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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러교회

백동편지-41

김태용 목사
백동교회

미국에 있는 동안 같은 지방회에 속한 한 교회의 이야기다.
한인 침례교회로 바로 옆에 규모가 큰 미국인 침례교회의 4분의 1 정도도 안 되는 교회가 있었다. 담도 없이 잔디밭으로 연결된 두 교회가 예배를 드린 어느 주일 오후에 미국인 교회 몇 분들이 한인교회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한인교회 건물을 둘러본 후 목회자를 만나 이야기를 한 것은 “한인교회를 보니 어린아이들과 성도들이 많이 늘어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노인들만 있고 점점 교인들이 줄고 있어서 큰 건물이 필요 없고 운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인교회 건물과 우리 미국인 교회 건물을 서로 바꾸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한인교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어서 “큰 건물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돈이 없다”며 아직 재정적 부담이 커서 할 수 없다고 거부를 했다. 그러나 미국 교회에서 오신 분들은 그런 것은 아니라며 그냥 교회 건물을 바꾸자는 것이라고 재차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해를 못하는 한인교인들을 보며 한 주 동안 생각하고 다음 주에 이야기를 하자고 돌아갔다.


한국 사람으로서 생각할 때 당연히 재정적인 것을 고려할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 주에 다시 찾아온 미국인 교회 사람들은 “생각해 보았느냐?”고 물었고 한인교회 사람들은 “우리도 큰 건물을 사용하면 좋지만 아직 그럴만한 재정이 없다”며 똑같은 답변을 했다. 미국인 교인들은 한인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며 사무실에 가서 계약서를 쓰자고 했고 계약서에는 “판매 금 1 달러”이라고 적고 서명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한인교회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몇 번이고 서류를 보고 맞느냐고 확인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계약서를 서로 나눴지만 그래도 한인교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주일 아침에 한인교회 사람들은 전에 예배 드리던 곳에 모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미국인 교회 사람들이 한인교회로 사용하던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인 교회 사람들은 막상 계약서는 받았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큰 교회 건물로 가지 못한 것이다.


미국인 교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한인 교회 사람들을 어서 가라고 쫓듯이 밀어냈다. 그렇게 해서 정작 미국 내에서는 별 큰 이슈가 아닌 듯한 “1 달러 교회”사건은 한인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니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은 건물인데 얼마나 어렵게 세운 예배당인데 나아가 내가 헌금을 내서 세운 건물인데  얼마나 투자했는데 등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주인(主)의 것이라고 시인하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잠시 사용하다 훌훌 털고 가야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라면 가능하다.


코로나19로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겼다. 얼마 전 모 언론에 “영상예배 드리던 날 교역자도 울고 성도들도 울었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눈이나 비 그리고 바람이 조금 심하게 불면 방송에서 예배 없다고 알리는 문화의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건물이나 눈에 보이는 것이 믿음과 예배의 척도가 된 듯한 한국 교회 사람들에게 “1 달러”이라고 계약서를 써 준 미국인 교회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주님, 고통 하는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로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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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