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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래서 그러는가보구나!’

고성우 목사
반조원교회

“여보 저거 임신한 것 같지 않아요?” 예배당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아내가 놀란 듯 외친 말이다. 그 고양이는 동네 혼자 살고 있는 어느 할머니가 기르는 고양이인데 먹이가 부족한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시골인 이곳은 음식 찌꺼기를 두엄 칸에 버리거나 한 쪽에 구덩이를 파고 버리는데 교회 정원 한편에 있는 구덩이에도 자주 찾아오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눈에 부른 배가 보인 것이다. 마침 집에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연어 통조림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것을 주자는 말에 캔을 따서 주었더니 허겁지겁 먹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집에는 안 가고 마당 한 구석으로 가 퍼질러 누워버렸고 결국 연어 통조림을 먹는 며칠 동안 집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딸아이가 고양이 준다며 사료를 사왔고 고양이는 그것을 얻어먹으며 제 집인 양 현관 앞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했고, 그 소문을 들은 주인 할머니는 목사님 댁에서 잘 얻어먹고 살라 하며 찾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택 뒤꼍에 있는 심야 보일러 저수통 근처에서 아주 작게 ‘낑’하는 소리가 들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보니 고양이 새끼 네 마리가 거기에 있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주인 할머니는 목사님 댁에서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만 전해 왔다. 결국 우리는 사료만 주고 키우는 것은 어미 고양이가 했고 새끼들은 무럭무럭 커갔다. 그러다 한 마리는 성도님이 키우겠다고 가져가고 세 마리 남았는데 몇 달이 지나 새끼들이 크자 어미가 새끼들을 멀리하더니 마침내 새끼들을 두고 떠나 주인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 버렸다.


남겨진 새끼들은 사료 주는 것 외에는 별로 돌봐주는 것이 없는데도 자기들이 태어난 상자에서 잠을 자며 떠나지 않고 살았다. 수컷 두 마리 암컷 한 마리였는데 수컷 한 마리만 사람에게 친근하게 굴고 나머지 둘은 먹이 줄 때 외에는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딸이 “아빠 제 임신한 것 같아”라는 말에 가만히 보니 암컷의 배가 불러있었고 몇 주가 지난 뒤 나와 보라는 딸의 소리를 듣고 나가보니 암컷이 마당 한쪽에 앉아 사타구니 쪽을 핥고 있는데 허벅지가 다 젖어있고 출산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때 개나리 나무 담벼락 쪽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풀숲에 새끼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어미가 초산이라 당황해서인지 몇몇 놈들은 태반이 그대로 있고 탯줄도 길게 달고 있었다. 어미는 제 몸 핥기만 할 뿐 내가 갔는데도 새끼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소독된 가위로 탯줄을 끊어주고 빈 상자를 구해 무릎담요를 깔고 새끼들을 넣었다.


마당에 그냥 두자니 다른 길고양이들도 있고 개들도 가끔 나타나는지라 유리문이 달려있어 격리된 사택 베란다에 들여놓고 어미에게 갔다. 제 새끼들 탯줄 자르는 것을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처럼 피하지 않고 자기를 잡는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어미를 새끼들 있는 상자에 넣어주고 새끼들을 젖 위에 놓아주고 굴처럼 느끼라고 80% 정도 되게 뚜껑을 덮어줬다. 놀라운 변화는 이때부터 일어났다. 그렇게 까칠하게 굴며 곁을 주지 않던 녀석이 얼마나 애교를 부리며 살갑게 구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꼬물거리며 자라가는 새끼들을 보며 또 어미의 애정(?) 표현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래서 그러는가 보구나!’


나와 아내는 둘 다 짐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골에서 넓은 마당을 가진 집에서 30년 가까이 살아도 강아지 한 번 길러보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개고기를 잘 먹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내가 처음 와서 보니 모 심는 날도 개를 잡고 생일날도 개를 잡고 초상 치를 때는 몇 마리씩 잡기도 하는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개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개를 여러 마리씩 키웠고 가끔씩 개장수에게 개나 강아지를 팔아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십여 년 전부터 이런 풍습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우리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개는 반려는커녕 애완도 아니고 식용이었을 뿐이다.


이런 환경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텔레비전에서 반려견이나 반려묘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 많은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을 보면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과 반려동물 간의 정서적 교감에 대해서, 반려동물이 아동심리치료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노인의 정서안정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도 읽어보았다. 그래도 마음으로는 별로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기아나, 전쟁, 재난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선 얼마나 돈을 쓸까?’와 같은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어미와 새끼 고양이를 겪으면서 ‘아! 이래서 그러는가보구나 이런 감정이 좀 더 커지면 그들처럼 반응하고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공감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올해 봄이 시작될 무렵 우리 교인 중 한 분은 갑자기 악화된 병으로 남편을 떠나보냈고, 한 분은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냈다. 여러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분들은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례를 치르며 남은 자들의 아픔과 슬픔에 나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지금 그 분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데는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목회를 하면서 지침으로 삼은 말씀 중의 하나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이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공감 없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것은 우리와 공감하시려는 하나님의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어 수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공감을 잘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여는 것과 함께 정말로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도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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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차 총회, 돌봄통합지원법 시행 앞두고 ‘돌봄 목회’ 해법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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