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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자아상-1

상담과 치유-41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

2년 전 즈음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이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대형교회 목사가 해임됐다. 미국에서도 규모로 치면 다섯 손가락에 꼽히도록 큰 교회의 성장을 주도한 목회자였다.


알코올 남용과 정신적 문제들, 그리고 가정불화가 원인이 됐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소신을 대외적으로 강하게 피력하던 또 다른 목사가 동성애자 파트너에 의해 마약 복용 및 동성애의 전력이 폭로되기도 했다. 미성년자와의 성매매가 발각되어 목을 매 자살한 목회자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이든 한국이든 잊을 만하면 교계에서 목회자의 외도나 성추행, 설교 표절 등의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주위 교회들과 사역자들의 귀감이 되고 선망이 됐던 목회자들의 불명예스러운 사임은 교회와 동역자들에겐 큰 충격과 실망이 된다. 사역하던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폭풍이 된다.


외부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더욱 거센 공격과 비아냥의 빌미를 주기도 한다. 그 유혹에서 자신을 지켜내지 못했던 목회자들을 보며 돌을 던지기보다는 같은 목회자나 사모로서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그 유혹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 연약함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분명한 잘못을 단호하게 책망하면서도, 잘못된 선택까지 이끌었던 인간의 약함이 누구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가정뿐이 아니라 교회와 교계에 두고두고 부정적 여파를 남길 수 있음을 누구나 다 알지만, 그 함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태껏 이뤄온 모든 사역과 명예를 단 한 번에 잃을 만한 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져 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원인이 한두 가지로 간단히 설명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이유 중 한 가지는 목회자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부담감에서 출발한다. 목사나 사모의 자리는 분명 그 이름만으로 갖는 무게가 있다.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목사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뜨면 당장에 목사라는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고 더 비난한다. 바람을 핀 남자가 다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사의 외도는 가정뿐 아니라 사역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만큼 기대치가 높은 것이다.


목회자나 사모의 자리만으로 이미 도덕적 잣대가 높게 책정되며, 도덕성은 사역의 승패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이들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자신의 간격이 점점 벌어져간다. 여기서 오는 괴리감이 점점 더 목회자를 조여 오는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계속해서 충족시킬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 목회자로서의 자존감을 좀 먹어 간다.


그 부담감과 두려움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목회자를 외도로, 표절로, 중독으로 이끌기도 한다. 목회자 자녀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목사 딸이고 아들이니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대놓고 한 적이 없어도 아이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안다. 교회에 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같은 잘못을 해도 더 많이 혼나거나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목회자 가정은 비밀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가려야 할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자라는 타이틀이 그저 평범한 우리들에게 있어서 꽤나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벗어던지고 싶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날이 있다. 감당이 안 되는 십자가처럼 짓눌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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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