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학과가 없다.”
115차 정기총회에서 수험생 자녀를 둔 한 목회자와 나눈 대화는 현재 우리 교단 신학교의 현실을 반영하는 단면과도 같다. 목회자 자녀에게도 이제 더 이상 신학교는 미래를 담보하는 곳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는 교단의 아픈 손가락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쟁의 도구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생업의 터전이다.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다. 모두가 “이대로 두면 제2의 침례병원 사태가 난다”고 우려하면서 ‘구조조정’ ‘장학금 확대’ ‘징계’ 등을 운운하며 해결책을 내세웠다. 혹시 그것이 정치적 전리품을 노린 해법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심지어 “한국침신대는 위기”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한다. 신입생 모집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서양의 격언처럼 한국침신대 문제도 이와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하고, 한동안 힘들더라도 근본부터 바로잡아야 할 때다. 아무리 장학금을 내세우고 교단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학생 보내기 운동을 벌여도, 정작 수험생들은 한국침신대를 선택하지 않는다. 신대원이라면 장학금이 매력적인 조건일 수 있겠지만, 학부에서는 다르다. 대학기관평가인증은 학부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질이 아닌 주변부를 손보고 있다. 구조조정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뼈만 남은 상황에서 무엇을 더 잘라내겠다는 것인가. 학생들은 대학의 구조조정 여부를 보고 진학을 결정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학생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학과를 만드는 것이 해답이다. 이제는 건물 리모델링이나 장학금 지원을 넘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답해야 한다. 요즘 청년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전공의 매력이다.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전공이 있는가, 그것이 곧 대학 선택의 기준이다.
운영 차원에서 구조조정과 재정지원은 필요할 수 있지만, 학생들의 마음은 그보다 훨씬 앞서 있다. 이들은 신앙을 지키면서도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실전형 신앙인’을 꿈꾼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교단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실 진로와 연결되는 특성화다. 예를 들어 ‘기독교리더십·상담융합학과’, ‘기독교미디어콘텐츠학과’, ‘예배예술·음악테크학과’, ‘신학데이터리서치학과’처럼 교회와 사회를 잇는 학과들이 그것이다. 이런 전공은 신학적 뿌리와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한국침신대의 위기는 단순히 학생 수의 문제가 아니다. ‘공감의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다. 학교가 학생들의 꿈과 시대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래를 바꿀 수 없다. 그동안 수도 없이 장학금보다 ‘가고 싶은 학과 개설’, ‘미국 신학대와의 연계’, ‘수도권대학원대학원 설립’ 등을 제안했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그저 우리 교단 목회자들의 한계가 거기까지였을 뿐이다. 어차피 학령인구감소로 언제고 터질 시한폭탄이다. 위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제는 특정인을 겨냥한 징계나 임시방편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제대로 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실질적 해법이 제시되고 실현되기를 바란다.


