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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사람은?

 

집에서 기르는 같은 동물인데도 고양이는 따뜻한 방에서 주인과 함께 자고, 개는 추운 마루 밑에서 잔다. 왜 그럴까? 과학적이거나 실제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우리 조상들에게서 내려오는 대답이 있다.

 

먼 옛날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고 있었는데 그 정성이 남달라서 비록 자기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개와 고양이를 굶기는 법은 없었다. 주인의 이 지극한 정성에 보답하기 위하여 개와 고양이는 하나님이 가지고 있다는 귀한 보물을 훔쳐다가 주인을 부자로 만들자고 합의를 보았다.

 

그리하여 둘은 천신만고 끝에 보물을 구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도중에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래서 개는 헤엄을 치고 고양이는 보물을 입에 물고 개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너고 있는데 무심코 개가 고양이에게 말을 걸자 고양이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 바람에 그만 입에 문 보물이 강물 속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그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여기서도 재난이 되어서 만사를 그르치게 된 것이다. 개와 고양이는 안타까워서 떨어진 강물 속을 들여다보며 발을 동동굴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개는 추운 강바람을 쏘이며 서성거려봐야 헛일이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고양이는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보물을 찾겠다고 작정하고 낚시꾼의 꽁무니에 붙어 있었다.

 

언젠가 고기들이 보물를 삼킬 것이고 그 고기를 낚시꾼들이 낚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렇게 많은 날이 흘러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드디어 어느 날 낚시꾼의 환호 속에 보물을 삼킨 고기를 찾아내게 되었다.

 

고양이는 목숨을 걸고 그 보물을 훔쳐내었고, 그것을 주인에게 바쳤다. 주인이 큰 부자가 된 것은 물론이고, 사연을 안 주인은 고양이를 자기 안방으로 불러 그 때부터 함께 잤다는 것이다. 끝까지 충성을 다한 사람은 남달리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어렵다고 포기하고 외면하는 사람은 낮은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 이 설화 속에 들어 있다.

 

주님에게 필요한 사람,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님이 의도하는 사람, 회사에서 경영자가 찾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가? 그것은 묵묵히 자기가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요행의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그것에 자신을 아낌 없이 바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먹을 만큼 일한다면 그는 한낱 짐승의 인생을 살게 되고, 요구받는 만큼만 일한다면 그는 종의 인생을 살 것이며, 먹는 것 이상, 요구받는 것 이상을 일한다면 그는 주인의 인생을 살 것이다고 했다.

 

사람은 일해서 늙는 것보다도 녹이 슬어서 못쓰게 된다. 어려운 시간일수록 적당히 일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일하자. 꾀로 일하기보다도 충성으로 일하자.

 

믿음으로 일하는 사람은 자기가 비록 빗자루를 들고 남의 집 마당을 쓸고 있을지라도,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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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