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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을 향한 노래 (열왕기상 1:47~48)

찬양 속 바이블 스토리-7

일반적으로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서로의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덕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 가정의 자녀들의 외모를 칭찬하며 관례적으로 하는 말들 중에 “야,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잘 생겼구먼” 하는 농담이 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은 오히려 마음 뿌듯해 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주 드물지만 어떤 분들은 이러한 농담을 불쾌해 한다. 심지어 정색하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모임의 분위기가 자못 썰렁해지는 부작용이 따라오곤 한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기 자녀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대단히 기뻐하기 마련이다. 자녀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그 자녀들을 낳고 키운 부모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제 간에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노래를 잘 불러서 각종 음악콩쿠르의 대상이라도 탄다면 스승은 누구보다도 이를 기뻐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간혹 이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못난 스승들도 있긴 하다. 제자가 너무 잘 해서 혹시 자신의 영역이나 자리까지 넘보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제자들의 특출함를 은근히 견제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칭찬하면서도 뒤로는 제자의 단점을 지적하며 깎아내리는 행동을 한다.


청출어람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 원로목회자들도 포함된다는 소문이 있다. 후임으로 온 목회자가 자신이 물려준 교회를 잘 이끌고 더 부흥시킨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남들이 목회를 잘한다고 칭찬하면, 걔는 내가 다 쌓아놓은 터전 위에 숟가락만 얹은 것에 불과해 하는 식으로 폄훼한다는 것이다. 짧은 한국 교회사 속에서 원로의 입김으로 인하여 후임 목회자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자리에서 물러났던 일들이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아무리 터전이 다 만들어진 상태에서 목회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현상유지마저도 힘든 요즘의 사역의 분위기 속에서 더 부흥하는 목회를 하는 후배나 후임이 있다면 정말 감사하며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는가?


 솔로몬이 왕이 될 당시 청출어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몇 번 나왔다. 아도니아의 반역에 동참하지 않고 꿋꿋하게 왕의 지시를 기다렸던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솔로몬이 즉위한 직후 솔로몬이 다윗왕보다 더 큰 통치를 하는 더 큰 왕이 되기를 소원한다고 다윗왕의 면전에다 대고 말했던 적이 있다(1:37).
아무리 상왕으로 물러난 상황이라 해도 다윗왕이 누군가? 현재에도 역사상 가장 나라를 잘 다스렸던 통치자로 인정받는 위대한 왕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왕의 면전에 대고 당신의 아들이 당신보다 훨씬 더 위대한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으니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조금은 아슬아슬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다윗 왕은 역시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 자신의 심복이었던 브나야가 한 말을 고깝게 여기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모든 왕의 신하들이 와서 솔로몬이 당신보다 더 위대한 왕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할 때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들의 말을 옳게 여겨 그 덕담과 축복에 동조했다. 열왕기상 1:47이하에 기록된 말씀은 진심으로 청출어람을 원하는 그릇이 큰 사람들의 노래이다.
“왕의 신하들도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또한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아멘.
정부이건, 직장이건, 학교이건, 교회이건, 총회이건 후배나 후임이 잘 하면, 숟가락만 얹었다고 폄훼하지 않고, 진정으로 청출어람을 칭찬하고 축하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노주하 목사 찬양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