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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성경적 가정을 회복하라(마7:24~27)

라이즈 업 뱁티스트 -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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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는 그리스도인들을 붙들고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어떤 구절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요한복음 316절입니다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참 중요한 구절이고 좋아하는 구절이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그런데 똑같은 질문을 유대교인에게 던진다면 틀림없이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신명기 64절과 그 이하의 말씀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6:4)

 

이 말씀은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누 아도나이 에하드라고 불려지는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구절은 어떤 구절입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는 말입니다. 다음 구절은 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무엇을할 것인가? 6절에 보면 너희는 이 말씀을 너희 마음에 새기라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은 마음에 새긴 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특별히 다음 세대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가르칠 것인가? 길을 행할 때, 그리고 누워있을 때, 일어날 때, 앉았을 때 즉 언제나 이 말씀을 붙들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계속 읽어보면 이 말씀을 손목에 매라고 하십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6:8~9) 이것은 말씀이 다스리는 가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 특별히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고 지나가면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 성경적 가정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적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적 가정이 어떤 가정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신약에서 가장 인상 깊게 접하는 말씀은 산상수훈일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인 마태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은 집을 짓는 두 사람을 이야기를 하십니다. 한 사람은 모래 위에,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완성된 두 채의 집은 아무도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폭풍우가 불어오고 홍수가 밀려오자 두 집의 차이는 쉽게 드러났습니다.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이 쉽게 무너짐에 반해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은 그대로 서 있었죠. 예수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집같이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우리 시대를 가리켜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대를 특징짓는 두 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있습니다. 하나는 파괴하나는 해체입니다. 우리 시대에 들어와서 많은 것이 파괴되고 많은 것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픈 비극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대적이요, 성도의 대적인 마귀의 공격에 첫 번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어떻게 완성이 됐습니까? 마지막 여섯째 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그들을 부부가 되게 하십니다.

 

연합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가정이 탄생합니다. 이것이 창조 사역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서 첫 번째로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창조의 위대한 작품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가정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가슴 아픈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침례교인이 된 것을 감사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가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미국에 가보시면 남부에 주들을 가리켜 바이블 벨트라고 합니다. 성경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란 뜻입니다. 거기 제일 많은 것이 침례교회입니다. 물론 그 지역에도 최근에 와서는 적지 않은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미국에서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정을 견고히 지키고 가정에 대한 행복도와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이 그곳입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고자하는 사람,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 말씀 위에 삶을 세우고 말씀위에 가정을 세울 줄 아는 사람들, 그런 가정은 그만큼 견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성경적 가정의 기초가 뭘까 요?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한 가정을 가리켜서 이 가정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거나 혹은 성경적 가정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가정을 구성하는 구성원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가정,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가정, 그런 가정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경적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적 가정을 만드는 기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집을 세울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기초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습니다. 성경적 가정의 기초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어떤 가정이 성경적인 가정일까요? 성경적 가정은 두 개의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개의 기둥을 가리켜 저는 순종사랑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교회 내에서는 비교적 소위 가정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세미나를 처음 시작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가정과 관련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 다. 그것은 에베소서 522절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5:22)

얼마나 좋은 말씀인가요? 남편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감동이 되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에베소서 522절 전에는 21 절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1절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사랑과 순종을 가르칠 때 이것은 결코 일방적인 사랑, 일방적인 순종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만 사랑을 요구하고 아내에게만 순종과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쌍방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로 다르게 지으신 하나님은 남녀에 완벽한 하모니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남편이 좀 더 힘써야 할 것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좀 더 힘 써야할 것이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16절을 암송하고 묵상할 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에서 나오는 그 사랑과 똑같은 사랑입니다. ‘아가페즉 자기 전체를 버리는 희생적인 사랑, 그 사랑으로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얼마나 엄청난 요구를 하셨습니까? 아내에게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피차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해요. 그러나 아내의 순종이 가져올 수 있는 놀라운 결과는 한 가정에서 남편의 리더십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팔로우가 없이는 리더십은 성립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사실 순종한다는 단어에서 동사가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잘듣는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들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남편의 말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 남성들은 누가 무슨 말을 하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는 내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양쪽으로 듣고 입으로다 쏟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남편 되게 하는 것, 남편을 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미덕은 경청입니다. 남편의 말에 경청하는 아내를 보면서 남편은 행복해 합니다. 적어도 이 집안에서만큼은 내가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다는 행복을 느낍니다. 그 리더십은 사회의 리더십으로 연장될 수 있습니다. 결코 일방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여기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성경은 남편이 아내에게 행해야 할 일에 대해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라 하십니다. 또 아내가 남편을 위해 해야 할일은 교회가 주님께 대하여 하는 것처럼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적 가정을 세우는 두 개의 기둥과 같다는 것입 니다. 우리 침례교인들은 신조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더 좋아하는 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신조를 만들지 않지만 종종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기 위해 신앙고백을 합니다.

 

가장 최근에 세계적 침례교인들의 신앙고백은 2000년도에 나왔습니다. 뱁티스트 페이스 앤 메시지(Baptist Faith & Message)가 바로 그것입니다. 2000년도에 발표된 이 신앙고백의 18조는 가정입니다. 제가 한번 그것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제도로 제정하셨습니다.

가정은 결혼, 혈연, 또는 입양에 의해 서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서로에게 헌신하겠다는 서약을 통해 연합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같은 연합을 계시하기 위한 그리고 결혼 관계에 있는 남녀에게 친밀한 사귐의 틀과 성서적 기준에 따른 성적 표현의 통로와 그리고 인류 보존의 수단을 제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선물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가치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결혼관계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모델로 합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해야 합니다.

 

남편은 자기 가정의 필요를 공급하고 보호하고 인도할 하나님께 부여받은 책임이 있습니다. 아내는 그 자신을 그녀의 남편이 가지고 있는 섬김의 리더십에 감사하며 순종해야 하는데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의 주권에 가까이 순종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므로 그와 동등한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존경하고 가정을 돌보는 것과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남편의 돕는 배필로서 섬겨야 할 하나님께로 부여받은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시대를 초월한 주님의 명령이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님이 우리를 향해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단순히 이렇게 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남편들이 아내를 대할 때 항상 머릿 속에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적용 점이 있습니다. ‘주님이라면 이런 경우 내아내에게 어떻게 하실까?’ 이것이 정답입 니다.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에 또 아내들은 남편을 바라볼 때마다 남편이 어떻게 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실까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그 모습 그대로 우리가 참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분의 모범을 따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청취하고 그분을 따라가듯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순종할 수 있다면 순종과 사랑이 세우는 가정의 두 개의 견고한 기둥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적 가정은 두 개의 창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창문에는 두 개의 단어를 쓰시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해용서입니다. 여러분, 창문이 없는 집을 한번 연상해보세요. 감옥이죠. 얼마나 어둡고 캄캄하겠습니까? 창문이 있어서 밝고 환한 빛이 우리의 집에 머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집을 밝고 환한 빛으로 채울 수 있는 성경이 가르치는 두 개의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해용서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432절을 보겠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22)

여러분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현저하게 다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들은 계속해서 죄를 짓고 우리는 죄를 안 짓는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많은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리스도인도 실수합니다.

 

그것이 차이가 아니예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결정적 차이는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용서받은 자로서 우리가 달라져야 할 삶은 그 용서를 우리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와 이해가 실천돼야 할 첫 번째 삶의 자리가 바로 우리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첫 번째 대상인 내 남편, 내 아내에게 우리는 먼저 용서를 베풀며 살아야합니다. 저는 건강한 그리스도인 부부의 모습은 결코 아무 잘못도 하지 않는 부부가 아니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즉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줄 아는 이것이 바로 건강한 부부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런 용서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하기 전에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용서가 있고 당신을 불쌍히 여길 때,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용서가 가능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고통과 상처를 내 상처처럼 아는 것, 그 상처를 품고 그 아픔을 품어주고 그 고통을 품어줄 수있는 곳,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성경적 가정의 지붕으로 경건의 실천을 말하고자 합니다. 지붕이 없으면 눈보라나 비바람, 폭풍우 속에 우리 가정은 보호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정을 보호하는 지붕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경건의 실천, 혹은 경건 생활입니다.

경건 생활의 목적이 뭘까요? 에베소서 5장과 6장에 가정에 대한 많은 교훈이 나옵니다. 에베소서 518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강조합니다. 경건 생활의 목적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입니다. 술에 취하면 술에 지배를 받는 것이 고, 성령에 취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다스림과 성령의 충만 함이 없으면 그리스도인들도 비그리스도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만 우리는 그리스도인 다울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사모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에베소서 518절 이하의 말씀은 성령충만의 결과이기도 하고 성령충만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 이하에 따라오는 말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5:19)

여러분 성령 충만하면 노래가 나옵니다. 성령 충만하면 말씀이 내 안에서 계속 활동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피차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조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찬양하고 감사하면, 말씀을 마음에 두고 말씀의 다스림을 받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겁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경건 생활인 것입니다. 정말 우리 가정의 식구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다스림을 받고 늘 찬양과 감사 속에서 살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얼마나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하고 예배를 가까이하는지에 대한 점검입니다.

 

즉 가정예배가 있는가인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에서도 일주일은 한 번쯤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주 앞에 올려야 합니다. 코로나19시대에 한 가지 감사할 만한 것이 집에서 예배하는 것을 다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예배가 너무 시간이 많이 들고 불편하다면 큐티(Q.T)라도 하면 됩니다.

 

우리 부부는 매일 함께 큐티 말씀을 나누며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어떤 도전을 받았는지, 오늘 말씀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 항상 확인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 생활입니다. 침례교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위대한 설교자, 설교의 프린스라 일컬어지는 스펄전 목사님은 항상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경건 생활이 없는 가정이 화 있을진저, 경건 생활이 있는 가정이 복이 있도다경건 생활은 성경적 가정의 지붕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입니다. 성경적 가정에 문이 있습니다. 문이 없는 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문이 있어야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성경적 가정의 문은 두 개의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성경의 가장 위대한 두가지 명령, 위대한 사명, 위대한 계명,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입니다. 우리는 집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세상과 접촉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는가? 거기에서 우리 가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천국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 너희 고향과 친척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22절을 보면 거기서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위대한 민족으로 삼고 위대한 이름이 되게 하겠다고 하신 후에 중요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너는 복에 근원이 되리라가 바로 그것입니다. 너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네가 다른 사람들의 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복을 나누는 사람, 복의 통로가 됩시다.

 

성경적 가정의 존재 이유는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전도하고 선교하고 그리고 내 주변의 사회적 약자로 힘들고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품에 안고 그들을 돌봐 주고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 가정, 그 가정을 다시 세웁시다.

정리=범영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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