도는 부활과 승천을 통해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종말론적 심판의 주로 봤다.

 

즉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이 이 땅으로 내려와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 몸이 주의 만찬에 이미 임재했다면, 이미 그리스도의 재림은 도래했고 주의 만찬의식은 미래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칼빈이나 쯔빙글리의 논리는 침례교 전통의 관점에서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주장이다.

 

셋째로 주의 만찬에 대한 의미 해석은 어떻게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임재할 수 있는 가에 초점이 모여진다.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임재에 관한 관심은 사실 주의 만찬의 핵심 주제이기보다는 성서 안에 포괄적으로 나타난 신학적 주제이다.

 

그러나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임재한 다는 가설을 마치 성서적 주장처럼 여긴 것이 각기 다른 전통의 학설들을 만들어냈다. 그에 반하여 침례교 전통은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 도의 임재를 부인하는 것처럼 왜곡되어 오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침례교 전통은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문자적 해석을 부정하고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임재한다는 학설을 거절하지만 그리스도가 주의 만찬 자리와 참여자에게 임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침례교회 전통은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에게 임재하고 함께하 신다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강조한다(마18:20; 28:20).

 

그러므로 침례교 전통에서 있는 교회들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임재하시는 그리스도가 특별한 사건 특히 주의 만찬과 같은 거룩한 의식의 자리에 믿는 자들에게 임재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와 연합의 교제에 참여하는 주의 만찬의 시행이 필요하다.

최선범 교수 한국침신대 신학과(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