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지상교회를 수정주의 입장에서 ‘사회주의적 기독교’로 평가하는 학자들은 북한지상교회 모델로 중국의 삼자교회(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꼽는다. 그 주요근거로 조그련(조선그리스도연맹)이 1980년에 중국에 대표단을 파견해 중국교회를 관찰하고 자문을 구했다는데서 찾는다. 또한, 중국 정부가 1981년 삼자교회들에게 필요한 성경을 발간한 것을 모방해 북한당국도 1983년, 1984년에 지상교회들을 위해 신약전서와 구약전서를 펴낸 것에서도 찾는다. 그 외에도 교회운영 및 관리 등 많은 부분을 답습했다고 평가하며 현재의 북한지상교회는 중국의 삼자교회화로, 순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삼자교회에 대해 입장정리가 우선 필요하다. 삼자교회는 자치, 자양, 자전을 표방하는 교회로 지하교회와 달리 중국정부가 승인한 공식교회다. 2016년 당시까지 그 수가 3800만 명에 다다르고 그 중 청년비율이 27%나 된다고 WCC 실행위원인 어느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대체로 2000만 명 선으로 보고 있다. 얼마 전 어느 국제선교단체에서 초빙한 중국인권운동가 출신 밥푸(Bob Fu)목사의 강연을 들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2013년 시진핑 정부 들어
한국 소식을 들으면 북한과 미국 간의 긴장과 더불어 북한과 대한민국의 긴장관계로 인해 매우 불안해 보이는 정국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조국을 위해 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과 조국교회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도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분 좋은 소식이 자주 들려오기를 기대합니다. 성경적 가치를 보이는 교회공동체로 독일은 아쉽게도 지난 6월말 있었던 독일 연방 의회에서 동성결혼 합법화가 통과됐습니다. 현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독교민주연합(CDU)의 당수로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서 계속 유보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의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어 독일에서도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게 됐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동성 간의 사회적 결합이라는 형태로 동성 간의 동거 형태의 연합을 인정해왔기는 했지만 법제화가 됨으로써 그동안 그나마 비교적 기독교적 가치관을 근간으로 삼았던 독일의 사회가 이젠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해에 이러한 결정이 내려진 것도 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이 시대에 성경적 가치관을
어느 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책을 내면서 북한 지상교회를 ‘사회주의적 기독교’로 평가했다. 책의 저자도 기술했듯이 이러한 평가는 북한 교인들의 자발적인 모색을 전제로 한다. 즉, 북한지역 기독교인들이 해방 후 사회주의를 처음 만나 수용, 갈등, 대결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다가 6.25전쟁 후 분단이 고착되면서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생존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그 노력의 결과로 북한 사회에 적응하는 사회주의적 교회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이 주요논지다. ‘사회주의적 기독교’는 사회주의체제 내에서 생존을 모색하면서 기독교 성격 및 형태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변화를 책의 저자는 자발적이라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이러한 시각(관점)을 ‘수정주의’(북한 중심적)라고 칭한다. 하지만, 면밀히 검토하면 자발적이기 보다 피동적인 것에 가깝다. 1970년대 북한정권이 대남통일전선전술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기독교를 활용하고자 했다. 1960년대 중반, 북한의 종교들을 완전히 제거했던 북한정권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중대 전환점을 맞아 북한 종교들의 활동을 재개 시켰다. 이때 「조선그리스도연맹」(조그련)의 역할은 남한 내 반정부 기독교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찌는 더위에 건강하십니까? 이곳 여름도 올해는 유난히 더워서 더위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성도들도 유난히 많습니다. 이제 입추가 지났고 더위도 서서히 꼬리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 밖에는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계절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름 보내기가 좀 어려웠지만 여러분의 중보의 힘으로 하늘의 평안과 응답으로 살았습니다. 다시 붉은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정리합니다. CIS 컨퍼런스 6월에는 상트 빼쩨르브크에서 열린 CIS 선교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2년마다 CIS 지역 사역자들의 컨퍼런스가 있었는데 제19회에 처음 참석했습니다. 각 지역 사역자들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내가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선교를 했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또한 선교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고 정보를 교환해 시대 변화에 따라 전략형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미래 선교 10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결론은 부르심을 향해 끝까지 충성하되 이제 사역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한해를 소중히 여겨 지혜를 구하고 세월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MP세미나 케냐의 토착교회는 아직 성경적 교리와 목회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직접적 원인은 정상적 신학교육과 목회훈련과정을 거치지 않은 목회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정상적이거나 신비적 방법으로 세속적 가치와 성공을 추구하는 목회를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 여러 가지 문제와 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도울까 고심하던 차에, ‘지역교회 사역준칙’(MP: Ministry Principle)을 만들었습니다. 교회사역의 최소한의 규범을 정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의 권위, 복음의 기초내용, 교회의 기본, 목회자의 삶, 교회의 직분, 교회의 재정원칙, 세속화, 거짓교리 등등입니다. 목회자와 교회사역이 잘못되지 않도록 실제적인 경계선을 정하는 목적입니다. 지난 4~6월, 타나강 지역과 말린디 등 두 곳에서 연인원 약 300여명의 목회자 및 교회지도자를 대상으로 MP 세미나를 실시하였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목회자들의 반응이 진지했습니다. 이 지역 목회자들은 소위 ‘선견자’(Foreseer)로 불리는 신비하고 비정상적인 성령의 사역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러한 풍조를 고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북한에 지하교인이 존재하는가? 북한학자로서가 아니라, 과거 북한 선교사로 대답한다면 “yes” 이다.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중국 땅에서 재중탈북민 사역을 할 때 조선족 사역자들로부터 수없이 들었고, 직접 보기도 했으며 필자의 선교단체를 통해 신앙을 가진 후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사실, 필자와 함께 사역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임애란 선교사는 함경도, 자강도, 양강도 일대에 약 80여명의 북한제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평양과도 선이 닿아 있었다. 그 당시 필자는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던 상태였고 북한학이라는 학문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안타깝게도 임선교사가 너무나 갑자기 소천해서 그의 사역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그의 사역자체가 초대교회를 방불케 할 만큼 성령의 역사가 강했던지라 마땅한 후임자가 없었다. 그렇게 그의 사역은 묻혀버리고 북한 지하성도들과의 네트워크도 끊어져버렸다. 그들 일꾼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문득 생각날 때 마다 참으로 주님께 송구하고 그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한때, 필자는 동북지방 조중변경지역에서 한창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사역을 했다. 어느 날 시내에 볼일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동안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저희는 주님의 은혜 아래 평안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신선한 바람도 불어 주는 고마운 계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운 한국은 봄이 지나가고 여름의 끝을 달리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많은 동역자들의 기도와 사랑 가운데 창립예배를 드리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모릅니다. 늘 고백할 수밖에 없는 한 마디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특별히 담임 목사님과 단기선교 장년팀과 이글스팀과 함께 창립예배를 드릴 수 있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동역자 한 분 한 분의 사랑과 정성으로 교회의 필요한 부분들이 채워지는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는 2년 9개월이라는 시간을 덮었습니다. 처음 부픈 꿈을 안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지 3일만에 그리고 3개월만에 저희 가정에게 갑자기 닥친 하람이의 손가락 사고,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저희 하람이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민 선교사와 저는 라면 부스러기 던져 놓은 것 같은 캄보디아글씨와 씨름하며 1년 안에 프놈펜대학교에서 4단계 과정을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많이 포기하고도 싶고 체력이 약해져 하늘이 빙그르 도는 경험도 간혹했지만,
모 일간지 군사전문기자가 한반도 전쟁시나리오에 관련된 글을 지난주에 썼다. 그는 북한의 공격 시, 대한민국의 방어 및 공격 군사장비 체계를 자세히 기술하면서 인명피해가 다른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숫자보다 훨씬 낮을 거라고 제시했다. 무조건적인 전쟁공포증, 기피증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자는 전쟁공포증이 북한 김정은이 ICBM을 발사하고 이후, 6차 핵실험을 해대도 방조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떤 전문가는 적은 인명피해는 괜찮은 거냐고, 생명을 경시한다고 비판했고 다른 이들은 전쟁 강박증, 전쟁 호전광이라고 거친 언사들을 쏟아냈다. 국내 진보좌파 진영은 해마다 5·18 광주항쟁 및 6월 민주항쟁 등을 기념한다. 민주, 자유, 인권을 외치다 희생당한 이들을 온 국민에게 기억시킨다. 독재정권, 군사정권에 피로 맞서 이루어낸 소중한 자유임을 선포하며 승리를 자축한다. 이토록 국내에서는 자유와 인권을 외치는 자칭 민주투사들이 이상하리만치 저 북녘 땅에서 자행되는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저 북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 생지옥 같은 장소에
안녕하세요, 선교동역자님! 저희는 불가리아에 와서 만 3년이 되어가는 시점인 지난 5월 초에 집시촌에 가정교회를 개척하게 됐습니다. 먼저, 이곳의 사역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곳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는 다른 민족들은 전혀 살지 않고 5-6만명의 집시들만 살면서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은 술, 담배, 마약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들어가기에 꺼려하고, 이곳의 선임 선교사님들도 저희에게 부정적으로 말하던 지역입니다. 사실, 5년 전의 통계에 따르면 5만 명의 주민 중에 마약환자가 만 명이나 된다고 듣고 있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이곳에 먼저 와서 섬기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여러 번 들었지만, 주님은 저희에게 그곳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게 하시면서 마침내 그곳에 저희의 사역을 열어주셨습니다. 선임선교사님들 중에 집시교회들을 위해서 많은 예배당을 지어주면서 간접적인 선교사역을 펼친 분은 있지만, 직접 그곳에서 전도하면서 사역을 펼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여태까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 남다른 은혜를 주셔서 집시촌에
지난주 어떤 목사님께 문의드릴 있어 문자로 대화하게 됐는데, 필자가 북한학자라고 하니까 대뜸 북한에 억류되어있는 김정욱 선교사가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전도했던 친구라고 마음 아파하셨다. 김정욱 선교사는 북한에 억류 된지 벌써 4년째이다. 2013년 10월 북한에 억류된 그는 ‘국가전복음모죄’, ‘간첩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불법국경출입죄’, ‘파괴암해죄’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 혐의 중 ‘불법국경출입죄’ 항목에 대해서 이윤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정보기관 관계자를 통해 김 선교사가 직접 북한에 밀입국해 체포된 것이 아니라 중국의 단둥의 모처에서 체포됐다고 한다. 중국은 북한에게 암묵적으로 국경지역의 혐의자를 체포하고 이송하는 문제에 눈을 감아주는 분위기란다. 2009년 3월 한국계 미국인 기자 유나 리와 중국계 기자 로라 링의 체포 장소도 중국 땅이었다. 이들은 취재 도중 국경을 넘게 됐고 곧바로 인지하고 돌아왔지만 북한 국경경비대는 중국 땅에 진입해 그들을 체포해 갔다. 이 두 여기자는 6개월 억류되었고 형법 제69조 ‘조선민족적대죄’ 및 형법 제233조 ‘비법국경출입죄’로 12년 노동교화형을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