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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66)

다윗의 찬양론(1)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사무엘하6:21~22).

 

법궤가 다윗성에 무사히 이송됨으로 인하여 기쁨의 찬양으로 충만했던 다윗이었다. 하지만 찬양의 열정으로 뜨거웠던 그를 향해 부정적인 말과 어투로 힐난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아내 미갈은 영적으로는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은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다윗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었던 하나님의 영은 다윗으로 하여금 미갈을 향해 강력한 교훈의 입을 열게 하셨다. 다윗이 미갈을 향하여 선포했던 이 말씀은 촌철살인의 예언적 설교로 손색이 없다. 이 말씀은 미갈 뿐만 아니라 찬양에 무지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교훈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첫 번째로, 진정한 찬양과 경배는 영적인 시야가 열린 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눈은 믿을 게 못된다. 프리즘이라는 장치가 없으면 빛 속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의 색깔들을 보지 못한다. 현미경이 없으면 공중을 떠다니는 물방울도,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수많은 벌레와 세균들도 보지 못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랑이나 분노나 질투도 보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눈을 지나치게 확신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면 일단 부정하고 본다. 착시현상으로 잘못 본 것도 자신이 옳다고 우길 때가 있다.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아람군대는 볼 수 있었던 게하시지만 적들보다 훨씬 강한 하나님의 군대는 보지 못했다.

 

회심 전의 사도바울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살아계신 주님을 보지 못하고 참 신앙인들을 죽이러 다녔던 적이 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 다른 제자들은 그의 고백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진리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미갈도 다윗이 자기 흥에 겨워서 객기를 부리는 것으로 판단했다. 수많은 백성들과 신하들과 종들과 왕궁과 다윗이 쓰고 있는 왕관과 값비싼 왕의 옷과 왕의 체면은 보았지만 이것들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보지 못했다.

 

비참한 죽음을 당했던 자신의 부친은 볼 수 있었지만 그가 왜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는지 그 이유는 보지 못했다. 양이나 치던 무식한 촌놈으로서의 다윗은 볼 수 있었지만 그 촌놈이 어떻게 해서 일국의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는지 그 섭리는 보지 못했다. 다윗의 찬양을 지켜보고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찬양의 주인공이 주님이심을 깨닫지도 못했다.

 

진정한 찬양,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찬양은 영적인 시야가 열린 자들의 찬양이다. 외적인 형식과 세상적 체면에 지나치게 매여서 남의 눈치나 보는 자들의 소극적인 찬양은 자기만족의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영적인 시야가 열린 자들은 뭇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자신의 찬양에 흡족해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다. 성령의 임재의 체험으로 영안이 밝아지면 육신의 눈은 오히려 어두워진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보는 시력은 점차 약해지고 하늘의 가치에 대한 시력은 증가한다. 돌에 맞아죽는 엄청난 고통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맞아주시는 주님의 모습에 압도되었던 스데반집사의 황홀경의 기적은 그에게 영적인 시야가 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윗도 영의 눈이 발달한 사람이라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분께서 자신의 찬양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심도 인식했다.

 

 자신이 비록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으신 왕이 따로 계심을 확신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내가 여호와 앞에 뛰어 놀리라하는 고백으로 당당하게 찬양을 선포했던 다윗의 행동은 스스로 영적인 시야가 확 트여진 인물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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