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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제다

 

어느 목사님이 겪었던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하루는 장로님 한 분이 목양실로 찾아오더니 노트 한 권을 꺼내 놓는다. 그 노트에는 그 목사님이 부임해서 지금까지 설교한 내용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에 얼마나 은혜를 받았으면 이렇게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기록을 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걸작이었다.

 

그 장로는 노트를 접어놓은 곳 몇 군데를 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예화는 몇 년 몇 월 몇 일에 쓴 거고, 이 본문은 몇 년 몇 월 몇 일에 사용했던 본문입니다. 그런데 재탕을 하시다니요.” 그 순간 그 목사님이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예화는 좋은 것이면 다시 사용할 수도 있고, 성경본문에서 한 번 설교로 완벽하게 할 수 없을 때는 또 다시 선택할 수도 있고, 또한 필요성이 있다면 다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그 목사님은 생각했단다. ‘아하, 똑같은 설교를 듣고 기록을 해도 이런 목적으로 기록하는 사람도 있구나. 저 열정을 긍정적인 곳에 썼더라면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텐데.’ 내가 생각해도 그 열정이 아깝기만 하다.

 

그런데 실상은 이 사람에게 목사의 설교가 문제가 되는 것이기보다는 목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게 싫었던 것이다. 자신이 교회의 주인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목사가 어디 있겠는가?

 

사역 초창기에 성도 한 분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요저녁 예배에 참석하면서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부랴부랴 돌아간다. 처음에는 본교회가 멀리 있어서 가까운 교회의 수요예배에 참석했다고 생각해서 가볍게 인사정도만 나눴다. 그런데 몇 달 뒤에는 주일 예배에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 등록을 했다.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교회가 참 좋단다.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좋단다. 그러면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참석하며 예배마다 은혜를 받는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된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옆 교회에서 온 교인이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우리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단다.

 

물론 우리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치우침이 없어서 좋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5년여 동안 교회에 출석하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슬슬 모임에 빠지기 시작했다. 심방을 가도 별 말없이 그냥 사업 때문에 바쁘고 일이 있어서라고 핑계를 둘러댄다. 그러더니 교회에 빠지고 연락도 두절됐다.

 

몇 주 뒤 옆의 다른 교회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교회에 그 교인이 등록했다면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어차피 싫어서 떠난 교회인데 돌려보낸다고 돌아올 리 만무하다. 목사님이 잘 보듬고 잘 돌봐줘서 그 교회에 정착하게 해 달라고 말하고 난 뒤 한 달 뒤에 그 목사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 안부를 물으니 다른 교회로 옮겼단다.

 

이유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등록한 첫 주부터 새가족실을 자기가 돈을 들여 멋지게 꾸며보겠다기에 고맙긴 하지만 우리도 다 생각이 있어 한 것이니 우리 교회에 그냥 적응하면 좋겠다 말했는데 그 다음엔 또 기도회가 어떻다느니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하더란다.

 

 등록한지 한 달도 안 된 새교우가 말이다. 그러더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교회로 옮겼다. 자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겠지만 세상 어느 교회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교회가 있겠는가?

 

모든 문제가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문제다. 내 마음만 변화되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복이 될 텐데 이 죄성이 가득한 내 마음이 문제다. 내가 우주의 주인인 양 살아가고픈 내 마음이 문제다. 더욱 큰 문제는 헌금 좀 한다고 그 사람들의 어리광을 모두 받아주고 해달라는 대로 해준 목회자들이 더 큰 문제다. 그러니 수십 년 교회에 나오고 나이가 들어도 그 심성과 습관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딸을 둘을 낳고 난 뒤에 뒤늦게 아들을 얻는 집사님 내외분이 있었다. 뒤늦게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그 아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남의 가정사에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교회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다른 집사님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데 모든 장난감은 다 자기가 가져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그러니 다른 집사님들도 어쩌지 못하고 다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빼앗긴 아이의 가슴엔 상처가 남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 아이 엄마의 가슴에도 구멍이 뚫린다.

 

내 친구가 뒤늦게 아들을 얻었다. 뒤늦게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하지만 그 친구의 교육법은 달랐다. 아들이 무언가를 달라고 요구하자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어린 아이가 울상이 되어졌다. 내가라도 그 요구를 들어주려 하자 친구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세상에는 아무리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단다.

 

소중한 자식일수록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하게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면 소중한 내 자식이 기가 죽을까봐 벌벌 떨면서 끌려가는 어리석은 부모처럼, 제대로 가르치고 훈련시켰어야 할 우리가 교인이 떠나 갈까봐 교인들 비위맞추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결국 내가 문제다. 참된 목회는 교인을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교인을 제대로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일 텐데 기본을 잃어버리고 그만 숫자놀음에 빠져 귀한 영혼을 사탄에게 내어줘 버린 내가 문제다.

 

조범준 목사 / 영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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