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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목사의 목회 이야기-63

‘동안’(童顔)보다는 ‘동심’(童心)

 

지난 주 어떤 강의를 들으면서 동안보다 동심을 유지하라는 메시지가 참 마음에 꽂혔다. “동안도 동심에서 우러나와야 진정한 동안이라는 말 또한 그러했다. 그러면서 그 강사가 회중에게 던진 동심이 살아있다는 증거 세 가지. “1. 계절의 변화에 여전히 민감하다면... 2. 다른 사람의 얘기에 잘 웃는다면. 그리고 3.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면.” 이 말에 얼마나 많은 뉘우침이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동안의 얼굴과 피부를 갖고픈 소망은 너무나 강렬하다. 그래서인지 경기는 불황이어도 성형외과와 피부과만은 늘 호황이다. 우리나라 성형시장규모는 이미 5조원을 넘었다. 거기다 돈 쓰는 건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이에는 남자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남자화장품의 시장규모도 벌써 1300억원에 달했고 매년 10%이상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이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누가 뭐랄 수 있을까? 나 역시 나이가 들어도 추해보이지 않고, 나이보다 젊게 보이면 기분 좋아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동안에 신경 쓰는 만큼, 더 중요한 동심을 깨우는 일도 얼마나 중요한가? 얼굴만 동안이면 뭐하나? 마음도 동심이어야지. 차라리 나이에 안 맞게 지나치게 젊은 티만 내는 것보다 곱게 나이 드는 게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데,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동심이 살아있는 게 훨씬 더 좋아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예컨대 길가에 버려진 유리조각에 반사된 빛을 보고도 그 영롱함에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어른, 재잘거리는 새들의 지저귐을 보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귀를 쫑긋 세워보는 어른, 애견샵을 지나며 유리벽 안에 잠든 강아지를 보면서도 금새 입꼬리가 올라가는 어른, 퐁퐁으로 그릇을 씻다가 그 거품 속에서도 무지개빛을 보는 어른, 잠자리를 잡으려다 그 빠른 움직임 때문에 여의치 않으면 곧 잡는 걸 포기하고 아예 그 박자에 맞춰 지휘를 해버리는 어른, 햇살이 좋으면 좋은대로 빗줄기가 강하면 강한대로 사랑하는 이에게 그 소식을 그대로 알리는 어른. 얼마나 멋진가?

그래서 나도 지난 목요일, 학교에 강의를 갔다가 점심 먹으러 식당에 앉았더니 내려다보이는 캠퍼스전경과 봄산이 너무도 싱그러워 마음먹고 사진을 찍어 아내와 딸들에게 보내봤다. 비록 그런 좋은 광경을 혼자 보느냐는 쿠사리는 먹었지만. 안하던 걸 하려니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귀하고 아름다운 도전이라 믿는다.

그러니 동심은 여전히 필요하다. 사실 동심은 지금도 내 안에 있다. 동심을 잃은 것이 아니라 동심을 잊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전직 어린이가 아닌가? 세상풍파에 휘둘리다 보니 그 마음을 잠시 잊고 사는 것일 뿐. 그래서일까? 가끔 맛동산을 먹고 부라보콘을 먹으면 맛도 맛이지만 금새 행복해진다. ‘맛동산을 먹으면 왠지 즐거운 파티가 떠오른다. ‘부라보콘을 먹으면 왠지 12시에 데이트 약속이라도 잡힐 것 같다.

바로 이 마음, 비록 유치찬란하긴 하지만 이 마음은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우리 목회자에게도 필요하다. 성경에도 천국은 어린아이 마음 같아야 들어간다고 했다. 어른 마음으로는 못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얼굴은 노안이어도 마음은 동심이어야 하는 이유다.

목회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근엄함만 몸에 배는 것 같다. 거기다 검정가운까지 걸치면 그 굳어짐은 더 심해진다. 이것이 목회자다운 모습일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아니다. 분명 아니다. ‘목회자다움역시 작은 변화에 민감하고, 잘 웃으며, 여전히 꿈을 꾸는데 있다. 이것이 잘 안되고 있다면, 5월이 가기 전 우리 교회학교 어린이들에게 가서라도 배워보자.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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