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5~10월은 건기에 해당되지만 11월부터 그 다음해 4월까지는 비가 내리는 우기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기후와 자연환경은 이 두 시기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건기는 뜨거운 날씨에 비가 전혀 내리지 않으며 풀들은 모두 말라버려 거칠고 황량할 뿐이다. 하지만 우기에는 산과 들 그리고 계곡과 평야는 물론 심지어 광야마저도 풀들이 자라고 꽃들이 가득 피어난다.
우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12월쯤, 그래서 봄이 더욱더 간절히 기다려질 때, 이스라엘 땅에는 그 누구보다 서둘러 봄을 예고하는 전령사가 나타난다. 바로 아몬드 꽃이다.
예루살렘에서 국도 1번을 따라 텔아비브로 가려면 소렉골짜기와 아브고쉬를 지나야 한다. 시가지를 지나자마자 소렉골짜기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난다.
도로 옆 비탈과 골짜기 반대편 산기슭에 뭉개 뭉개 피어난 아몬드 꽃이 보인다. 햇살을 맞으며 피어오른 엿은 분홍빛 아몬드 꽃을 볼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복사꽃 피어나는 고향 마을을 떠올리곤 했다.
우리말 성경에서 아몬드 나무나 꽃을 찾을 수 없다.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 번역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히브리어 성경의 아몬드 나무나 꽃을 우리말 성경은 살구나무와 꽃으로 번역해 버렸다. 하나님은 아론의 지팡이에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를 맺게 하셨다(민17:1~11).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 하나님은 환상 중에 꽃이 활짝 핀 살구나무를 보여 주셨다(렘1:11). 그리고 성막의 등대를 하나님은 살구나무에 꽃이 만개한 모습으로 고안하셨다(출25:33~34). 여기에 등장하는 살구나무는 모두 아몬드 나무와 꽃이다. 이것 외에도 성경에 나타난 살구나무나 꽃은 아몬드 나무 또는 꽃으로 보면 틀림없다(창30:37-루스를 살구꽃으로, 창43:11-샤케드를 파단행으로 번역).
히브리어로 샤케드(shaqed)는 아몬드 나무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몬드 나무를 우리말 성경에서는 살구나무로 번역해 버렸다(꽃의 모양이 비슷하고 우리나라에 아몬드 나무가 없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아몬드 나무를 살구나무로 보면 이 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뜻을 깨닫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샤케드를 샤케드로, 아몬드 나무를 아몬드 나무로 볼 때 비로소 이 나무와 꽃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성막을 연구할 때였다. 나는 성소의 등대를 하나님께서 아몬드 나무에 꽃이 활짝 핀 모양으로 고안하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로뎀나무, 종려나무, 싯딤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아몬드 나무에 꽃이 핀 형상으로 성막의 등대를 고안하셔야만 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이 때부터 아몬드 나무를 사용하신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몬드 나무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리고 그 땅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처했던 자연환경에서 이 나무의 특징을 보고 경험하며 그들의 상상력을 넓혀갔다.
첫째로 아몬드 나무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샤케드는 ‘경계하다’ ‘깨어있다’ ‘유심히 살피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샤카드(shaqad)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사람들은 아몬드 나무의 이름을 왜 이런 의미의 동사에서 가져와 사용했을까? 알고 보니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가는 길에서 만났던 아몬드 꽃에 그 비밀이 담겨 있었다.
성경의 주인공들에게 아몬드 나무(샤케드)는 봄이 채 오기 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입이 나오기 전에 꽃이 핀다). 그러니 아몬드 꽃은 우리의 개나리 또는 진달래와 같이 봄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아몬드 나무를 봄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며, 새 생명이 소생하는 새로운 때와 시기를 알리는 전령사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깨어있다’ ‘유심히 살피다’를 의미하는 동사 샤카드에서 아몬드 나무의 이름을 취해온 것은 깨어서 새로운 시기 또는 새로운 때를 유심히 살피라는 메시지를 나무 이름에 담았던 것이다.
둘째로 앞서 언급했듯이 아몬드 나무는 봄의 전령사였다. 사람들은 이런 아몬드 나무의 특징과 ‘유심히 살피다’ ‘깨어있다’는 이름에서 ‘흔들어 깨우는 자’라는 의미와 동시에 새로운 시기가 반드시 도래한다는 ‘희망’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의미로 발전시켰다.
셋째는 아몬드 나무는 움이 트고, 꽃봉오리가 생기며, 꽃이 활짝 개화되는 속도가 아주 빠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산을 보면 아무것도 없었는데 저녁이 되기 전에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빠르게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비유할 때 이 꽃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아몬드 꽃의 상징적 의미들은 사건에 따라 각각 강조점이 다르게 사용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성막의 등대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성막의 등대를 아몬드 나무에 꽃이 활짝 핀 모습으로 디자인하셨다.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이쪽 가지에 살구꽃(아몬드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출25:32~34)
성막을 연구하면서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도래는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시기요 새로운 때가 아닌가. 그 때는 은혜의 시기요 마치 봄처럼 새 생명이 소생하는 때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성막에는 창문이 없다. 오직 빛 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황금 등대만이 유일한 빛이다.
제사장들은 컴컴한 성막 안에서 등잔 빛에 반사된 활짝 핀 황금빛 아몬드 꽃 등대를 보면서 어떤 메시지를 깨달아야만 했을까? 마치 파수꾼이 깨어서 유심히 살피듯이 예수님이 오실 그 때를 유심히 살피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달아야만 했다. 지도자로서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며, 어떠한 역경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외치고 전하라는 제사장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달아야만 했다.
언젠가 성지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한 번쯤은 아몬드 나무를 만나게 될 것이다. 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 밑에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복음을 생각혀 이 시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