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라면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올라갔던 나무가 뽕나무였던 것쯤은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이 성지답사차 여리고에 들리면 반드시 보고자 하는 것이 삭개오가 올라갔던 뽕나무다. 지금도 여리고 도시 한복판에 커다란 나무가 하나 우뚝 서 있다. 나무 아래 가까이 가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사진도 찍어보지만 이상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누에를 키우던 뽕나무와 그 생김새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더 이상한 것은 30년 동안 어느 한 사람도 이 나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2010년 개정개역 성경에서 삭개오는 더 이상 뽕나무에 오르지 않는다. 이제 삭개오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누가복음 19:2~4)
관심 있는 성도라면 갑자기 사라진 뽕나무에 적잖게 당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반면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됐다. 우리가 성경을 사용하기 위해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그리고 언어적 차이 때문에 오류 또는 착오가 얼마든지 일어나 수 있었다. 뽕나무가 이와 같은 번역 과정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오류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된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헬라어로 ‘시코모레아’(히:쉬크마)라고 불리는 나무에 올라갔다. 사실 시코모레아 나무는 우리나라에 자라지 않기 때문에 우리말 이름도 없다. 하지만 시코모레아 나무의 열매 모양이 무화과와 유사하게 생겼고 무화과보다는 크기가 작고, 단맛이 덜해서 우리말로 ‘돌무화과나무’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2010년 이전에는 시코모레아 나무(히:쉬크마)를 우리말 성경에서 ‘뽕나무’로 번역했다.
왜 이 나무가 뽕나무로 둔갑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추측하건대 우리가 알고 있는 뽕나무가 헬라어로 ‘쉬카미노스’(누가복음 17:6)인데 삭개오가 올라간 시코모레아(히:쉬크마, 돌무화과나무)로 불리는 나무와 그 발음이 비슷해서 번역할 때 착오를 일으켰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러면 구약성경에는 뽕나무가 등장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2010년 우리말로 번역된 구약 성경에 뽕나무가 11번 등장한다. 그 가운데 7번은 돌무화나무((שִׁקְמָה, shikmah, 쉬크마)를 뽕나무로 오역했다. 대표적인 예로 아모스 7장 14절 말씀을 보면 아모스는 자기를 뽕나무를 배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팩트는 아모스가 길렀던 나무는 뽕나무가 아니라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와 동일한 돌무화과나무였다는 사실이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올라갔고 아모스 선지자가 재배했던 돌무화과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구약시대부터 이 나무는 이스라엘에서 목재로서 최고 가치를 인정받는 나무였으며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그 열매를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나무를 특이한 방법으로 재배했는데 재생력이 탁월하고 빠르게 자라는 나무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했다. 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도끼로 나무의 원 줄기를 자른다. 그러면 그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몇 개의 새로운 가지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을 목재로 키워냈다. 그리고 돌무화과나무는 6년이면, 즉 안식년이 되기 전에 목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이런 돌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건축자재로 사용됐다. 이스라엘의 집은 사방을 돌로 쌓고, 그 위에 나무 들보를 가로 놓고, 종려나무 가지나 작은 나뭇가지를 걸친 다음 진흙으로 덮어 지붕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돌무화과나무는 값비싼 백향목보다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나무였다.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났던 이스라엘에서 지붕의 들보로 사용되는 데는 돌무화과나무는 오히려 백향목보다 더 유용한 재료로 취급됐다.
<계속>
김상목 목사
성경현장연구소 소장
신광교회 협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