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고마운 동역자 여러분! 최영선선교사는 4월 26일 아침 5시32분에 49년의 짧지만 아름다운 삶을 마감하고 평안하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주님의 기쁨 되기 원했던 최영선선교사! 나의 사랑! 나의 천사! 눈물 없고 통증 없는 천국에서 우리 곧 만납시다! - 한대희 선교사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선교사 된 한 대희-최영선 선교사는 2003년 8월 17일 훈련을 마치고 송탄중앙교회(배국순 목사)에서 2004년 2월 9일,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최영선 선교사는 한대희선교사의 아내로서, 동역자로서 캄보디아를 가슴에 품고 자립과 재생산이 가능한 현지인 교회 3개를 개척하고 제자훈련, 어린이, 청소년 사역 등으로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2014년 11월 시아버지의 소천으로 한국에 방문해 머무는 동안 몸의 통증으로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유방암이 뼈와 부신까지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수차례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주사의 부작용으로 고생하다가 자연치료를 하던 중 뇌까지 암이 전이되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다가 26일 화요일 49년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투병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최
고난 중에 안식을 주시는 주를 높여 드립니다(신 12:9절). 이미 아시겠지만,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를 중심으로 지난 4월 14일 밤 9:26분에 최대 진도 7의 전진에 이어 4월 16일 새벽 1:25분에는 최대 7.3의 본진이 발생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구마모토현 전체는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2016년 구마모토지진으로 명명된 이번 지진으로 2주가 지난 4월 28일 현재 49명의 사망자, 1명의 실종자, 1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를 내고 있습니다. 피해가 가장 큰 마시키마치를 중심으로 저희 가족이 거주하는 구마모토시, 미나미아소무라 그리고 오이타현 일부 지역까지 피해지역이 확대됐습니다. 아마 3500여 채 이상의 집들이 파손되고, 한때 10만 명 이상이 피난소나 자동차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여진이 1000회를 넘어선 상황이라 구마모토지진은 현재 진행중이며,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지역과 주택의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현 내 80여개 교회 중 적지 않은 교회 예배당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저희 히쯔지노무레(양무리)교회의 예배 처소 역시
Ev. Internationale Gemeinde Chemnitz(다민족교회)는 베를린 근교에 있는 Gussow에서 지난 3월 3일부터 6일 까지 Church Community trip을 진행했다. 57명이 참석 했고, 요르단에서 모슬림 사역을 하는 윤바울 선교사가 주강사로 섬겼다. 예수꼴 만들기 집회 내력 사실 예수꼴 만들기 집회는 2001년 바이마르에서 시작됐다. 2000년 바이마르교회에 부임한 나는 현지인 전도와 영적각성을 위하여 김응석 집사(현 바이마르교회 담임목사)와 교인들과 함께 전독일 한인교회에 편지를 써서 저들이 이 집회에 참석 하도록 독려하며 이 사역을 무료집회로 시작했다. 당시 바이마르교인은 30여명의 유학생들로 재정이 거의 없는 교회였지만, 복음의 열정과 순수함으로 시작하여 벌써 16회를 맞이한다. 이 집회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예로 김응석 집사가 자신의 학업을 주께 내려놓고 전임 사역자로 결단했으며, 지금은 바이마르교회 담임목사로 예수꼴 만들기를 더욱 풍성하게 이어가고 있다. 또한 박귀배 목사(큰기쁨교회) 등 그 외 여러 모양으로 주께 헌신된 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다민족 예수꼴 만들기를 기다리며 바이마
얼마 전에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동부지역 도네츠크에 큰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현지 사역자의 인도를 받아 10시간 이상을(약800㎞) 달리면서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개개인들의 아픔과 절망적인 상황에도 아랑하지 않고, 위대한 자연은 또 다시 새싹이 돋는 소망의 봄을 보내주었습니다. 기나긴 아픔 속에서 맞이하는 따스한 봄이라서인지 더욱 찬란하고 푸르게 느껴졌습니다. 주의 은혜로 여러분 모두도 평안하게 지내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런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은 저희에게 이 땅에 머물 이유와 힘이 되고 있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크라이나 상황 크림에 이어 동부지역인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의 힘이 커지면서 긴 내전에 돌입한 상태에 있습니다. 여러 가지 혼란한 가운데서도 정치, 경제, 교육 등에 새로운 변화들을 시도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내전의 영향은 서민들의 삶을 움츠리게 했고, 사회적으로는 안정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듣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아픔가운데 주시는 은혜가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이제 곧 회복되어 은혜를 선포하며 예배할 우크라
그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리며 축복합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2기 사역을 시작한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 한국은 완연한 봄 날씨로 그와 관련된 봄 꽃 소식을 연일 전해 듣고 있습니다. 반면에 미얀마는 건기 막바지로 매우 덥고 전기와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얀마는 4월 11일에 새해가 시작되면서 신년 연휴(11~20일)와 물 축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이 때 엄청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 부족상황이 더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ㅅㄱ사 또는 ㅅㄱ단체는 믿는 사람들을 세속문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랑빛 ㄱㅎ성도들과 에스더 공동체아이들도 수련회에 참석합니다. 수련회가 안전하게 진행되고 참석한 모든 자들이 ㅅㄹ충만하고 믿음이 견고해 질 수 있도록 중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에스더 청소년 기*독교 공동체 1년 안식년을 보내고 오니 아이들은 주님의 은혜와 두 분 ㅅㄱ사님의 세심한 돌봄으로 인해 많이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월에는 슬픈 일과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먼저 슬픈 일은 에스더 공동체
6월 8일 선교사들을 디브리핑하고 상담하고자 네팔에 도착한 우리는 개인 상담을 시작으로 이튿날부터 3일간 오전엔 남자 집단 상담과 미술치료, 오후와 저녁엔 부부상담, 개인, 가족 상담을 진행했다. 많은 선교사들이 지진으로 인해 두려움과 무기력감, 탈진, 죄책감, 불면증 등으로 어려워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지진 후, 침대나 소파에만 누우면 흔들리는 느낌이 계속 있고 지진이 또 날 것 같은 두려움에 힘들어 했다. 어떤 분은 지진 후 50여 일간 밥을 전혀 먹지 못해 치료차 한국으로 들어간 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선교사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지금 한국에 오면 어떻게 하냐? 그곳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한국교회의 반응이어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선교사들은 모두 구호사업에 나서서 한국에서 보내온 돈으로 물품을 이곳저곳에서 사서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보살피는 일을 하느라 너무나 바빴다. 이들의 사역지는 대부분 차로 험한 길을 여러 시간 동안 가서 또 며칠 동안 산을 넘고 또 넘어서 가야만 되는 곳에 있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들은 많이 지쳐 있었고 탈진해 있었다. 이들을 위해 누군가 들어주고 쉬어야
2015년 4월 27일 아침 네팔 선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여진이 계속 오고 있어요! 지난 3일 동안 집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공원에서 유숙했어요. 사모님들이 무서워하고, 지진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고 있어요. 국제단체에서는 어제부터 멤버케어 팀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고 특별히 사모들에게는 청심환도 많이 필요해요.” 청심환? 그것은 정말 위급할 때 사용하는 구급약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약이 필요한 상태라고? 그리고 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고? 나의 상식으로는 지진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지낼 곳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선교사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라는 것이었다. 바로 항공권을 구입하였다. 5월 12일 오후 네팔 카투만두에 도착 후 마중 나올 선교사님을 기다리는 순간에 제2차 강진이 발생하였다. 지진을 처음 경험한 나는 지진으로 인해 우왕좌왕 하는 주변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팔 사람들은 흔들리는 공항 청사 앞에 서 있는 나에게 나무가 흔들리고,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가리키면서 속히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선교사들을 위해 가져 온 반찬과 의약품, 그리고 한국위기관리재단의
지난 고난 주간에는 꽃샘추위에 조금은 쌀쌀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새벽기도회에 다녔습니다. 부활주일이 지나니 벚꽃이 피어나면서 어느새 만개해 가고 있습니다. 고난 뒤에 있는 영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됩니다. 고난과 영광,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 삶 속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매일 실현되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호카야마 청년의 침례식 본래는 하카타교회에서 부활주일 예배를 드릴 예정이었지만, 호카야마 형제의 바람으로 와지로교회에서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날 호카야마 형제의 침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와지로교회에 출석한지 일 년정도 됐는데 이날 예수님을 주인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침례에 앞서 신앙간증을 했습니다. 뉴질랜드 유학시절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친구가 자신을 교회로 데리고 갔는데 교회의 한국인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자신을 잘 챙겨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학 중에 계속 교회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귀국하게 됐는데 그 후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 집 근처에 있는 와지로교회에 찾아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일 년간 담임인 죠마에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을 한 것입
며칠 전 남아공에 요청했던 비자취득에 꼭 필요한 현지교회의 초청장이 한 달여 만에 도착했습니다. 이 일에 주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2주 늦어도 3주면 오는 편지가 너무 지연되면서 우편물 분실을 우려했는데, 지난 금요일 아침 7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저희가 임시로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 저와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편배달부는 주소지를 확인하지 않고 이름만 확인하고 그곳에 보냈던 것입니다. 그 분은 항상 자신의 것이 아니면 무조건 반송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에는 돌려보내지 않고 뜯어보았다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편지라 여겨져서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정말 주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한국에서 준비해야 할 서류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특별히 요즘 남아공 비자법이 강화되어 비자취득이 쉽지 않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많은 수수료를 들여 대행업체의 도움을 받아도 여러 번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저희는 예전처럼 직접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하려고 합니다. 인터뷰도 해야 합니다. 특히 재정 증명과 은행 잔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도로 잘 준비해서 3년 봉사자비자(Visitor’s Vis
1. 위기(재난) 관리 평가 가. 선교사회의 좋은 전통 기독교를 억압하고 선교활동에 적대적인 네팔의 분위기와 정부정책으로 선교사회 내에는 서로 돕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초창기 선교사들로부터 선교사들 간의 친목과 화합을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하는 좋은 전통이 세워진 것이, 갑작스럽게 닥친 대지진이라는 큰 재난 중에서도 선교사회가 힘을 합쳐 연합 구호활동을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해 나갈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나. 비상 연락망 확보 또 네팔인들의 느긋한 천성과 견고한 공동체 의식으로 인해 재난상황에서도 사회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선교사들이 구호활동에 안심하고 집중할 수 있었던 주요한 여건이 되었다. 음성통화가 불가능한 상태였음에도 3G 데이터 통신이 작동하여 카카오톡(카톡) 통신이 가능했던 것이,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호활동을 가능케 했던 절대적인 요소였다. 재난지역으로 급파된 구호물품 운반팀과 이루어진 카톡 통신으로 현지 상황파악은 물론, 구호물자 확보, 재정 확보, 자원봉사 자원 활용, 미디어 정보전달 등에 있어서 실시간 정보교류가 이루어짐에 따라, 재난대책본부 상황실은 순간순간의 필요에 빠르게
동서 길이가 20km, 남북 길이만도 10k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으로 그 중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라이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앙코르톰과 앙코로와트가 가장 유명하다. 머리가 7개인 나가(뱀신) 두 마리를 서로 껴안은 신들이 다리 양쪽으로 쪼그리고 앉았는데 왼쪽에 54명의 선한 신(善神)이고 오른편의 54명은 악신(惡神)인 아수라 상이 있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장례식을 위해 지어진 하나의 묘지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하여 37년 동안 하루에 동원된 인원만도 10만 명이 넘었고, 코끼리가 4만 마리나 동원됐다. 이 사원을 짓기 위하여 쓰인 사암은 여기서 60km 떨어진 톤레삽을 통하여 운반해 왔다. 우기와 건기라는 두 계절만 존재하는 열대지방으로 건기가 되면 거의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르고 건조하여 먼지가 많이 날린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4개월 가량 비가 내리지 않아서 신작로길인 마을 지붕과 나무들에는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우기에는 비가 6개월간 거의 매일 같이 오는데, 농민들은 농사 준비를 해서 8월에 모내기를 시작하고 9월이 되면 온 벌판이 푸르게 변한다. 대호수(大湖水)라는 의미의 톤레샵(Tole Sap) 호수는 지름이 100Km이고
안녕하세요. 행복한 선교사 비크럼, 박예진입니다. 이곳은 찬 공기가 차츰 따뜻하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엔 봄이 오는 기쁨을 한껏 만끽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공기도 점점 따뜻해지고 있겠지요. 겨울이 추울수록 봄을 기다리고 반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저희의 생활 2월 12일에 포카라로 집을 이사했습니다. 포카라는 저희가 살던 너우다라에서 22km떨어진 곳 입니다. 포카라는 해발 800m높이에 위치한 도시이고 너우다라는 해발 1,500m에 위치한 산동네입니다. 겨울에 너우다라는 많이 춥습니다. 여러겹 옷을 입어도 햇살이 거의 들지 않는 방 안은 항상 차갑고 난방도 없어, 세 달의 겨울을 지내고 나니 저희의 몸에 이전같지 않은 증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9일 동안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고, 비크럼 선교사는 기침과 코막힘과 고열과 두통을 번갈아가며 10일이상 앓았습니다. 따뜻한 포카라로 이사를 하고 이틀 후에 저는 몸이 나아 건강해졌고 비크럼 선교사도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회복중입니다. 기침이 끊이지 않아 병원을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에 염증이 생겨 약을 먹으면 나을거라 하여 약을 복용중입니다. 비크럼 선교사의 건강이 회복되어 가
지난해 여름 한국을 방문하는 3개월 동안 선교센터의 게스트룸에 거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비타의 가정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중에서도 러이사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슬로뱐스키와 마리우풀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마린카 근교에 작은 마을(꾸락호바)에서 거주했다. 그 가정을 통해 아들 지성을 동역자로 세워 이 지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쿠락호바라는 마을은 키예프에서 동남부로 약 800킬로 떨어진 곳으로 도착하는 동안 3개의 검문소(controlpoint)를 지나야 했다. 무장을 한 군인(경찰)들이 통행차량을 검문했고, 신분증 검사와 방문 이유 등을 묻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통과를 시켜 줬다.10여시간을 달리는 동안 느꼈던 것은 좌우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는 위대함과 함께 평온함을 줬다. 반면 작은 마을들을 지나며 언뜻 비춰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없이 굳어 있었고, 한겨울의 자연과 같은 차가운 느낌이었다. 목적지인 쿠락호바에 도착해 동행한 비타의 안내를 받아 피난길을 떠난 한 가정의 처소에 여정을 풀었다. 25000여 명의 인구가 모여 살았다는 이 지역에는 현재 얼마의 인구가 유입되고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화력발전소는 있지만 가스가 중단된 상태인지라 가정마다 전기
2016년 2월 22일(월)부터 28일(주일 새벽)까지 샘밭교회 15명은 베트남을 거쳐서 캄보디아 비전트립을 다녀온 뒤 1주일이 지난 어제, 저녁식사와 겸해서 시작된 캄보디아 비전트립 정리를 위한 모임은 늦은 시간까지 감동과 비전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했던 노 자매님도 어느새 친근한 지체로 웃음과 친밀한 주님 사랑을 입술로 간증하고 있다. 작은 농촌교회에서 아직 파송선교사도 없는 선교사역이지만, 담임목회자 주도로 이루어지는 선교가 아니라 성도들 주도로 조용하지만 감사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다.비전트립의 목표는 예수님의 명령인 선교에 대한 발걸음을 내디뎌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람들을 만나 동일한 생명을 가진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배우고, 참가자들에게 세계를 향한 비전을 품게 하고,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의 소중함을 일깨워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사명을 발견하며, 이금춘 선교사의 사역을 배우고,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협력의 마음을 배워 기도하기 위한 것이다.2008년 샘밭교회에 부임한 이후, 교회의 변화를 기다리기만 하는 시대는 지냈다는 판단을 하고, 교회 리더들과 농촌에 위치해 있지만 열정적으로 사역하
4. 재난대책본부의 초기 긴급구호활동지진 3일째 되던 날 안정적인 치안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 이후, 재난대책본부는 밀려오는 네팔인들의 구호 요청에 대응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장 선교사들 간에 일단 활용 가능한 재원과 인맥을 동원하여, 식량과 천막을 확보하는데 역량을 집중하였다. 또한 한국위기관리재단이 한국 내 창구 역할을 맡아 선교사회 재난대책본부와 공식관계를 맺음으로써, 재난대책본부는 매우 빠르고 체계적인 구호활동에 돌입하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각자 요청받는 대로 대책본부로부터 구호물자를 지급받아 재난현장으로 달려갔고, 그 어떤 국제기관보다도 더 신속하고 체계적인 긴급구호활동을 펼칠 수가 있었다. 선교사회가 이처럼 신속하게 재난사태에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대로 선교사들 간의 화합과 일치를 이룬 네팔 주재 한국 선교사협의회의 23년의 역사가 있다. 5. 1차 긴급구호활동 종료2주 동안 지속된 재난대책본부의 초기 긴급구호활동은 구호활동에 참여했던 대책본부 선교사들의 탈진상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각자의 사역지를 돌보지 못하는 어려움에 빠지게 되어 일단 멈추게 되었다. 이는 시의적절한 조치였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