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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사랑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행지라도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불모지도 아름다운 여행지가 된다. 한낮에도 산이 붉은 노을로 물들었다. 나의 인생도 가을과 함께 깊어진다.

 

많은 상처와 아픔, 희열과 감동, 슬픔과 기쁨이 녹아들어 이제 제법 어떠한 감정도 그리고 어떠한 사람도 이해 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어느 순간 마음 한 구석에서 쓴 뿌리가 돋아나 용서를 못하는 자신을 느낀다. 그 분노의 가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전히 상대방을 찌르고 있었다. 떨어진 낙엽이 밑거름이 되어 나무에 새로운 잎을 달아 주듯 겉사람이 후패하여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진다.

 

가을의 풍성함과 그 여유처럼 속사람은 나의 시각을 바꾸어 주님의 시각으로 나와 타인을 보게 한다. 네 가시 때문에 내가 아프다 했으나 내 가시로 네가 아팠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시를 내 자신이 조용히 부러뜨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기의 가시로 나를 찌른다.

 

너를 위해 내 가시를 부러뜨렸는데 너는 왜 아직도 나를 찌르니?’ 화가 났지만 그 화가 가시로 다시 돋아 여전히 상대방을 찌르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고 그를 바라보니 그가 나를 찔렀다고 생각한 가시는 내가 그의 몸을 찔러 그에게 박힌 가시들이었다. 그는 어둠속에서 붉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주님이셨고 내 가족이었고 이웃이요 형제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죽어 네가 산다면 내가 산거야, 내가 네 안에 살고 싶어, 내가 네게로 들어가고 너는 내게로 들어왔으면 좋겠어, 내가 널 사랑해.’ 사망의 음침한 길을 걸어도 해()받을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죽어도 좋을 사랑의 길이 십자가 죽음의 길이지만 죽고 살아나신 그 사랑으로 주님은 내 안에 오셨다. 나는 다시 나의 가시를 기쁘게 부러뜨린다. 사랑하는 대상을 맞이할 준비로부터 영생의 문이 열린다.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중학교에 진학을 안했다. 기독교 대안학교와 필리핀의 지역학교, 그리고 기독교계통의 국제학교를 거쳐 검정고시를 치루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다섯 살이던 어린 시절에는 철재 방화셔터에 목이 끼여 숨을 멈춘 일도 있었다.

 

이웃의 도움으로 인공호흡을 통해 숨이 다시 살아났던 아들이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난 다른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제 아이가 고난을 받아 다행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아 다행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것이 믿음인 줄 알았다.

 

그 후 1년 뒤 등록금이 없어 상담학을 더 배워야 하는지를 주님께 묻는 기도 가운데 강하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됐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 “네 제 아들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잖아요?”, “너는 지금 자녀가 다 있지? 내 독자 예수를 너를 위해 죽음에 넘기면서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을 너는 알겠느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간 나는 상처 입은 내면의 아이가 살아났다. 권력자이신 아버지 밑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버지만이 중요한 존재라는 인생패턴이 모범생의 가면과 목사라는 가면(假面)을 쓰게 했던 이유가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나는 내 아들을 주님께 바칠 정도의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랑을 받은 온전한 자아상이 아니라 역기능가정에서의 참자아가 아닌 거짓자아로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권력자이신 아버지가 중요한 존재이기에 그분에게 잘 보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존전략이 심리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미안했다. 그 이후에 목회보다는 내 개인의 치유와 부부관계, 자녀와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치유에 전념했다. 그 과정의 첫 번째로 나는 나 자신도 중요한 존재요 사랑받을 존재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일깨우며 건강한 자아경계선을 갖고자 노력을 했다. 내면의 치유와 함께 이루어지는 가족치료는 복음의 씨가 열매로 가는 과정과 같았다.

 

이미 소천하신 아버지의 무덤을 납골로 된 가족묘를 만들고자 파묘를 하여 아버지의 뼈를 대하는 순간 마른 뼈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 권력자이시고 강직했던 아버지의 뼈는 마분지에 싸여 조용히 내 무릎위에 계셨다. 나의 체온인지 아니면 되살아 난 아버지의 뼈의 체온인지도 모를 따스함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었던 아니 내가 꼭 들어야만 했던 말을 살아난 아버지의 뼈가 말씀하신다.

 

내가 널 사랑한다. 네게 준 상처를 용서해다오. 나 또한 나의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아 사랑하는 법을 몰랐단다. 이해하렴, 아들아! 그리고 내가 널 영원히 사랑한다. 네가 행복하고 네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것이 나의 바람이란다.’

 

그리고 십년의 세월의 흘렀고 아들이 고등학교를 입학한지도 어느 덧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방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기에 아내는 내일 대학수능일 날 따뜻한 도시락도 못 싸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때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을 하나님과 아빠가 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요. 아빠.” 아들에게서 온전한 사랑의 고백을 듣기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실 내가 치유되는 것만큼 나의 가족도 치유됐던 것이다.

 

아들! 넌 좋겠다. 살아있는 아빠로부터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줄 수 있으니. 아들에게서 행복한 나와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박종화 목사 / 빛과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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