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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살리는 섬김(행 6:1~7)

라이즈 업 뱁티스트 - 강남중앙침례교회 최병락 목사

 

오늘 제가 받은 주제는 ‘섬김’입니다.

섬김이라고 하는 말씀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웃 교회와 침례교회와 연합하는 그 섬김을 이야기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 교회 이런 것도 합니다. 저런 것도 합니다”라고 저희가 하는 일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마음으로 총회에서 이 주제를 맡기셨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교회를 살리고 세우는 섬김의 리더십’에 대해서 나누기로 했습니다. 이 말은 3500개의 침례교회 목사님들을 대표해서 성도님들께 부탁하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의 성도님들이 설교에 담긴 의미를 잘 이해하신다면 틀림없이 우리 3500개 교회가 건강하게 비상하고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쓰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교회를 섬기는 리더십’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사랑한 것이 결국에는 잘못된 사랑으로 나타나 교회에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잘하려고 했던 그 열심 때문에 오히려 교회가 힘들어지기도 하고 교회가 분란이 일어나기도 하며 갈라지기도 하는 그런 아픔들을 우리들은 많이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마음에 드는 교회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설교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교회, 자신조차도 다니기 싫은 교회라면 천하에 내 입에 혀처럼, 내 마음에 쏙 드는 교회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위대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성도가 위대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완전한 교회, 완벽한 교회를 찾지 말고 너무 큰 기대도 가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정말 서로의 허물을 보면서도 지적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강남중앙침례교회에 부임한 지 2년 반이 되었는데 교회가 너무 나도 은혜스럽습니다. 장로님과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어떤 사역이든지 하도록 힘을 함께 해주십니다.

 

3500개의 교회들을 돕자고 하면 함께 마음을 모아 불같이 일어나고 “우리 기도합시다”라고 말하면 뜨겁게 기도들을 함께 해 주십니다. 개척교회들이 힘들다고 하면 “그러면 돕자”라고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우리 교회 최병락 담임목사님이 목회하는 동안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될 손가락이 있다고 이야기들을 하십니다. 바로 ‘검지 손가락’입니다. “저 사람 때문에 이 사람 때문에”라고 이야기를 하면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사용하질 않으십니다. 제가 목회하는 동안 성도님이 보여 주셔야 할 유일한 손가락은 ‘엄지 손가락’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검지가 많은 교회는 마귀의 역사가 많은 곳이고, 엄지가 많은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가 많은 교회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도 계시고 영상으로 함께 참여하시는 성도님들 마스크를 끼고 있기 때문에 말씀은 하지 마시고 좌우에 있는 분들에게 ‘엄지 척’ 한 번씩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최고라고 인정해 주고 서로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당신은 보배 같은 존재'라고 이해해 주고 높여준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마귀가 감히 찾아올 생각을 할 수조차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열심히 섬기려고 합니다. 어떤 성도도 교회 오면서 “내가 오늘부터 3년 안에 이 교회를 망쳐 놔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며 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교회를 잘 세워보고 멋진 교회를 세워 보려고 성도와 목사가 한마음으로 시작을 합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교회를 시작하는데 왜 교회 안에 힘든 일과 어려운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까? 교회를 모르기 때문에 힘들어지고 어려운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 분명히 밝히기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했습니다.

 

3500개 교회의 성도님 중에 예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목회를 하고 있는 저도 예수님을 눈으로 못 봤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봤다고 말하면 그건 예수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승천하지만 내가 나 같은 하나를 남겨놓고 간다. 바로 교회다. 교회는 내 몸이다. 너희가 정말 보이지 않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면 너희 눈 앞에 보이는 교회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저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고만 이야기하니까 함부로 대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저 믿는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함부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의 모임 에클레시아(ecclesia)보다 교회에 더 중요한 의미는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길 ‘교회가 곧 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맡겨진 교회를 주께 섬기듯 섬긴다면 교회가 건강해지고, 지치지 않으며, 그 섬김 속에서 우리의 혈기가 나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울 시절에 다메섹에 있는 교회를 잔멸하러 갔습니다. 예수님이 그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셔서 사울을 향해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다메섹에 있는내 교회를 핍박하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아니 나는 다메섹에 있는 교회들을 핍박하러 가는 것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당신을 내가 어떻게 핍박을 한단 말입니까?” “그 교회가 나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교회를 왜 핍박하냐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가 왜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다메섹에 있는 교회를 하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우리의 옷을 다시 추스르게 되고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함께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된 새 교회’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주인이 먼 길을 가면서 종을 불러놓고 말발굽 하나를 주면서 “내가 사흘 뒤에 돌아올 테니까 똑같이 100 개를 다 만들어 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인은 떠났습니다. 성실했던 이 종은 주인이 돌아오기 전까지 100개의 편자를 다 만들어 놓습니다. 주인이 와서 보니 마음이 흐뭇합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성실이 너무 정말 기특하구나.” 칭찬을 하고 난 뒤에 100개의 편자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백 개의 편자 크기가 전부 달랐던 것입니다.

“아니, 이 사람아. 어떻게 만들었길래 편자 크기가 전부 다른가?”라고 물으니 종이 머리를 긁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주인님이 주신 첫 번째 것을 보고 두 번째 것을 만들었고, 두 번째 것을 보고 세 번째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들다보니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하인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그렇게 만들면 어떡하나. 첫 번째 것을 보고 두 번째 것을 만들고, 다시 첫 번째 것을 보고 세 번째 것을 만들 어야 백 개가 다 똑같이 나오지.” 여러분.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주신 첫 번째 편자입니다.

2000년이 흐르고 4000년이 흘러도 교회가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 “이런 교회처럼 되어라”라고 해서 하나님이 작정하고 만드신 건강한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내건 슬로건이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물건은 2000년이라는 시간을 공을 들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그 후에는 두 배로 더 좋아져야만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좋아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오히려 2000년 전에 지어진 그 교회로 돌아가 자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첫 번째 교회를 가장 건강하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들이 잘 나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그리고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떠한 모습의 교회인지가 궁금하다면 첫 번째 편자인 교회로 가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예루살렘교회라고 본다면 그 교회가 개척한 안디옥교회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초대 교회’라고 말을 할때에는 예루살렘교회를 말하는 것이고 안디옥교회 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선교 지향적이라면 안디옥교 회를 말하는 것이고 공동체 지향적이라면 예루살렘교회를 닮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라고 모두가 인정하고 주님이 야심차게 만든 이 교회도 오늘 본문에 보니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보면 본문 6장 1절에서 이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교회가 막 부흥하기 시작하는 것입니 다. 부흥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가 성경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 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

 

초대 교회에 성도들이 몰려왔는데, 그중에는 과부인 성도들도 있습니다. 유대교에 있다가 크리스천으로 개종을 하게 되면 하루에 과부에게 한 끼 식사비로 나오던 두 렙돈의 돈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과부들은 교회가 온전히 먹여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빠지게 되고, 이를 헬라파 유대인들이 알게 되면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게 됩니다. 자칫하면 교회가 둘로 갈라질 수 있는 위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라고 해도 둘로 갈라질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들 또한 이런 위기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만난 이 위기를 오늘날 교회들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문제가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 다. 예루살렘교회가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교회 안에 생겼을 때에 문제에 넘어지는 교회가 되지 말고 문제를 넘어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데 마귀는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올 때에 많은 교회들이 안타깝게도 문제 앞에 넘어집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문제를 허락하신 이유는 그 문제 앞에 넘어지게 하려고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문제를 넘어서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건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교회가 둘로 갈라질 수 있었던 엄청난 위기 속에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고 오히려 부흥의 기회로 삼았 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파 사람들의 문제가 있었지만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함 으로 말미암아 7절에서는 그 결과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힘이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1절에서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파 과부 들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갈라질 뻔한 큰 위기가 있었지만 슬기롭게 그 문제 앞에 넘어지지 않고 넘어서니 그 도시에 믿는 자의 무리가 많아지고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는 도시적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에 넘어지게 되면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지만 문제를 넘어서면 교회는 큰 부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3500개의 모든 교회 들이 다 저마다 문제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는 넘어지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주신 것입니다. 마침내 그 문제를 넘어서게 될 때에 도시적 부흥이 오게 되고 그 동네에 세워진 침례 교회에 놀라운 회복과 부흥의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있고 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를 반드시 지켜주십니다.

 

1년에 1000개 이상의 교회들이 문을 닫습니다. 주님이 교회를 돌보신다고 하셨는데 왜 문을 닫는 것입니까? 사람이 안 된다고 포기해서 문을 닫는 교회가 1000개는 되겠지만 하나님이 미안하다며 도와주지 못해서 문을 닫으라고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견디는 목회자와 성도들을 통해 다시 그 그루 터기에서 싹이 나오게 하시며 숲을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곳에 짐승들이 찾아오게 하시고 새들이 깃들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교회가 없었던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라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교회는 여전히 존재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존재 자체만으로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떨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성도가 한 명도 없어도 교회가 있으면 마귀의 권세가 멸하여지는 것이고 그 교회에 성도가 한 명도 없어도 교회가 있으면 마귀가 떨어서 그 지역에 틈타지 못하는 것이며 아무도 없어도 교회가 세워진 그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봐야 합니다. 교회는 문제가 생깁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도 문제가 있었지만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 도시적 부흥을 일으키고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저는 오늘 비슷한 상황들을 겪고 있는 교회가 한 교회라도 있다면 오늘 이 본문을 통해 “교회가 위기를 넘어서는 법”을 배워 부응하고 부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 문제를 이겨낼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섬기는 일곱명의 안수집사들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안수집사님들을 세우고 난 뒤에 그들을 전폭적으로 교회 일꾼으로 등용시켰고 이 문제를 슬기 롭게 해결하도록 맡겨주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잘 해결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이 일곱 집사를 세울 때에 어떤 기준에서 세웠는지를 살펴보고 한국에 있는 3500개의 침례교회 성도님들이 내가 교회를 어떻게 섬길 때에 우리 교회가 성장하고 우리 교회가 쓰임 받게 되는지를 교훈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세운 이들의 역할과 기준은 사도들 즉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나머지 일들을 감당해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셔야 됩니다.

 

이게 교회 안에서의 역할입니다. 목회자의 제일의 역할은 말씀을 준비하여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그 일이며 그보다 중요한 사역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님들이 이 당연하고 중요한 일을 다 못하는 이유가 다른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목사님에게 충분한 기도의 시간을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목사 님이 그 충분한 기도 시간에 여러분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우리 성도님들께서 그 가치를 알아주셔야 합니다. 그 가치를 알아주셔야 합니다.

 

초대 교회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는가를 살펴보면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하는 일에 전념하면서 나머지 사역을 맡길 수 있는 집사 일곱 명이 뽑혔습 니다. 그 일곱 명은 “왜 내가 이러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런가 하여 업무를 맡아서 성실히 감당해서 헬라파 과부도 서운치 않고, 히브리파 과부도 서운치 않게 나눔의 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도시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목회자의 제일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목사라는 단어가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이 에베소서 4장 11~12절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 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서 목사가 등장을 합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나와 있으니 둘 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원어인 헬라어를 보면 목사와 교사는 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원어에는 11절이 영어의 정관사 ‘the’를 의미하는 ‘δὲ(데)’에 목회자를 나타내는 ποιμένας(포이메나스), 영어 접속사 ‘and’를 나타내는 ‘καὶ(카이)’와 교사를 나타내는 διδ άσκαλος (디다스칼로스)가 함께 나옵니다. 이것은 정관사 ‘δὲ(데)’에 다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목사의 역할은 가르치는 목사라는 의미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다음 이어지는 12절의 말씀을 통해 설명이 덧붙습니다. 목사는 가르치는 사람으로 성도를 가르쳐 온전하게 해 성도가 봉사의 일을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세워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목사가 혼자 교회의 일을 하여 혼자 면류관 받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함께하여 면류관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심방은 누가 해야 하는 것입니까?” 심방은 성도님들이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심방하면 안된다가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경적으로 심방은 성도님들이 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심방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는 것입니다. 전도는 성도님들의 1차적 사명입니다.

 

지금까지는 “목사님 심방 가보세요. 누구 시험 든 것 같아요”하면서 심방가야 할 성도를 알려주는 것이 최고의 섬김이 라고 생각하셨다면 이제는 용어를 바꿔야 합니다. “목사님 누구 시험 든 것 같아요. 제가 심방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심방하는 법을 모르니깐 목사님이 알려주세요”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심방하는 법을 알려주고, 성도님은 배운데로 심방해 영혼을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교회가 세워져 나가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러한 일들을 잘하는 사람들을 선택하고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세웠습니다. 여기서 칭찬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쉬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면 되겠거니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 또한 당연합니다. 그러나 순서가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칭찬이 먼저 앞서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18절에 분명히 이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 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은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순서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일이 하나님을 기뻐하시는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성도가 150명 정도 될 때의 일입니다. 실행위원 다섯 분을 구성했습니다. 평신도 대표로서 세운 것입니다. 이중 한 분이 특별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바로 “안 됩니다”하는 은사입니다. 제가 무엇을 하려고 기도하고 모여서 의견을 나누면 그 분은 3초도 되지 않아 “안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이 여러 번 반복됐습니다. 이 분이 반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성도들이 부담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민 사회의 한인 교회들은 성도들이 모두 부담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성도님들을 위한 것이라 말하며 성도의 칭찬을 받으 려는 일들을 하고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천국 가서 볼 때에 “내가 이 면류관 받을 일도 있었고, 저 일에 동참했으면 저 면류관을 받았을 텐데 저 집사님이 만류해서 면류관 하나도 못 받았구나”하면서 한탄할 일입니다.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은 성도가 부담스러워하는 일들도 주님이 기뻐하시면 어르고 달래서라도 감당시켜야 합니다.

 

욕을 먹더라도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얼마 지나면 투덜거리던 성도님들이 무릎에 멍이 들 정도로 때리면서 “아 이래서 이 일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구 나”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 칭찬받는 일을 따라가면 사람의 칭찬은 따라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성령에 충만한 사람을 세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속에는 성령 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계시는 것과 충만은 다릅니다. 성경에는 성령을 ‘거스른다. 소멸한다. 근심시킨다’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성령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성도님들이 성령을 근심시키십니다. 성령님이 아니라고 말씀하심에도 그 일을 행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성령님께서 기뻐하심으로 계속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상태인 사람입니다.

 

주님이 누군가에게는 “누구야, 내가 네 속에 30년간 있으며 너무 기쁘다. 나는 네 안에 있는 것이 너무 좋다. 너는 성령에 충만한 상태로 순종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는데 “누구야, 내가 네 속에 30년간 있으면서 단 하루도 기쁜 날이 없었다.

나는 네가 근심스럽다. 왜 너는 내가 하는 말을 그토록 거스르느냐. 왜 성령을 소멸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떨까요.

 

진정한 일꾼은 날마다 주님 앞에 기도하고 모두가 떠난 예배실 안에 무릎을 꿇어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하루 주님을 섬겼지만 육신의 욕심으로 섬기었다면 용서하시고, 오늘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루살렘교회에게 위기가 왔으나 위기를 극복하고, 극복을 넘어서 부흥이 일어나는 것처럼 혹시 이 ‘BAPTIST RISE UP’에 참여하는 3500개 교회 중에 문제와 위기를 만난 교회가 있다면 능히 이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포기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 훌륭한 일꾼으로 헌신하며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 일으켜주실 줄 믿습니다.

정리=범영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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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3500침례교회와 목회 동역자. 성도들 위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죄인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이제는 구원의 완성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신 사실을 믿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가르치셨으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난 받는 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회복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믿음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