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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처와 농민전쟁

‘도한호 목사의 목회와 상식’- 126

루터가 출생한지 6년 후인 1489년에 독일 남부 하르츠 산맥의 산간 마을 스톨베르크에서 토마스 뮌처(Thomas Muenzer, 1489-1525)라는 한 비범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수도생활을 하는 중에 루터의 95개 조항을 읽고 감명을 받아 바로 비텐베르크로 가서 루터를 만났다. 두 사람이 얼마 간 대화를 나눈 후 루터가 뮌처에게 준 첫 번째 충고는 종교개혁을 정치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뮌처는 1509년 라이프치히에서 벌어진 루터와 요한 엑크 간의 공개토론회에 참석하고, 이듬해에는 츠비카우로 가서 츠비카우의 예언자들이라고 불린 일단의 신령주의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성경보다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를 존중하고 시한부 재림을 주장하는 공동체로서 멜란히톤과 루터에게는 광신자들이라고 비난 받은 무리였다

 

뮌처는 여기서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가서 과격 혁신파로 알려진 타보르파(Taborties)와 손을 잡고 프라하 선언문”(Prague Manifesto)을 만들어 사회운동을 폈다. 그러나 주민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이 되돌아오자 바로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봉건 제후들을 대상으로 투쟁했다. 그는 이전에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가서 순회 집회를 하는 중에 알쉬테드 교회의 목사로 초빙 받아 독일교회예식서를 편찬하고 결혼도 했다뮌처는 싹소니 주의 영주 존(John of Saxony)과 알쉬테드의 귀족들 앞에서 설교할 기회를 얻게 되자 세상 나라는 일시적이고 오직 하나님의 왕국만이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해서 귀족들의 미움을 샀다. 주 정부와 귀족들이 뮌처에게 청문회 출석을 명하자 그는 말없이 주 경계를 벗어나 농민전쟁의 현장 쉬틸링겐으로 가서 한스 뮐러(Hans Mueller)와 함께 투쟁을 이끌었다.


농민들은 주 당국에, 목회자 선임권, 세금 경감, 노예제도 철폐, 사냥과 수렵 금지구역 해제 등 12개 조항의 요구사항을 발표하면서 집단행동으로 들어갔다. 농민들의 투쟁이 살인 방화 폭동으로 돌변하자 첫 대면에서부터 뮌처를 언짢게 생각했던 루터가, “강도질하고 살인하는 농민폭도들에 반하여라는 글을 발표했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제후들이 연맹을 결성해서 농민군과 결전을 벌인 끝에 뮌처를 체포해서 교수형을 집행하고 말았다. 이로써 독일 농민전쟁(German Peasant’s War, 1524~25)은 끝났으나 이 전쟁으로 인해 10만 명의 농민이 희생됐고, 또한 이 전쟁은 그로부터 10년 후에 일어날 뮌스터 폭동”(Muenster Revolt, 1534~35)의 전조(前兆)가 되기도 했다.


농민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지배계급의 무한 착취와 정의 편에 섰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타당하지 못하면 불의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주관주의에 입각한 독선적 신앙과 종말론을 이용한 허황된 선동의 폐해도 보았다. 뮌처가 루터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그의 의분이 너무 컸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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