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시고, 그 사명을 회피하지 않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신다. 인천상륙작전을 통하여 대한민국을 공산화의 위험으로부터 막아내고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었던 맥아더 장군은 ‘책임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후에 위대한 인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맥아더는 귀족 가문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공을 세워서 이름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가르쳤기에 늘 강한 승부욕과 야망을 보였다. 평범해 보이는 것을 얕잡아보거나 무시했다. 1923년 젊은 맥아더는 미국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활용해 큰일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공병 부대와 광산에서 근무하게 됐고, 이런 무미건조한 일을 맡았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여기에서 어떤 발전 가능성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대부분의 일을 소홀히 처리했다.
이후 그는 1년 동안 필리핀으로 파견됐다가 다시 미국 엔지니어학교로 발령받아 연구를 하게 됐다. 그는 연구가 지루하고 싫었다. 오히려 백악관의 화려한 사교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맥아더는 자신의 커리어와 사명을 완전히 잊고 사교의 즐거움에 젖어 들었다. 엔지니어학교 교장인 윔거스는 맥아더 중위는 책임감이 없고 육군사관학교 이력서에 기재된 능력에 훨씬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엔지니어학교를 졸업한 뒤 맥아더는 밀워키에 배치됐다. 무료한 업무에 맥이 빠져 자주 근무지를 이탈했다. 매우 화가 난 상사는 그를 다른 곳으로 전근시켜 버렸다. 그리고 소견서에 “그는 잘생기고 의젓해 보이기만 할 뿐 업무를 대하는 테도는 매우 불량하고 경솔하다.”라고 적었다.
맥아더는 소견서를 보고 화가 났다. 그동안 자신은 열심히 일했고, 맡겨진 일들을 모두 수월하게 해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의견서를 수석 엔지니어인 마셜 준장에게 제출했다. 마셜은 맥아더의 행동에 매우 화가 났는데, 이는 맥아더가 군인으로서의 규율과 절차를 무시하고 상부에 바로 보고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근무 시간에 다른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마셜 준장은 맥아더의 의견서를 반려하고 엄중히 처벌했다. 이 일을 계기로 맥아더는 자신이 능력은 뛰어나지만 책임질 줄 몰랐다는 것, 능력과 태도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혈기왕성했던 맥아더는 점점 성숙하고 침착해졌다. 책임감 있게 변했고 마침내 참다운 장교가 됐다. 그리고 훗날 그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는 위대한 인물이 됐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멸망해가는 니느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도록 요나 선지사를 불러 사명을 주셨다. ‘니느웨성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책임이 요나에게 주어졌다.
요나((Jonah)는 BC 8세기경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요나서는 니느웨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열망과 연계되어 있다. 요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고 이방민족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원의 보편성을 선포하는 메시지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주셨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요나서는 하나님께서 요나라는 사람을 통해 니느웨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당시에 니느웨성에는 12만 명이 살고 있었다. 니느웨성은 소돔성처럼 죄로 가득 찬 도시였다. 니느웨성은 당시 강국이었던 앗수르의 도시로 니느웨성에는 BC 765년경 역병이 만연해 국가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었고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였다. 그때 하나님은 요나에게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하셨다.
우리는 부름 받은 것을 감사하고 감격해야 한다. 선지자로 부름받아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요나는 무명의 사람이었다. 성경을 보면 여로보암2세 때 궁중 예언자 아밋대의 아들이라고만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은 무명의 사람을 불러 큰 사명을 맡겨 주셨다. 요나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다. 당시 니느웨성에는 12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타락된 도시였다. 소돔처럼 심판받을 운명에 처한 도시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저주이다. 모르고 있다가 멸망 받는다면 이것은 분명 큰 비극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도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은 이방세계도 사랑하고 이방인들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요나에게 “네가 가서 전하라”고 하셨다. 아주 중차대한 사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하고 그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갔다.
책임은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생명과 삶이 요구하는 기본조건이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맡았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용감하게 책임질 줄 알아야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우리의 책임을 다하자는 고상한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겁쟁이들만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잘못을 감추고 처벌을 면하는 수법으로 자기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가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대가가 뒤따른다. 요나 또한 책임을 회피했을 때 같이 배에 승선했던 모든 사람들이 요나로 인하여 풍랑에 죽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나가 자신의 책임을 깨닫고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라고 했을 때, 요나에게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바다에 던져서 물고기 뱃속에 갇히는 신세가 됐지만 그곳에서 회개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요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큰 일을 맡기신다. 오늘 하루의 삶이 나의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책임감 있게 감당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최천식 목사
약속의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