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한국 침례교 선교사의 요람, WMTC 이야기 (1)

제1부 세계선교훈련원의 설립
선교사훈련 기관의 필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장 8절)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분명하지만, 역사적으로 교회가 그 명령을 수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위대한 선교의 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에 아프리카로 파송된 유럽 선교사의 평균 수명은 2년에 불과했다고 한다. 선교사 한 사람을 양성하는데 사실상 1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선교지에서 언어를 배우고 합당한 열매를 내려면 또다시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선교사들이 수년만에 희생된다는 것은 슬픈 일인 동시에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선교사들의 생존 기간을 늘리고, 효과적인 사역을 통해 주님께 드릴 열매를 잘 맺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선교사훈련’이 시작됐다. 180년의 역사를 가진 미남침례교 선교부에서도 1950년대에 선교사훈련이 시작됐다는 것을 보면 ‘선교사훈련’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 시절 전설적인 몇몇 선교사 파송을 제외하면) 1980년대에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고, 9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파송했다. 한국 침례교회도 1980년대에 몇몇 선교사를 동남아와 중국에 파송했지만, 개별 교회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드디어 1988년 교단 산하단체로 ‘침례교 해외선교회(FMB)’가 설립되고, 1989년 이금주 선교사를 인도네시아로 파송함으로 본격적인 한국 침례교회 선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또한 이 시절은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했을 뿐 아니라, 1988년 서울올림픽과 경제발전을 통해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각 교단의 선교부와 OM, OMF, WEC 같은 국제 선교단체들이 한국 선교사들을 본격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 선교적인 흐름에 따라 선교사훈련의 필요성도 크게 대두됐다. 더욱이 1986년 GMTC와 같은 전문적 훈련단체가 생기면서 한국에 ‘선교사훈련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WMTC도 이 시기인 1994년에 탄생했다.


WMTC의 탄생
세계선교훈련원(WMTC)의 탄생은 주님께서 이를 얼마나 원하셨는지 알 수 있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1993년 이현모 교수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침신대 선교학 교수로 돌아와서 보니, 한국침례교 선교사가 이미 선교지로 파송되고 있었지만 훈련기관이 없었다. 그래서 GMTC와 같은 외부기관에 훈련을 위탁하고 있었다. 좋은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훈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현모 교수는 한국선교를 위해 선교사훈련 센터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 일을 위해서 한국침신대와 의논하기 시작했고, 한국침신대 안에 세계선교훈련원을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1994년 3월 28일, 한국침신대 본관에서 개원예배를 드림으로 세계선교훈련원(WMTC; World Missions Training Center)이 탄생했고, 초대원장으로 이현모 교수가 임명됐다. 처음 WMTC의 사역이 시작한 곳은 한국침신대 본관 2층 사무실에서였다. 3년 후인 1997년 2월에 17명이 단기선교사훈련을 받으면서 한국 침례교회의 공식 선교사훈련의 역사가 시작됐다. WMTC는 선교사훈련 이외에 Baptist Vision이라는 청년선교대회를 개최했고, 단기선교여행을 주선하고 선교강좌를 열어 한국교회에 선교를 알리는 사역도 감당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전문적인 사역인 ‘선교사훈련’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무엇보다 훈련 시설(건물)이 필요했다.


선교훈련센터 건물 건축
이런 필요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있던 중에 미국 남침례교 선교부(IMB)로부터 의외의 제안을 받았다. IMB가 가지고 있던 대전의 부동산을 처분하면서 그 재정으로 한국에 선교사훈련 센터를 설립하기 원하는데, 그 일을 맡아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현모 원장은 또다시 한국침신대와 선교센터 건축에 대해 의논했다. 그래서 한국침신대는 강당의 뒤편, 당시는 쓰레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지를 제공하고, 미남침례교회 선교부(IMB) 헌금으로 선교사를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을 건축하기로 했다. 선교사 20가정 이상이 거주하면서 훈련받기 위해서는 20채의 독립된 집과 교제할 수 있는 거실, 강의실과 사무실이 필요했다. 이런 구조의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을 시작하기로 했다. 1996년 10월 14일 기공예배를 드림으로 건축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을 건축하는데 IMB에서 헌금한 재정으로는 부족했다. 할 수 없이 이현모 원장은 한국과 미국의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모금해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했다. 미남침례교회 선교부(IMB)는 먼저 제공한 부동산 이외에 또다시 사택 한 채를 기증해 총 20억 원 정도의 재정을 부담했다. 이외에 형제침례교회가 억대의 헌금을 하는 등 많은 국내외 침례교회들이 헌금해서 한국침신대의 재정적 도움 없이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었다.

 


이렇게 건축은 시작됐지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지반이 예상보다 연약해서 각별한 기초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처음 계약했던 건축회사가 한번 부도가 나면서 건축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 가운데 지속할 수 있었다. 드디어 1998년 8월 27일에 준공예배를 드림으로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998년 8월에 시작된 제1기 장기선교사훈련부터 완공된 ‘선교훈련센터’에서 진행됐다. 물론 첫 기의 훈련생들은 페인트 냄새와 마무리 작업으로 고생이 많았지만, 주님께서 선물해주신 건물에서 영광스러운 선교사훈련을 시작한다는 큰 감격이 있었다.


물론 건물이 있다고 선교사훈련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때마침 1994년 초 미국 파사데나(Pasadena)에서 ‘제3세계 선교사훈련을 위한 커리큘럼 디자인 컨설테이션(Consultation)’이 열렸다.


초대 이현모 원장은 그곳에 참석해 선교사훈련 커리큘럼을 배우고 연구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70회가 넘는 선교사훈련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WMTC의 건물과 그 귀한 선교사훈련의 경험은 지금 전 세계에 퍼져있는 선교사들의 마음에 남아 있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 훈련은 지속될 것이다.

이병문 선교사
WMTC 부원장



총회

더보기
총회 현안에 왜곡․확대 해석은 공멸의 길
존경하는 3500여 침례교회 동역자 여러분!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불철주야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동역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114차 총회는 115차 정기총회를 준비하며 교단의 현안을 제대로 바라보고 우리의 문제와 위기를 직시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총회를 비롯해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관련 현안에 대해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로 왜곡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확대 해석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어, 총회장으로서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침신대가 ‘평가 인증 유예’에 대해 대의원들이 알아야 할까요? 지난 2025년 6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평가에서 한국침신대가 ‘인증 유예’ 결과를 받게 됐습니다. ‘인증 유예’라는 생소한 단어 때문에 한국침신대를 사랑하는 모든 침례교 목회자들은 의구심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왜곡된 정보, 제한된 정보, 진영에 입각한 해석에 근거한 정보가 인터넷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침례교단은 과거 왜곡된 정보와 제한된 정보, 진영에 입각한 해석에 근거한 정보로 교단의 자랑이었던 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