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된 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주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게 하신것과 기도라는 보석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수없이 응답해 주셨는데 물론 믿은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그냥 생각만 해도 응답해 주신 것도 많았다.바로 지난 회고록에서 이야기했던 세 가지 소원들 같은 것이었다. 첫 번째 소원이었던 영어로 된 음반을 받은 후 빌리 그래함을 만나고 싶다고 한 두 번째 소원은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침례 병원 특진실에서 근무하던 1973년에 이루어졌다.빌리 그래함 한국 전도대회는 1973년 5월 30일에서 6월 3일까지 여의도 광장에서 있었는데 그 대회전에 대 도시 전도 집회가 빌리 그래함 전도팀 목사님들에 의해 개최됐다. 내가 살던 부산에서도 개최됐는데 낮에는 미국 각지에서 온 개인 전도팀들이 개인 전도를 하고 저녁에는 부산 공설 운동장에서 집회를 하였다. 우리는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가 시작되기 전 전도 상담요원 훈련과정을 수료하고 수료증도 받았다.마침 특진실 테이버 선교사 의사께서 안식년 중이라 나는 휴가를 받아 개인 전도팀의 통역으로 낮에는 그 들과 함께 개인 전도를 하러 다녔다. 내가 통역했던 개인 전도자는 캔터키 주에
강소형교회는 성인 80~150명 정도의 성도들이 안정적으로 출석하며,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는 ‘작지만 강한 교회’를 말한다. 교회성장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면서, ‘강소형 교회’가 미래 목회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목회 전반에 대한 교회 리빌딩(rebuilding) 작업을 통해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는 강소형교회 세우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30년 전, 지하 43평을 얻어 언제 이 지하실을 탈피하나, 언제 밝은 창문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릴까, 언제 이 곰팡이 냄새나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처갓집 충주를 갈 때마다 시외버스가 산허리를 돌때마다 나타나는 정겨운 시골교회가 그리움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건물에서 목회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울컥 울컥 감사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교회가 이런 외형적 규모만 갖추었다고 건강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대한 몸집을 건강한 사람이라 할 수 없듯이, 대형화된 교회가 건강한 교회의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건강한 교회란 “신앙과 삶이 유리되지 않는 복음의 확신,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공동체성, 체계적이고 실제적인 양육, 평신도들의 은사 활용 사역, 세상
어떤 소 이야기 :어떤 소가 이 세상 살다가 하늘나라에 갔다. 천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고 물으니 牛公曰 “맨탕 풀만 먹고 합숙(合宿)만 하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노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놈의 농기계란 놈들이 등장해서 우리들의 일거리를 다 빼앗아간 거죠 뒤죽뒤죽 살만 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추럭이 오더니 우리를 싣고 서울 구경시켜 준다기에 앗따, 그거 참 좋구나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네요”〈理性的牛公(이성적우공)〉 어떤 누렁개 이야기 :수개와 암개가 한참 사랑 交尾놀이를 하던 중암개 曰 “여보, 숫개양반 지금 우리가 뭣하고 있는지요”수개 曰 “사랑놀이하고 있지 않소”암개 曰 “사랑놀이 그칩시다, 사랑은 달지만 그 열매는 쓰답니다. 우리새끼 낳아 보았자사람들의 몸보신 재료 밖에 무엇 한답니까.“수개 曰 “그렇군요”그들은 사랑놀이를 그쳤다.理性的犬公(이성적견공)〉 어떤 암탉 이야기 :김씨네 암탉이 동 우리에 알 한 개를 빠져 놓고 온 동네 떠나갈 새라 “꼬꼬댁 꼬꼬, 내가 알 한 개를 낳았답니다”하는지라 옆집 박씨네 암탉이 말했다. “이 암탉 여편네야, 제발 방정스럽게 떠들지 마소. 사람들이 곧바로 그 알을 끄내어 깨어먹지 않게소.”
1. 順天(순천)의 思想(사상)과 하나님의 뜻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히10:7)제갈공명 군사(軍師)는 조조의 적군을 섬멸하기 위한 화공전략을 세우고 적군을 유인하여 험한 협곡에서 맞았다. 갑자기 앞에는 장비를 비롯한 용맹한 군사들이 나타나자 후퇴를 하는데 협곡 좌우에 잠복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퇴로를 완전히 막았다. 이때 산위에 진을 치고 지휘하던 공명은 나무단에 불을 붙여 굴리니 진퇴유곡에서 꼼짝 못하고 죽게 된 조조 휘하의 대장군 사마이는 하늘이 그를 버렸다고 탄식한다. 계곡 위에서 미소를 짓고 대승을 기뻐하는 공명위에 난데없이 하늘에서 먹구름이 나타나 폭우가 쏟아져 불을 꺼주므로 화공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제걀량 군사의 휘하 장수들은 화공은 실패해도 독안에 든 쥐 잡듯이 공격하자고 명령을 독촉했으나 제갈 군사는 그의 병사들이 퇴로를 열어 사마이가 도망쳐가도록 했다. “하늘이 도와 살린 사마이를 내가 어찌 죽이겠는가? 그를 죽이는 것은 역천(逆天)이므로 살려 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하늘이 사마이의 편이니 하늘이 도운 사마이가 종국적 승자가 될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남과 북은 분단된 상태로 계속 유지되어 왔기에 역사적 고리가 단절됐고, 이질성이 지속되어 왔다.하지만, 분단 반세기 동안 철저히 닫혀 있던 북한의 문은 탈냉전 이후 서서히 열리기 시작해고, 1995년 대홍수를 계기로 유엔과 국제사회에 개방됐다. 특히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장관급 회담과 경제협력, 이산가족상봉 등이 활발하게 이뤄짐으로써 남북 간의 화해와 교류협력의 역사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으며,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정부와 민간단체의 대북지원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북한의 피폐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세계에 드러났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북한의 복음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교회의 통일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지금까지 통일논의는 정부가 주로 주도하고 한국교회는 통일운동의 한 주체로서 남북한 민간교류 차원에서 참여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교회가 남북통일을 선교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사명이라고 인식해야 할 시점으로 인식된다.소비에트 연방으로 구성된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 시대는 막을 내렸고, 통일 독일은 동독의 사회주의를 종식시켰다. 아울러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 볼때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만남의 축복들을 허락하셨는데 앞으로 지면이 허락하는데로 내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분들도 소개하고 싶다. 이 분들을 생각하며 나 또한 누군가의 삶에 힘이 되어 주고 도움이 되어지는 삶을 사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기도하면서 살아 왔다. 루이스 존스 의사 부부내가 간호학교 졸업반이 되자 부산 침례병원 간호 부장이었던 테이버의사 부인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 왔다. 나의 3년간 학비를 장학금으로 보내준 분들의 이야기었다. 그 분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드리면 기뻐할 것이라며 이름과 주소를 보내왔다.이 부부는 2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었고 남편은 미국 남 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병원 개업의 이며 에드워드 로드 침례교회의 안수집사로 섬기고 부인은 교회의 적극적인 여선교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분들이 부산 침례병원에 장학금 후원자가 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부인(돌로레스 존스)의 전 남편은 부인이 임신 중에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였다. 부인이 혼자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었는데 그 당시 부인의 시아버지와 존스 의사의 아버지가 중매를 하여 부인은 아들을 데리고 존스 의사와 재혼을 하였다.부산침례병원 간호부
10여년 전 집사님 한분이 동남아 여행을 다녀 오시면서 작은 지갑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평소 볼 수 없었던 붉은 빛을 띤 이상한 표피의 지갑이였다. 책상 설합에 넣어 둔채 몇 년이 지난 뒤 태국을 여행하면서 이 지갑이 가오리 가죽으로 만든 고급 지갑인 것을 알게 되었다. 웬만한 칼로도 잘리지 않는다는 튼튼한 가오리 가죽.그동안 천대했던 지갑에 미안하고, 집사님에게도 죄송한 마음을 갖고 그때부터 애용한 지갑이 지금은 내면이 너덜너덜하여 내용물이 빠져 나오려 한다. 매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하면서 벌써 15년 가까이 내 신사복 안주머니에서 나의 주민등록증, 신용카드, 현금등을 소중하게 감싸고 있다. 금년들어 난 이 지갑과 이별하려고 한다. 지갑을 선물할 때는 속에 돈도 넣어 주어야 한다며 받았던 새로운 지갑을 펼쳐놓고 하나 하나 소지품을 옮기는데 마치 오래 살았던 집을 떠나 이사 가는 기분이다. 현대인들은 전자지갑으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스마트 폰 속에 들어 있는 이것 하나면 시내버스, KTX, 은행업무등 웬만한 일상의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있다. 너무 빠르게 모든 것이 변하니 전혀 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편리하고 쉽고 빠른데 인간미가 사라져 가는
첫번째 소명나는 소녀회 캠프에서 내 삶의 진로에 큰 영향력을 끼친 한 여전도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그 당시 부산 침례병원 원목과 전도사로 섬기며 전여회의 청소년 부장으로 섬겼던 남현자 사모님입니다. 그 분이 캠프 마지막날 헤어지면서 나에게 간호사가 되어 침례병원에 와서 섬기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애냐하면 나의 장래 희망은 미술가나 외교관이었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을 영접한 후 나의 삶은 확실하게 변했습니다. 캠프에서 배운데로 날마다 말씀읽고 기도하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연희침례교회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학교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후 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신 허윤기 목사님께 침례를 받았습니다. 침례받고 싶어서 죽겠다고 대답해서 문답도 없이 광나루 강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진로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기도만 하면 남현자 전도사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생각이 들어 기도가운데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남전도사님과 이재순목사님(당시의 침례병원 원목실장)의 인도를 따라 3년제였던 전주 예수간호학교(현 예수 대학교
필자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지난 2013년 11월 11일 17년간의 전국여성선교연합회(이하 전여회) 총무 사역을 마감하였는데 뜻밖에 침례신문으로부터 회고록 집필을 요청받았다. 사역의 회고에 앞서 먼저 필자가 어떻게 전여회를 만나고 총무로 부름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같아 구원 그리고 전여회와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먼저 회고록을 시작하고자 한다. 앞으로 침례신문에 게재되는 글들을 통해 하나님이 존귀히 여김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분의 일하심만을 증거하게 되기를 소망한다.출생필자는 1951년 6,25전쟁당시 피난지였던 대구에서 2남2녀중 셋째로 출생했습니다. 내 위로는 언니와 오빠가 한명씩 있었는데 전쟁통이라 내 어머니는 유산을 생각하고 두 세 번 병원에 갔었지만 혹시 아들일까봐 나를 낳았다고 하니 내가 세상에 나온 것은 이미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믿어집니다.저희 어머니는 서운하셨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후 사업도 풀리고 하여 저를 복동이라고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저의 아버지의 사랑은 후에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믿고 받아 들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가지셨을때 보석상에서 보석을 한웅큼 버
예수께서 오신 것은?예수께서 지금 다신오신다면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오늘의 성도들과 교회를 보실 때 칭찬하실까? 통탄하실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첫 번 말씀이 회개와 천국도래의 선포였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인류 구속의 지극한 사랑을 실천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구주성탄절 크리스마스의 근본 뜻이다. 이에 그 사랑을 나타내온 두 남매 집사를 소개합니다. 목수가 된 지미 카터2005년 7월 제20차 침례교 세계연맹(BWA) 세계대회겸 상임위원회가 영국의 버밍햄(B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