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현대사적 혁명 과정에서 ‘시세(時勢)를 알고 행하는’ 사역자

정우영 목사
화목교회

“미국 혁명의 원리와 프랑스 혁명의 원리가 닮았다는 것은 정숙한 청교도 가정의 어머니와 추문을 다루는 프랑스 소설의 부정한 여인이 똑같이 닮았다는 것과 같다. …참으로 19세기에 프랑스보다 더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중>

 

유럽 역사에서 비극의 역사로 기억되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은 현시대의 기독교의 위기 측면에서 볼 때도, 치명적 위기를 불러온 중차대한 사건입니다.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는 이 때를 두 번째 타락이 있었던 때라고 강조합니다. 첫 번째 타락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입니다. 두 번째 타락은 프랑스 혁명 시기로, 서구사상사와 문화사에서 도로 메꿀 수 없는 깊은 틈이 이때 생겨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역사는 근대 프리모던(Premodern)에서 현대 모던(Modern)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현대모던에서 포스트모던(Postmodern)으로 넘어갈 때도 또 한번 공포의 혁명이 프랑스에서 재발합니다.


앞에서 첫 번째는 1789년의 급진적인 정치적 혁명이고, 그 다음 두 번째는 1968년의 문화혁명입니다. 이렇게 프리모던에서 모던으로 포스트모던으로 운명의 역사를 결정하는 배경에 각각 두 번에 걸친 프랑스 혁명이 놓여있습니다.

 

1.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 
먼저 근대주의(Premodernism)에서 현대주의(Modernism)로 진보하는(통상 세속적 ‘진보’, 보통은 ‘진보’로 부릅니다) 이 시기를 계몽주의(Enlightenment)시대라고 합니다. 세상은 그 이전 암흑시대와 비교해서 상대적, 의도적 차별화하려는 의도에서 속칭 ‘계몽주의’라는 수사어로 위장·포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의 빛’이 왔다는 의미로서 아주 종교적인 단어입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도 ‘다시 태어났다’는 뜻으로 두 용어 모두 이교 문화인 고전 문화의 인본주의가 다시 태어나고 자라서 마침내 세상의 참 빛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근대에 ‘다시 태어난’ 인본주의는 18세기에 가서는 ‘세상의 빛’으로 자처하기에 이릅니다.


계몽주의는 서구로 하여금 새로운 신앙인 인본주의로 개종하게 한 인위적 유사 ‘계시’입니다. 특히 서구 역사에서 프랑스 혁명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프랑스 계몽주의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척합니다. 종교와 국가,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과 진리를 우상과 거짓으로 바꿔치기했습니다. 오랜 전통 속에 제도적인 종교는 “낡아빠진 협잡의 거만한 잔재”로 여기고 제거돼야 했습니다. 뱀의 사기극에 넘어간, 최초 에덴의 반역(Revolution) 사건의 복사판입니다.

 

롬 1:22 :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롬 1:23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exchanged)
롬 1:25 :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exchanged)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계몽주의의 도래는 계시나 전통이나 신적 조명을, 인간을 지도하는 가장 확실한 안내자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이었다. 대신에 자율적 인간 이성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지배했다.”-제임스 에머리 화이트 (하나님 나라 최전선에 서라)

 

이렇게 기독교적인 근대를 뒤엎고 ‘다시 태어나’, ‘세상의 빛’으로 자처하는 현대주의가 새롭게 대체했습니다.
기독교가 중심이던 근대 기독교 세계(Premodern Christendom)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고 숭배되는 인간 세계(Humandom)로 뒤집혔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불어온 모더니즘은 신성한 종교의 상징인 성전의 자리 높은 곳에 반기독교 인본주의 철학자 루소와 볼테르의 흉상을 나란히 높이며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고귀한 삶의 영역에서 기독교적 요소에 대항하여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이름과 그 이름의 영향에 대항하여 현대주의라는 폭풍이 불어왔습니다. 1789년이 그 전환점이었습니다. 악당을 타도하라(Ecrasez l’infȃme)는 볼테르의 외침은 그리스도를 겨냥한 것으로서 프랑스 혁명 밑바닥에 깊이 숨은 사상이 표출된 것입니다. 당시 또 다른 철학자가 표현했던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 국민회의 역시 ‘하나님도 없고 주인도 없다’라는 표어들 역시 당시 인간 해방을 모든 신적 권위로부터의 해방으로 선전했던 슬로건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프랑스 혁명은 자율적 이성을 하나님과 그분의 명령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케 한 여성해방운동가이자 여신으로 격상시켰고,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열망에 호소하는 자유, 평등, 박애 등과 같은 말들에 현혹됐다.” - 가브리엘 쿠비 (글로벌 성혁명)
 



총회

더보기
총회 현안에 왜곡․확대 해석은 공멸의 길
존경하는 3500여 침례교회 동역자 여러분!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불철주야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동역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114차 총회는 115차 정기총회를 준비하며 교단의 현안을 제대로 바라보고 우리의 문제와 위기를 직시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총회를 비롯해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관련 현안에 대해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로 왜곡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확대 해석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어, 총회장으로서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침신대가 ‘평가 인증 유예’에 대해 대의원들이 알아야 할까요? 지난 2025년 6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평가에서 한국침신대가 ‘인증 유예’ 결과를 받게 됐습니다. ‘인증 유예’라는 생소한 단어 때문에 한국침신대를 사랑하는 모든 침례교 목회자들은 의구심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왜곡된 정보, 제한된 정보, 진영에 입각한 해석에 근거한 정보가 인터넷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침례교단은 과거 왜곡된 정보와 제한된 정보, 진영에 입각한 해석에 근거한 정보로 교단의 자랑이었던 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