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한들,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인류 보편적 가치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역겨운 짓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동성애란 말인가? 짐승들도 안하는 짓을 하물며, 인간이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은 소수일지 모르나 점차 그 양상이 확산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동성애의 확산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한 개인의 성적 취향을 넘어, 그것이 보편적 사회현상으로 대두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자연스런 조화에 역행하는 동성애는 분명 억제돼야 한다. 최근 군대 내에서 동성애를 허락한다는 법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사회가 시끄럽다.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이태희는 지난 28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대내 동성애 옹호 조장하는 군형법 92조 개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책위는 군대 내에 비윤리적인 동성애를 조장 옹호하며, 대한민국 군대를 무너뜨리려는 새 정치민주연합, 정의당, 통진당 등 국회의원들의 정신 나간 행위를 강력 규탄하며, 군대내 동성애를 허용하는 군형법 개정을 결사반대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창당한 새 정치민주연합이 진정 새정치를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쳐야 한다.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한 일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고 베드로 사도는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위로하고 용기와 힘을 주는 말을 하기보다 사기를 저하시키는 비난만 쏟아 붓는 부정적인 말을 일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모든 일에 올바른 사리판단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사물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는 것이다. 인간의 판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실 판단이고, 둘째는 가치 판단이다. ‘이 사람은 누구다’는 사실판단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다’는 가치판단이다. 사실판단은 쉽지만, 가치판단은 어렵다. 왜 가치판단이 어려운가? 판단자의 주관과 감정과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기준과 감정을 앞세워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어떤 사람은 성격상 확실한 사람이라서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성격만 중요하고 남의 감정은 아무것도 아닌가? 바른 말이 꼭 좋은 말은 아니
얼마 전 A교회 장로 몇 사람의 실명으로 된 유인물이 배달됐다. 전체적인 내용은 담임 목사가 여 성도를 성폭행 및 간통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몇일 후 장로 중 한 사람이 전화하여 보내준 유인물 내용대로 신문에 실어줄 것을 요청해 왔다. 기사화를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를 떠나서 이와 같은 사건들이 기독교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데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왜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가?첫째로,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지는 목회자일수록 성적인 유혹에 더 취약하다는 점이다. 둘째, 어리석은 모습으로서 “만약 나에게 정말로 관심을 가져준다면 나를 붙들어줘요”라고 요청하는 교인의 접근에 서로 신체적인 접촉을 하다가 좀 더 친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성적인 관계에 접어든 목회자들이다. 셋째, 잘못된 신학적 지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목회자인데, 우리는 서로 성관계를 가진 후에 둘 다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도 또 그런 삶이 반복될 수 있다. 넷째,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핑계로 삼는 목회자인데, ‘나의 결혼생활은 불행하다. 나의 아내는 성생활에 잘 응해주질 않는다’라고 합
몇 년 전에 2009년, EBS 다큐프라임에서 ‘동과 서’ 즉 ‘동양사람, 서양사람’이라는 제목의 다큐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 사람의 사고 구조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다큐였다. 진행자가 동양과 서양의 사고의 차이를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한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 있었다. 네모난 나무토막과 동그란 나무토막, 그리고 동그란 나무토막과 같은 모양의 파란 색의 플라스틱이 있었다. 그리고 동그란 나무토막을 ‘닥스’라고 이름 할 때에 네모난 나무토막과 동그란 플라스틱 중 어느 것이 ‘닥스’인가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어느 것이 같은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일본, 중국, 한국인들과 같은 대부분의 동양인들은 동그란 나무토막과 네모난 나무토막이 ‘닥스’라고 말했다. 그 둘의 재질이 나무이기에 모양은 달라도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프랑스인들과 같은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둥그런 나무토막과 둥그런 플라스틱이 ‘닥스’라고 말했다. 이 둘이 재질은 달라도 모양이 같기 때문에 재질은 달라도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동양인이나 서양인이 다 같은 사람이기에 아주 세부적인 사고에 들어가서
최근 기윤실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발표했는데 대한민국 국민의 18.4%만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고해 답해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이 18.3%인 것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기독교인의 수치를 겨우 넘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신임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조사에서 두렵게 느껴진 것은 이 질문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이 48.3%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설문조사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면 사람들은 “보통”이나 “잘 모르겠다”로 대답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기독교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정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반기독교 정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지 않고, 호감도 얻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기독교인들이 인정해야 한다. 안티기독교는 한국기독교에게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독교가 배타성과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 △지나친 전도행위가 불쾌하고 폭력적이다. △기독교는 반사회적이다. △교회지도자들은 비합리적이다. △
정부가 발표 예정인 세제 개편안과 관련, 종교인 과세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이번 개편안에 바로 종교인 과세문제가 최종 정리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종교인 과세를 놓고 찬반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과세를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종교인 과세는 종교인이 근로자가 아닌 성직자라는 점과 세금을 공제한 돈으로 헌금한 이중과세이기 때문에 소득세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반면 찬성하는 이들은 “종교인들도 종교인이기 이전에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내야 하는데 종교인도 예외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최근 TV 심야토론에서 방영된 “종교인 과세,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에서는 반대 측과 찬성 측이 각각 참석했다. 주제 내용은 참신했지만 불교와 타종교를 제외하고 기독교로 한정했던 점이 아쉬웠을 뿐만 아니라 종교 편향적 관점에서 토론이 진행됐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이왕 주제가 종교인 과세라면 종교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종교인들도 토론자 혹은 패널로 참석해 이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애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토론의 핵심이 된 종교인 과세반대 토론자의 입장을 보면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니 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벌써 95년이 됐다. 이제 3.1절 세대는 거의 사망하고 3.1절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 줄 선조들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세대는 행복한 세대들이지만 90~100세가 된 세대들은 참 기구한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이다.우선 그들은 일제의 압제에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그냥 압제가 아니고 주권도 말도 나라도 이름도 뺏기고 살았으니 그 고뇌가 얼마나 컸겠는가? 식민지 역사에서도 그런 압제의 사례가 없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고민이 많은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살아오다 해방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가 싶었는데 다시 6.25 전쟁을 겪었다. 역시 6.25 전쟁도 비참한 삶이었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손해를 보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찾아온 것은 극심한 가난이었다. 그때 이후 얼마나 배고픈 기간을 보내야 했었는지 모른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평화도 안정도 주어지고 먹고 살만큼 되니까 다 세상을 떠났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참 행복한 세대다. 너무 행복해서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살아간다. 오늘 젊은 세대들은 이 나라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술이 뇌 조직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이며 지속적인 음주는 뇌조직의 광범위한 파괴현상으로 방향감각의 상실, 기억장애 등 치매증상이 나타나 개인에게 커다란 인격 결함을 야기한다. 알코올은 간을 거쳐 대사되기 때문에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 또한 다른 영양소의 대사기능을 방해해 산화되지 않는 지방이 간에 축적되면 간 기능 부전의 원인이 되며 이러한 증상이 전진되면 간경화, 간암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 위와 장기 등은 물기가 촉촉한 점막에 의해 강한 소화 효소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알코올이 이러한 점막을 깎아내려 염증과 궤양을 만든다. 췌장은 음식물의 소화 효소제를 만드는 곳으로 술은 췌장효소의 분기기능을 쓸데없이 자극해 췌장내의 단백질들이 소화되며 세포의 파괴가 뒤따른다. 이로 인해 인간의 고통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췌장암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술은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을 병들게 하고 건강을 해치게 하는데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는 우리나라 음주문화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만큼 술에 대해 관대한 나라도 드물다. 기뻐도 한잔, 슬퍼도 한잔이다. 지나친 음주로 인해 걸핏하면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2월 중순이면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졸업시즌이다. 졸업은 한자로 졸(卒) 업(業)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학생이 소정의 학업과정을 마치다”란 뜻으로 배우는 일을 마친다는 것이다. 그동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과정을 마치기까지 수고한 졸업생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성실하게 배우고 익힌 것들이 앞으로 새로운 삶의 큰 유익과 미지의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배움이라는 것은 특정의 시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계속돼야 한다. 그래서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다. 한 과정을 마치면 다른 과정의 배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은 하고 싶은 일, 계획한 일, 목표한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집중해야 한다. 공부에 집중하든, 운동에 집중하든, 연구에 집중하든, 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 다 집중한 사람들이다. 놀면서, 쉬면서, 실컷 자고, 게임하고 이런 상태로는 결코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작은 것이라도 이루려면 결단하고 노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고응척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오기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중국 블루칼라 범죄자들은 중국을 전복시킬 잠재적 반정부 군단 제4부대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들이다. 중국 공안에 따르면 2007년 형사사건은 465만 3천 건이라고 발표했다. 그 중 강력 범죄는 55만 9천 건이었다. 공안부는 “중국 내에는 분쟁과 불화를 일으키는 요소가 부지기수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압박 속에서 고작 180만 명의 공안이 13억 인구가 사는 나라의 안전을 유지하는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일어난 형사 사건의 수와 상관없이 범죄자의 수가 많을수록 국가 경제와 사회 안정을 뒤흔들 위험요소가 커진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위험요소에 더해 범죄 사회로 편입해 들어가는 새로운 젊은이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중국 공안은 2006년 97만 9천 명의 청소년 범죄 용의자를 체포했다. 2006년 기소된 범죄자 열 명 중 한 명이 미성년자이고, 조직 폭력 범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법기관과 사회복지 기관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와중에 무수한 젊은이들이 사회 안전망을 빠져나가 중국을 전복시키려는 반정부 군단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중국 정부는 흡연이나 인터넷 중독을 청소년 범죄 원인으로 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